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 수록 맛집 블로거에 대한 이미지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 블로거를 빙자해 음식점으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뜯어내는 찌끄레기들이 늘고 있고, 또 평범한 블로거를 가장해 자사 혹은 자사 상품의 홍보를 꾀하는 천민자본주의의 화신인 기업형 블로그 나부랭이들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비열한 거리가 되어 가고 있는 게 시궁창스러운 현실이다. 지금 세들어 사는 티스토리도 물론 예외는 아니어서, 요즘은 아예 티스토리 메인 화면을 의도적으로 안보고 있다. 물론 맛집 외에도 어느 분야나 그 추세가 다 마찬가지라는 것도 있지만.
이 때문에 요즘은 아예 돈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극소수 블로그를 제외하면, 식도락 정보는 거의 직접 돌아다니면서 얻고 있다. 다만 이번에 간 곳은 그 극소수 블로그에 속하는 곳에서 보고 호기심이 생긴 곳이었는데, 그 블로그가 내 기준으로는 너무 까탈스럽게 평론을 벌이는 논조라서 개인적으로는 별 호감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경양식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블로그의 논조는 신경 끄고 가봤다.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우선 가장 가까운 역을 찾아보니 4호선 한성대입구역이었다. 하지만 입구라고 된 곳은 대개 그 학교와는 거리가 꽤 되는 터라, 목적지에 쉽게 가려면 해당 역에서 출발하는 마을버스를 타야 했다. 인터넷 지도를 검색해 보니 2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02번을 타고 여섯 정거장 가면 바로 근처라고 나와서, 그 방법을 택했다.
실제로 종점인 한성대 바로 전인 슈퍼앞에서 내려 뒷걸음질을 몇 번 하면 바로 보이는 곳이라, 매우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블로그 포스팅들에는 가게를 '한아름분식' 이라고 소개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갔을 때의 상호명은 그냥 단순히 '한아름' 이었다. 그리고 메뉴의 비중도 양식과 분식이라고 된 것이 거의 대등했는데, 여러 번 가면서 볼 때는 실제로 많이 나가는 메뉴가 분식보다는 양식이었다.
대학가 식당 답게 가격은 꽤 저렴한 축에 속했는데, 일단 양식에 속한 메뉴들을 거의 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느리지만 꾸준히 시도해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택한 메뉴는 돈까스였다.
주문하자마자 먼저 깔린 것들. 숟가락과 나이프, 포크는 따로 수저통이 있는 게 아니고 주문하면 같이 내오는 식이었다. 밑에 깔린 냅킨은 내가 깐 게 아니라 가져오면서 깔아준 거였는데, 이렇게 세세한 걸 신경쓰는 모습 때문에도 호감이 들기 시작했다.
양념통과 냅킨통. 소금과 후추는 예상 가능한 범위였지만, 중국집도 아니고 간장이 같이 있는 게 좀 이상했다. 하지만 소스병 주둥이의 냄새를 맡아 보니, 간장이 아니라 우스터 소스였다. 우스터 소스를 갖춘 경양식집은 그리 흔치 않다고 하는데, 다만 실제로 써보지는 못했다.
까스류의 영원한(?) 동반자인 크림수프가 먼저 나왔다. 그냥 상상할 수 있는 맛인데, 간은 좀 심심하게 하는 것 같았다.
수프를 먹은 뒤 돈까스가 나왔다. 밥은 따로 담겨져 나왔는데, 겉으로는 넓은 접시에 깔아주듯 나온 걸로 보이지만 실제로 먹어 보니 양이 꽤 되는 편이었다.
돈까스 두 조각 위에 뿌린 소스도 수프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튀지 않는 담백한 맛이었는데, 곁들임으로 나온 것들 중에 자그마한 떡으로 만든 떡볶이가 있는 게 꽤 특이했다. 먹어 보니 은근히 꽤 매콤해서, 돈까스와 같이 먹으면 튀김요리 특유의 느끼함이 중화되는 듯했다.
물론 가격대가 가격대다 보니 두께는 그다지 두껍지 않았지만, 고기의 존재감은 충분했고 거기에 양이 꽤 되는 밥까지 같이 먹으니 포만감 면에서도 그다지 우려할 만한 부족함은 느낄 수 없었다.
깍두기 몇 조각 빼면 싹 먹어치웠는데, 첫 출발이 꽤 좋았기 때문에 다음 메뉴를 바로 기대했지만 대구 여행 때문에 결국 닷새 뒤에야 두 번째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먹어본 건 생선까스였다.
기본적인 세팅은 돈까스 때와 비슷했지만, 생선까스 답게 데미글라스 소스가 아니라 타르타르 소스가 올라와 있었고 돈까스의 옥수수 대신 마요네즈로 무친 사과 샐러드가 같이 나왔다.
먹기 위해 마구 헤집어본 뒤. 두께는 돈까스와 비슷한 편이지만 생선살이 확실히 보이는 건 돈까스 이상의 신뢰감(?)을 줬고, 생선까스라면 흔히 걱정하는 가시 파편 같은 것도 없어서 마음 놓고 입에 넣을 수 있었다. 타르타르 소스는 의외로 매콤한 맛이 좀 강한 편이라 생선+튀김요리 특유의 느끼함을 상쇄해주는 것 같았고, 사과 샐러드와도 궁합이 잘 맞았다.
이렇게 돈까스와 생선까스에서 상당히 호의적인 인상을 받았는데, 다음에는 까스 류에서 벗어난 다른 걸 먹어볼까 하고 생각했다. 다만 다음 방문은 더 미뤄져서, 달을 넘긴 2월 중순에야 가능했다.
이번에 시킨 건 오무라이스. 돈까스와 함께 경양식 메뉴 중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거였고, 그 만큼 기대하고 주문했다.
소스는 아마 돈까스에 쓰는 데미글라스 소스를 그대로 쓰는 것 같았고, 밥류 메뉴에는 수프 대신 우동 국물이 일괄적으로 같이 나왔다.
먹기 위해 해체해본 뒤. 다만 이번 오무라이스는 좀 미묘했다. 물론 저렴한 가격에 맞추기 위해 야채만 사용한 볶음밥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 날 따라 밥이 상당히 질었기 때문에 꼬들꼬들한 볶음밥에 유달리 집착하는 내 취향에서 좀 어긋난 맛이었다. 밥만 괜찮았다면...
그래도 주어진 음식 남기기 싫어하는 내 습성 상, 일단 다 비웠다. 오무라이스로 일단 튀김 요리 사이의 징검다리를 만든 뒤, 다시 비슷한 계열로 복귀하자는 생각으로 네 번째 갈 때 먹을 메뉴를 생각해 놓고 나왔다.
그래서 나흘 뒤에 갔을 때는 함박스텍을 시켰다. 비후까스, 그리고 이름이 꽤 독특한 폭팔메산과 함께 이 집의 최고가 메뉴인데, 물론 고가라고는 해도 5000원이라는 가격대는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소스는 돈까스/오무라이스에 쓰는 데미글라스였고, 함박스텍 답게 달걀 프라이도 올라왔다. 주문할 때 달걀을 반숙으로 할 지 완숙으로 할 지도 결정해야 했는데, 함박스텍 내놓는 대중적인 경양식집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것도 처음이라 좀 놀랐다. 일단 어떻게 해도 괜찮다는 무책임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먹기 위해 자르면서 이것도 오무라이스와 함께 내 취향에서는 좀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 입자가 거의 보이지 않아서 마치 두툼한 어묵을 썰어놓은 듯한 모양새였는데, 입에 넣고 씹어봤을 때도 그랬다. 씹는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여서, 이것 또한 아쉬웠다.
물론 이것도 다 비우긴 했다. 만족스러운 것 두 가지와 아쉬웠던 것 두 가지를 연달아 먹은 뒤에도 내 호기심은 멈출 줄 몰랐고, 정식 메뉴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양식 메뉴도 차례로 맛볼 수 있었다. 이건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