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모 현금호송 업체에서 알바를 뛰고 있는 중이다. 자세히 쓰자니 돈을 다루는 직종이라 좀 켕기지만, 조별로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잡고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 거라고 대충 쓸 수 있다.
그 때문에 중간에 점심도 마치 택시 기사들처럼 기사식당 혹은 그에 준하는 곳에서 해결하기 마련인데, 이번 일로 강북구 쪽에도 수유동에 기사식당 밀집 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이번에 쓸 곳은 일 때문에 들른 곳이 아니라, 그 곳 인근에 눈에 띈 다른 곳이다.
식사를 하고 나와서 잠깐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여러 식당과 정비소들 중에서 '~함박스텍' 이라는 노란 바탕색의 간판을 달고 있던 식당이 눈에 띄었다. 사실 기사식당들 중에는 남산이나 성북동처럼 돈까스를 간판으로 걸고 영업하는 곳을 종종 본 적이 있지만, 함박스텍을 걸고 영업하는 곳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저 일을 끝낸 뒤, 평소라면 가볼 일도 없던 저 거리를 다시 찾았다. 다만 강북구 쪽이 전반적으로 대중교통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일단 4호선 수유역에서 빨래골 방면으로 들어가는 강북03 마을버스를 갈아타는 방법을 택했다. 월요일이 정기 휴무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날만 빼고 미리 일정을 잡았다.
가장 가까운 광성마트 정류장에 내리면 주변에 여러 기사식당들을 볼 수 있는데, 내려서 버스 진행 방향 반대편으로 몇 발짝 걸으며 반대쪽을 둘러 보니 그 노란 간판을 건 집이 보였다.
창문에 붙은 걸 보니 함박스텍(햄버그 스테이크)과 돈까스, 생선까스, 오무라이스 같은 전형적인 경양식 메뉴만 취급하는 곳으로 보였는데, 이 동네의 다른 기사식당들이 주로 백반이나 국밥, 찌개, 돼지불백, 덮밥 같은 한식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것에 비하면 꽤 보기 드문 컨셉의 음식점이었다.
들어가서 본 메뉴판. 하지만 유리창에 붙어 있던 메뉴들 중 오무라이스는 없었는데, 아마 이런저런 사정으로 처음에는 팔다가 지금은 안하는 모양이다. 함박스텍과 돈까스는 특별히 매운 소스를 뿌려내는 것 같은 '매운~' 메뉴들이 추가되어 있고, 곱배기는 전 메뉴 모두 6500원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생선까스는 러시아산인데 곱배기를 시키면 국내산이 되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은 무시하자
원래 내 식성대로라면 돈까스를 첫 메뉴로 골랐겠지만, 이 집이 간판으로 달고 있는 함박스텍에 더 호기심이 갔기 때문에 곱배기로 주문했다. 주문하면 이렇게 밑반찬들이 깔리는데, 크림수프와 콩나물국도 어떤 메뉴든 기본으로 다 나온다. 양배추채에는 특이하게 허니머스터드 소스가 뿌려져 나왔다.
그냥 찍어본 냅킨통과 양념병, 수저통. 양념은 수프 먹을 때 쓴 후추 빼고는 손댈 일이 없었다.
우선 밥을 담은 접시가 나왔는데, 함박스텍 외에 다른 메뉴도 밥은 이렇게 따로 나온다. 양은 다소 적은 편이지만, 더 달라고 하거나 미리 많이 달라고 하면 그렇게도 준다. 다만 곱배기를 시켰기 때문에 양이 어떨 지 몰라서 더 청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철판에서 지글지글 끓는 상태로 나온 함박스텍 곱배기. 꽤 크고 두툼한 한 덩이가 나왔는데, 위에 달걀 프라이가 올라온 것을 보고 '훗, 이래야 함박스텍이지'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특이하게 곁들임들인 마카로니 마요네즈 무침과 강낭콩 통조림, 비엔나 소시지가 같이 들어가 있었는데, 강낭콩과 소시지 같은 경우에는 이런 계통의 음식점에서 처음 보는 곁들임이었다.
먹기 전에 속은 어떻게 되어 있는 지 헤집어 봤다. 다만 속이 허옇게 되어 있는 걸 봐서는 아마 쇠고기가 아니라 닭고기가 주재료인 것 같았는데, 먹어 보니 쇠고기 베이스의 함박스텍 보다는 확실히 담백하고 밋밋한 맛이었다.
아마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기사식당들의 특성 상 좀 더 싼 닭고기를 쓴 것 같았는데, 그 때문에 위에 끼얹은 데미글라스 소스의 도움이 필수였다. 그리고 상당히 부드러워서, 나이프와 포크로 썰어먹기 보다는 그냥 숟가락으로 부셔 가면서(?) 떠먹는 편이 더 편리했다.
물론 본 메뉴고 곁들임이고 다 먹을 수 있었으니 깍두기 몇 개를 빼면 모두 비워냈다. 그리고 다음에는 돈까스와 생선까스 중 어느 것을 먹을 지 생각하면서 가게를 나왔다.
엿새 뒤에 두 번째로 갔을 때 고른 것은 생선까스였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로 대미를 장식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이것도 곱배기를 시켰다. 생선까스 곱배기의 경우 이렇게 곁들임이 따로 자그마한 종지에 담겨져 나오는데, 함박스텍 때와 비슷했지만 오이피클이 들어가 있어서 이건 손도 대지 못했다.
그리고 또 특이한 것이 이 소스와 채썬 양파였는데, 소스는 머스터드 계열이지만 흔히 생선까스에 곁들여져 나오는 마요네즈 베이스의 타르타르 소스와는 맛이 전혀 달랐다. 오히려 톡 쏘는 매콤한 맛이 강했는데, 양파와 함께 마찬가지로 이런 경양식집에서는 처음 보는 곁들임이라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주인공인 생선까스가 등장하면서 세팅 끝.
생선까스는 곱배기로 시켰기 때문인지 여섯 조각이 차곡차곡 담겨져 나왔는데, 일단 양 하나는 확실히 많았다.
속은 이렇게 되어 있는데, 아마 가장 흔한 명태를 쓴 것 같다.
이렇게 따로 나온 소스에 찍어 먹었고, 또 양파도 같이 곁들여 가며 싹싹 비워냈다. 다만 생선까스의 경우 가끔 제대로 포를 뜨지 않은 생선살에 딸려나오는 가시 파편 때문에 마지막 몇 조각은 약간 먹기 성가셨다. 양파와 소스가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줬기 때문에 오히려 생선까스가 조연이 된 듯한 느낌이었는데, 매콤한 맛의 생선까스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먹어 봐도 괜찮을 것 같다.
나흘 뒤 방문했을 때는 돈까스 곱배기를 주문했다. 돈까스 곱배기의 경우 생선까스 곱배기와 달리 곁들임이 그냥 돈까스 접시에 같이 나왔는데, 접시 사이즈가 상당히 커서 우선 거기에 압도당했다.
특이한 곁들임과 소스 때문에 뭔가 색다르다고 생각한 생선까스와 달리, 이 돈까스의 경우에는 한국식 돈까스의 정석을 따르고 있었다. 소스는 함박스텍에 끼얹어 내오는 데미글라스 소스였다.
썰어본 뒤 찍은, 광량 조절 실패로 망한 짤방. 상당히 큰 것 한 조각이 나왔기 때문에 식사량 걱정을 좀 했지만, 두께는 얇은 편이라 싹 해치우기에는 전혀 부담이 없었다. 한국식 돈까스라는 정공법을 충실히 따른 메뉴라 겉보기에 가장 개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기본만 제대로 한다면 뭔가 튀는 구석이 없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먹어 보니 그 기본을 제대로 따랐다고 여겨졌는데, 한창 먹던 중 요리사 분이 잠깐 쉬러 나왔다가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는 '양배추채를 한 번 돈까스에 섞어서 드셔 보세요. 저희 집에서 돈까스 많이 드시는 분들은 그렇게 먹으면 맛있다고들 하시네요' 라고 권했다. 다만 돈까스 따로, 양배추채 따로 먹어도 입안에서 자동적으로 섞여 들어가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시도는 안해봤는데, 낯선 뜨내기 손님에게 권하는 말에서 자신이 만들어 내는 음식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피클 빼달라는 것을 또 깜빡했기 때문에 결국 그건 손도 못댔지만, 기본에 충실한 이 메뉴도 다 먹어치워 예를 표했다(?). 서울 변두리 지역의 평범하다면 평범한 기사식당이지만, 이런 경양식 계통 메뉴를 내는 기사식당들 중 너무 매스컴을 타 유명해지다 보니 가격은 계속 치솟고 거품 논란까지 일고 있는 다른 곳 보다는 개성적인 메뉴는 그것 대로, 정석적인 메뉴는 그것 대로 같은 값으로 척척 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집에서 거리가 다소 멀고, 또 버스 환승이 필수인 곳에 있어서 차후 꾸준히 재방문을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물론 아직 먹어보지 못한 '매운~' 메뉴에 대한 호기심도 아직 있기는 한데, 또 가보게 되면 나중에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른 데서 먹은 것들과 함께 몰아서 써보고 싶다.
이 글을 미리 써놓고 블로그에 저장하고 있는 시점(11.9)에서 이 식당과 전에 쓴 '하하' 를 제하고는 아직 새로 방문한 곳은 없는 상태다. 다만 을지로 백병원 근처에 있다는 삼계탕집은 가격의 압박을 감수하고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마 다음 식충잡설을 싸지르게 된다면 거기가 거론되지 않을 까 싶다. 어디가 되든 뭘 처묵하든,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