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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에 오스트리아 음반사 카프리치오에서는 두 장의 윤이상 작품 음반들을 발매했는데, 그 중 예악과 조화, 첼로 협주곡이 든 음반은 이미 구입한 상태다. 하지만 실내악 작품들을 모은 음반의 경우, 구입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협소한 한국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물론 해외 구매 등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입수할 수 있는 물건이긴 한데, 풍월당에서 그로쇼프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이 음반에 대한 것도 나오게 되었다. 내가 너무 빨리 수입이 끊긴 데 대해 푸념하는 투로 얘기해서 그런 지는 몰라도, 그로쇼프는 독일로 돌아간 뒤 내게 이 음반을 보내주었다.
이 CD에 수록된 곡은 모두 네 곡인데, 그 중 플루트, 하프,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노벨레테' 와 첼로와 하프를 위한 2중주의 경우 각각 CPO와 콜 레뇨의 음반으로 이미 들어본 바 있었다. 그리고 바이올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3중주도 음반이나 음원은 없지만, 이미 1990년대 중반에 동국대 야외 무대에서 열린 윤이상 음악회에서 실연으로 들어본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저 3중주의 경우 아직까지 음반이 없었고, 또 실연으로든 음반/음원으로든 아예 들어본 적도 없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도 당연히 마찬가지였다. 카프리치오 음반을 노리게 된 것이 바로 이 두 곡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해서 윤이상의 작품 중 음반으로 나온 모든 곡의 음원을 모아보자는 욕구를 또 일부 충족시킬 수 있었다.
연주자들은 윤이상 음반에서는 처음 보는 하피스트 마리아 그라프를 제외하면, 콜랴 레싱(바이올린)과 발터 그리머(첼로), 홀거 그로쇼프(피아노), 로즈비타 슈테게(플루트) 네 명 모두 윤이상 음악의 '전문 연주자' 들로 구성되어 있다. 도이칠란트라디오 쿨투어와 해당 방송국의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공동 제작한 녹음 상태도 상당히 좋은데, 해당 작품들의 레퍼런스로 생각하고 싶을 정도다.
같이 보내온 나머지 두 음반 역시 매우 흥미로운 것들이었는데, 특히 이건 희귀함으로 따지면 세 종류 중 가장 레어템이라고 할 수 있다. 윤이상의 75회 생일 기념으로 베를린 예술대학 신음악 연구소에서 1985~1992년에 녹음한 음원들로 자체 제작한 음반인데, 이런 부류의 음반 대부분이 그렇듯 비매품으로 현지에서만 소량 제작된 것이라 한국에서는 입수할 방법을 궁리하기는 커녕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작곡/발표한 가장 초기작 중 하나인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부터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가락', 플루트를 위한 다섯 개의 연습곡, 피아노를 위한 '간주곡 A', 중국계 손녀 천리나를 위해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다섯 개의 소품 '리나가 정원에서' 까지 시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연주는 자세한 게 나와 있지 않지만 당시 예대 재학 중이던 학생들이 주로 맡은 것 같다.
그리고 그 학생들 중에는 현재 한국에서 중견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인 최희연도 있는데, 첫 곡인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에서 연주를 맡았다. 플루티스트 클라우스 쇠프는 현대음악 전문 6중주단인 모던 아트 젝스테트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고, 간주곡 A에서는 예의 그로쇼프가 연주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이 반가웠던 건 마지막 수록곡인 '리나가 정원에서' 때문이었는데, 아직 전곡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음반도 이것 아니면 백주영이 일본 음반사 엑스톤에서 녹음한 것 두 종류 뿐이었다. 그나마 후자의 경우 일반 CDP나 CD 드라이브에서는 재생도 안되는 SACD고, 가격도 일본반 답게 자비심이 없어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실상 이 곡을 헌정받은 손녀가 직접 연주한 전곡 녹음을 담은 음반이 떡하니 발송되면서 이 곡 역시 내 음반/음원 목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같이 수록된 플루트 연습곡과 함께 윤이상이 교육 목적으로 작곡한 보기 드문 곡인데, 다만 연습곡의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은 플루트 연습곡과 달리, 이 곡은 또 드물게 '배고픈 고양이', '토끼', '다람쥐', '이웃의 불도그', '새' 라는 꽤 구체적인 표제가 붙어있는 묘사음악이다. 보기 드물게 유머를 느낄 수 있는 윤이상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녹음들의 시기가 들쭉날쭉이고 상태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좀 건조한 녹음 상태를 제하면 소리 자체는 선명한 편이다. 무엇보다 소량 제작되고 지금은 이베이 같은 곳에서나 구할까 말까 한 레어템이라, 입수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기쁨을 선사하는 물건이다.
그리고 풍월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푸르트벵글러의 초기 실내악 작품들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음반화했다고 내가 운을 띄웠었는데, 그로쇼프는 구체적으로 어떤 곡들인지, 또 어느 음반사에서 나왔는지까지 질문하면서 상당히 관심있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수록곡들과 발매 레이블인 '젤렌클랑(Seelenklang)' 까지 알려줬는데, 베를린 필 아시아 투어의 마지막 무대였던 일본 공연에서 결국 그 중 한 종류를 구입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이 음반이 마찬가지로 우편물 속에 있었을까.
노구치 타케오가 회장을 맡고 있는 도쿄 푸르트벵글러 연구회는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저 레이블을 만들어 자신들이 기획한 연주회의 실황을 음반으로 제작해오고 있는데, 초기에는 그냥 협회 내에서만 돌고 도는 비매품 한정반 정도만 만들다가 2010년대 들어 상업반도 출반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일본 한정반이고 만듦새도 좀 조악한 편이지만, 이거 아니면 못듣는 곡들이 있다는 건 구입 욕구를 충분히 끌어오는 것이었다.
이 음반에는 2011년 11월 3일에 도쿄의 혼고 중앙교회에서 개최한 실내악 연주회에서 공연된 두 곡이 들어 있는데, 첫 곡인 피아노 4중주 C단조(1899)의 경우 음반에 표기된 바에 따르면 이 공연이 일본 초연이고 음반으로는 처음으로 제작된 것이다. 두 번째 곡인 피아노 3중주 E장조(1900)도 초연은 아니지만 음반으로 본 건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연주는 실내악 공연이었던 만큼 젊은 프로 연주자들을 기용한 것 같은데, 마노 쿠미코(바이올린)와 마츠무라 카오리(비올라), 니라사와 유우(첼로), 제츠 사오리(피아노) 네 명 모두 도호가쿠엔대학 음대를 졸업했다고 되어 있다. 다만 하룻 동안의 공연을 그대로 실어놓은 만큼 간간이 나오는 어설픈 대목은 어쩔 수 없는데, 그보다 걸리는 게 녹음 상태다.
음반 속지에도 실황 녹음인 만큼 잡음 같은 게 들어 있다는 안내문이 있기는 하지만, 단순한 객석 소음 같은 게 아닌 기계적인 잡음들이나 뭔가 어긋난 듯한 대목 같은 기술적인 문제가 자주 보인다. 스튜디오 녹음들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초기의 병맛스러운 녹음 기술 때문에 여전히 듣기 힘든 마르코 폴로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푸르트벵글러 관현악곡 녹음들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될 정도다.
이렇게 녹음 기술 면에서 좀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그로쇼프가 찾지 못해 구입할 수 없었다는 나머지 음반도 일단은 언젠가 구입할 생각이다. 역시 초기작인 바이올린 소나타 A단조와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이 수록되어 있는데, 후자의 경우 이미 강동석/프랑수아 케르돈퀴프 콤비의 팀파니 음반이 있지만 초기 소나타의 경우 저게 일본 초연이었고 또 첫 녹음이라고 한다.
관현악곡의 경우 예산 등의 문제로 아직까지 아마추어가 대부분인 급조 악단을 기용했기 때문에 연주 면에서 별로 신뢰가 가지 않지만, 그나마 이런 소규모 실내악 공연이라면 분명히 프로 연주자 혹은 전공자들 만으로 섭외할 수 있으니 녹음 상태만 좀 이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넙죽 받은 음반들도 있지만, 휴면 기간 동안 닥치는 대로 일해서 번 돈으로 구입한 음반들도 물론 있다. 그 중 일단 여덟 개를 골랐는데, 네 개씩 나눠서 끄적이려고 한다. 다만 그보다는 오랜만에 대구에 가서 처묵한 것들도 있으니 우선 그걸 좀 먼저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