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Title](https://tistory1.daumcdn.net/tistory/297605/skin/images/icon_post_title.gif)
먼저 미스티레코드에서 입수한 음반은 삼성전자가 휘하에 '나이세스' 라는 레이블을 거느리고 클래식 음반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내놓은 것인데,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1994년에 당시 악단의 상주 공연장이었던 세종체육관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한 연주회 실황들 중에서 앙코르 만을 선별해 묶은 음반이다. 음반 겉에는 지휘자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는데, 일단 속지에 당시 악단 상임 지휘자 원경수의 프로필이 기재된 것을 보면 모든 곡의 지휘는 원경수가 맡았다고 간주해도 될 것 같다.
앙코르만 수록한 것인 만큼, 개인적으로는 무척 성에 안차는 다악장 곡의 발췌 같은 것이 많아서 구입을 좀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개중에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 라던가 볼프-페라리의 오페라 '성모의 보석' 의 간주곡 두 곡, 에네스쿠의 루마니아 광시곡 제2번,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 같이 그 곡 자체로도 즐길 수 있는 '롤리팝' 들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지갑을 열어 구입했다.
여러 공연들의 실황을 짜깁기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연주력이나 음향은 솔직히 말해 고르지 못하다. 이 때문인지, 당시 게재된 언론 보도를 보면 음반 제작을 위해 한국에서 전자음악과 엔지니어링으로 유명한 이돈응(현 서울대 교수)이 독일로 음원을 가지고 가 마스터링 작업을 해서 가능한한 음반에 어울리는 소리로 만들어 왔다고 한다.
물론 현재 정명훈이 재임하고 있으면서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내놓고 있는 음반들과 비교하면 애들 장난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원경수의 전임자였던 정재동의 지휘로 제작된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결과물의 완성도가 어떻든 이것도 서울시향 역사에서 엄연히 존재했던 음반인 만큼, 자료 수집을 위한 의도로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음반이다.
하지만 이 음반이 발매된 지 몇 년 뒤 나이세스라는 레이블은 공중분해 되었고, 저작권도 이리저리 흩어져 이 음반의 재발매도 한참 요원해진 상태라 이렇게 가끔 중고음반점에 굴러다니는 것으로만 볼 수 있게 된 것은 여느 1980~90년대 음반들과 다를 바 없다. 서울시향 측에서 저작권을 인수해 가서 훗날 악단 창단 몇십 주년 때 박스반 합본 같은 것으로 발매한다면 좋겠지만, 문화예술 지원에 인색한 한국의 현실에서 이 바램이 이루어지려면 얼마나 걸릴 지, 아니 가능한 때가 올 지 어떨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북오프 신촌점 음반 코너를 별 생각없이 주시하다가 우연히 찾아낸 것이 위의 음반이다. 내가 이 뻘포스팅 초반에 잠깐 언급한 단어인 '국뽕' 에 매우 걸맞는 곡을 담은 것인데, 당시 한양대 작곡과 교수였던 장일남(1932-2006)의 4부작 교향시 '조용한 아침의 나라' 가 수록되어 있다.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역시 장일남이 창단한 사설 악단인 서울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이후 서울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자작자연 음반이다.
예성음향이라는 음반사는 내게 그다지 낯선 회사가 아닌데, 여기서는 이 음반 발매 후 1년 뒤에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이 수록된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첫 음반을 LP와 카세트 테이프로 선보이기도 했고 그 중 LP를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의 소재지나 현재도 존속하고 있는 지의 여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튼 CD라는 매체가 막 한국에 들어온 무렵에 나온 것인데, 물론 무려 25년이나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상당히 촌티 팍팍 나는 디자인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음반을 보고 놀란 것은 단순히 한국 작곡가의 관현악 작품을 담은 매우 초기의 CD라는 점 때문 만은 아니었는데, CD 속지에 나온 그림이 고 신동헌 화백의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동헌 화백은 생전에 클래식 애호가로도 유명했고, 만년에 이런저런 음악가의 에피소드를 담은 책을 직접 집필해 간행하기도 했다. 아마 이 음반에 그려진 그림도 그런 인연으로 맡은 것 같은데, 다만 CD에는 그림을 그린 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수록곡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 돌아가자면, 이 곡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MBC에서 위촉받은 곡이라고 되어 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황홀한 빛 뒤에 숨은 그림자도 많지만, 올림픽 개최라는 것 자체가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상징이라면서 신나게 자화자찬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이렇게 그것을 이리저리 치장하기 위한 문화예술 분야의 위촉도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호돌이라는 마스코트나 올림픽공원 같이 이 기회를 통해 나온 조형예술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과 달리, 이 때 나온 음악들은 그 때만 반짝 소비되고 지금은 거의 언급도 안되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사실 작곡가의 의지 보다는 이렇게 크고 작은 행사를 위해 작곡되는 '기회 음악' 은 누가 작곡해도 후대까지 살아남기 힘든 게 사실인데, 하다 못해 이 방면에서 그나마 유명한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 나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 도 완성도 면에서 계속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올림픽 개최로 한층 드높아진 콧대를 상징하듯, 이 곡도 비슷한 컨셉의 연작 교향시인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처럼 애국심을 고취하는 보수적인 국민악파 스타일 조성 음악의 예시를 따라가고 있다. 동해의 여명-한강-황금 벌판-눈덮힌 영봉 네 개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각 부분은 저마다 독립되어 있다. 한강의 경우 음반에는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합창단도 투입된다.
작곡자가 직접 쓴 해설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정말 오그라들고, 이곳 저곳에서 주모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이 상투적인 애국주의 문구로 가득하다. 하지만 해설을 무시하고 듣더라도 거슬리는 것은 또 있다. 바로 녹음 상태. 언제 어디서 누가 녹음했는 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데, 일단 잔향이 너무 인위적으로 잡혀 있고 소리도 스테레오 녹음임에도 입체감이 없이 너무 평면적이다. 아마 제작진이 클래식 녹음에 다소 경험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소리의 양감이라던가 투명도는 어느 정도 살아있기 때문에 자기 기준을 좀 더 낮춘다면 들을 만한 소리로 쳐줄 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작곡가 장일남의 만년은 그다지 명예롭지 못했다. IMF의 타격은 저 서울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는 사설 관현악단을 꾸려가던 장일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고, 재정난에 대한 타개책은 모 바이올리니스트를 자기 학교 음대에 교수로 채용시켜주겠다는 미끼를 던지고 그 댓가로 2억 1000만원의 뇌물을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일남은 이 뇌물 수수 건으로 2000년에 검찰에 의해 덜미를 잡히게 되었고, 여타 사학 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주요 일간지와 뉴스에 일제히 이름이 오르내리는 지경까지 갔다.
법원에서 피고가 받은 뇌물을 다시 돌려주었고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했는지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했지만, 장일남은 이 뇌물 수수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오점을 경력에 남기고 말았다. 물론 '비목' 이나 '기다리는 마음' 같은 가곡들은 여전히 애창되고 있다지만, 가곡 작곡가로서 기억하는 사람 말고도 이렇게 뇌물 수수로 남은 부정적인 인상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일단 한국 가곡이나 합창곡에 별 감흥이 없는 나로서는, 듣기 힘든 한국 작곡가의 대규모 관현악 작품을 담은 CD라는 점에서 분명히 소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구입했다. 가격도 겨우 3000원이었기 때문에 부담도 없었고, 이 때 아니면 언제 볼 기회가 있을 지도 알 수 없는 레어템이니까.
이렇게 해서 내가 '구입한' 웬만한 음반들에 대한 글은 다 싸질렀다. 다만 구입한 게 아니라 머나먼 독일에서 온 음악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음반들도 있기 때문에 음반 관련 포스팅은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포스팅 제목은 바뀌겠지만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