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뻑쩍지근한 관현악 연주회 위주로 맛을 들이다 보니, 독주회라던가 실내악 같은 소규모의 공연 같은 경우에는 장르를 불문하고 그리 많이 가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재즈 같은 경우라면 오히려 소규모 클럽이나 소공연장의 공연이 좀 더 음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외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런데 내 기준에서는 정말로, 정말로 좁은 공간에서 무언가 주목할 만한 음반이 계속 제작되고 있다는 것을 한 지인을 통해 듣게 되었다. 홈페이지도 있다고 해서 구글링을 해봤는데, 하우스 콘서트라고 쳐보니 바로 나왔다.
하우스 콘서트는 제목 그대로 그냥 좀 넓은 집의 거실을 공연장으로 활용해 열리는 음악회라고 하는데, 장소는 즉흥연주 전문 피아니스트라는 박창수의 집으로 되어 있다. 직접 가서 공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2002년 여름부터 현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거실에서 열 수 있는 모든 공연이 개최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가정 음악회인 만큼 별도의 의자가 비치되어 있지 않아 청중들은 그냥 바닥에 걸터앉아 경청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공연들 중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공연의 실황을 직접 CD로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 내가 이 공연과 공연장을 주목하게 된 계기였다. 현재까지 총 100장의 CD가 구입 가능하다고 되어 있는데, 다만 CD가 어떤 형태로 제작되고 또 어떤 음질인지를 잘 모르는 상황이라 일단 공연 기록을 쭉 검색해본 뒤 두 장을 골라 이메일로 주문했다. 가격은 장당 10000원이고, 배송료는 다섯 장 미만 구입 시 3000원으로 되어 있었다.
집에 택배로 도착한 음반을 받아 보니, 겉보기에는 무척 단순해 보였다. 모든 음반 커버는 이런 디자인인데, 사실 정규 상업반이 아닌 사가반이다 보니 가능한한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방책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케이스 재질은 플라스틱이 아닌 두꺼운 종이로 되어 있다.
종이 케이스는 이렇게 서랍식으로 열고 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CD 표면은 마치 유니버설 뮤직 산하의 도이체 그라모폰/데카 레이블에서 나오고 있는 디 오리지널스 시리즈와 비슷하게 LP를 본딴 디자인으로 되어 있는데, 뒷면도 (물론 소리홈은 파여 있지 않지만) 모두 검은색으로 되어 있다. 다만 어느 공연의 CD인지 각인이 되어 있지 않아서, 대량 구입자의 경우 까딱 다른 케이스에 CD를 집어넣었다가 멘붕 상태가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주문한 CD의 곡명과 출연진, 공연 일자는 이렇게 케이스 뒷면에 붙여놓은 종이로 확인할 수 있다. 왼쪽 위에 고리처럼 되어 있는 부분이 CD를 뺄 때 손가락에 거는 부분이다.
종이에 인쇄되어 있듯이, 저 CD는 2008년 12월 6일에 개최된 208번째 하우스 콘서트의 실황을 담고 있다. 이 날은 공연장의 주인이자 공연을 주최하고 있는 박창수가 서울예고 출신이라 그런지, 서울예고 출신자들이 결성한 실내 관현악단인 아르테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섭외되었다. 아무리 넓은 집이라도 과연 저 악단이 다 들어갈 만한 거실이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홈페이지의 공연 사진들을 보니 좀 비좁아 보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가능했기에 치른 공연이었다.
일단 전공자들이니 아마추어 수준은 아닐 것이고, 또 급조된 것이든 상설이든 간에 한국 관현악단들의 음반 사냥에 매달리고 있는 내게는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라고 생각해 골랐다. 전영광의 지휘로 열린 이 공연에서는 1부에서 베토벤의 발레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과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김재원 협연)이, 2부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이 연주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CD에서는 베토벤 서곡이 빠져 있는데, 1시간도 안되는 CD 수록 시간을 봤을 때 용량이 모자라 뺀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 후술할 하림의 어쿠스틱 콘서트 같은 경우에도 준비한 곡들 외에 앙코르가 몇 곡 더 연주되었다고 하지만, 그 중 수록된 것은 한 곡 뿐이다. 공연 곡목의 완전 수록 유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주문하기 전에 어느 곡이 빠지는 지를 미리 확인해야 할 듯 하다.
서곡이 빠진 것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슈만 협주곡 같은 경우에는 지금까지 한국 악단이 연주한 음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들었다. 실내 관현악 연주라고는 해도 거실에서 한 공연이라 음량의 과포화 상태를 걱정했지만, 상당히 정돈되고 깔끔한 소리라 음질 면에서는 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연주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편집이 불가능한 실황녹음인 까닭에 종종 나오는 삑사리나 이런저런 실수나 여타 의아한 대목이 눈에 띄는 게 사실이다. 협주곡 3악장에서 오보에 솔로가 호흡 배분에 실패했는지 갑자기 중단된다거나 교향곡 3악장의 다카포 부분에서 트럼펫이 빠진 채 호른만 연주하는 대목들이 특히 두드러졌는데, 아직 합주에 익숙치 않은 학생들의 연주이니 그러려니 하고 듣고 있다.
두 번째 CD는 2010년 7월 23일에 하림이 양양, 조준호, 유정균과 함께 개최한 어쿠스틱 콘서트를 담고 있는데, 7월 2일에 크라잉 넛을 시작으로 30일의 강산에까지 5회 연속으로 진행된 언플러그드 시리즈 중 네 번째 공연이었다. 하림은 음반 활동이 그다지 활발한 편은 아니지만,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고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 몽골,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 소위 '월드 뮤직' 에 쓰이는 갖가지 민속 악기에 관심이 많아 이런 느낌의 음악에 세션으로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초기에 활동한 그룹 VEN의 음반들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솔로 앨범 두 장이 전부인 참으로 단촐한 디스코그래피에 이 음반을 추가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골랐는데, 일단 음악적인 만족도는 이게 더 높았다. 좁은 공간의 공연이라는 것을 살려 청중들과 거의 토크 콘서트에 가까운 소통 능력을 보여주는데, 청중의 요청에 화답한다거나 짤막한 동요풍 노래를 함께 부르는 등 귀로만 들어도 입이 핼쭉해지는 친근함이 와닿았다.
딱히 하림의 열성팬이 아니더라도, 연주자와 청중의 소통이 극대화된 공연의 실황 음반을 찾는 사람이라면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충분히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앨범으로 여겨지는데, 앞으로도 CD 목록을 계속 확인하면서 관심이 가는 것을 체크해 구입 목록에 올려볼 생각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블로그를 갱신했는데, 사실 그 동안 침묵한 이유는 트위터로 인생의 낭비에 열중한 까닭도 있지만 스캐너가 맛탱이가 간 것도 (구차한 변명이지만) 문제였다. 어쨌든 제대로 복구해 이렇게 소재로 삼을 음반 커버의 스캔을 다 끝냈으니, 이제 귀차니즘만 극복한다면 4일 주기의 블로그 리듬도 다시 살릴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