순대국과 감자탕은 둘 다 돼지고기가 주재료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내가 꽤 좋아하는 음식들인데, 다만 감자탕의 경우에는 주로 여러 명이서 둘러앉아 먹는 '요리' 혹은 '안주' 개념이라 밖에서 식사로 먹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야 그 식사 개념의 감자탕을 입에 댈 수 있었다.
다만 6월에 처음 찾아갔을 때는 '쩐' 의 문제도 있었고, 또 순대국이 더 땡겼기 때문에 그걸 먹자고 생각해두고 찾아갔다. 가게는 큰길과 좀 떨어진 곳에 있지만,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 근처에 있는 시립서울청소년수련관만 찾으면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었다.
골목으로 쭉 들어가서,
청소년수련관이 보이는 시점에서 오른쪽으로 뻗은 골목을 보면 감자국(=감자탕)과 순대국을 크게 표시한 가게 간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이 가게의 간판 메뉴는 저 두 가지로 보이지만, 전라도 쪽 계통인지 홍어삼합이나 홍어회 같은 것도 팔고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 홍어, 특히 삭힌 홍어는 그 끝내주는 향취 때문에 미개척 영역으로 남아 있다.
우선 메뉴판부터. 개인적으로는 약간 센 가격이다 싶었는데, 나중에는 그게 이해가 될 만한 질과 양을 체험할 수 있었다. 안주 개념의 감자탕에는 특이하게 감자만 사리로 더 추가할 수 있다고도 되어 있다.
미리 생각한 대로 순대국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시원한 물을 한 잔. 원래 밥먹기 전에는 물을 그다지 마시지 않지만, 벌써부터 더위를 타고 있어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원산지 표기와 금연 표시. 처음 갔을 때는 몰랐지만, 감자탕 먹으러 두 번째로 갔을 때는 흡연자들을 위한 것인지 가게 밖에도 간이 테이블을 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음식점에서는 그리 흔히 볼 수 없는 수직 형태의 냅킨통이라 그냥 찍어봤다.
순대국이 나오기 직전에 깔린 밑반찬 다섯 종류. 흔히 연상할 만한 평범한 것이었는데, 풋고추와 함께 나온 게 양파가 아닌 마늘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다만 생마늘은 여전히 그 강렬한 매운맛과 냄새 때문에 제대로 손을 못댔다.
부글부글 끓는 상태로 나온 순대국.
들깨가루 때문인지 국물은 뽀얀 편이었지만, 설렁탕 수준으로 불투명하지는 않았다.
우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국물을 맛보면서 이리저리 뒤적여 봤다. 머릿고기 위주인 것은 다른 순대국과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는 특이하게 비계 쪽을 많이 안쓰고 살코기 위주로 담아내고 있어서 좀 더 담백하게 느껴졌다. 순대는 그냥 찹쌀순대가 아니라 직접 만든 듯한 것을 쓰고 있어서 맛이 좀 더 진했다.
김이 좀 나갔다 싶을 즈음에 밥을 몽땅 때려넣고 퍼먹었다. 사실 좀 더 기름진 순대국을 기대했지만, 어차피 그렇게 맹목적인 희망사항은 아니었으니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다. 또 고기와 순대의 질도 꽤 좋았으니 이걸 먹는 재미도 있었고.
그렇게 한 그릇을 만족스럽게 비워냈고, 다음에는 감자탕을 먹어 보기로 하고 나왔다. 하지만 그 감자탕은 갑자기 악화된 자금 사정 때문에 거의 두 달 가까이 지나서야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토요일 저녁에 처음 맛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지난 번 앉았던 곳과 반대쪽 벽의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공간 때문인지 양념통과 수저통을 이렇게 벽에 매단 선반 위에 놓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밑반찬들. 쌈장이 없는 걸로 보이지만, 아래 짤방에 있다.
정체불명의 들통. 먹다가 속이 뒤집히면 게워내라...고 준 건 당연히 아니었고, 등뼈 발린 것을 버리는 용도다.
그리고 밥과 함께 나온 식사용 감자탕의 위엄.
위에서만 찍은 거라 뭐가 많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커다란 돼지 등뼈 두 쪽이 푹 잠기다 못해 그릇 위로 삐져나온 모양새라 상당히 압도적이었다.
등뼈는 이렇게 왼쪽 그릇에 덜어놓고 발라먹을 수 있다.
참고로 이렇게 덜어놓은 게 뼈 한 쪽이다. 도축 과정에서 어설프게 잘라내면 자잘한 뼛조각이 계속 걸려나와 성가시기 마련인 돼지 등뼈지만, 여기서는 꽤 잘 가공했는 지 그런 일이 없었다.
등뼈를 두 쪽 째 먹을 즈음에 이렇게 공기밥을 넣고 말아먹었다. 사실 한 쪽 발라먹을 쯤에는 양에 관해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두 쪽 째 먹을 때는 막판에 좀 남기고 싶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 정도면 7000원이라는 가격이 결코 비싼 게 아니다.
그렇게 해서 감자탕은 싹 비웠다. 다만 막판에 그 양 때문에 얼마 손도 못댄 김치와 깍두기는 지못미.
이렇게 몇 주 가량 비워둔 블로그도 다시 돌리기 시작했는데, 다음에 식충잡설 포스팅을 하게 된다면 아마 종로 쪽에서 북한이탈주민 출신 요리 연구가가 낸 북한 음식 전문점 아니면 녹사평역 쪽 해방촌에 있는 경양식집이 거론될 것 같다. 다만 이 두 집 모두 메뉴가 꽤 다양해서 최소한 서너 끼는 먹어야 포스팅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