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당역에서 김대중컨벤션센터역까지 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다만 지하철역과 전시장이 연결 통로 등으로 연계되어 있는 COEX나 BEXCO 등 다른 전시장들과 달리 역 출구로 나와서 좀 걸어야 하는 것이 마치 KINTEX를 연상케 했다.
물론 컨벤션센터야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행사와 관련된 이정표가 거의 없어서 잠깐 헤매다가 전시장 로비로 들어가서야 전광판을 통해 자세한 장소를 알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다소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물론 여러 번 가본 사람이야 익숙하겠지만 처음 방문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느낌이었다.
행사장 입구는 이렇게 책상 등으로 급조한 칸막이로 되어 있었고, 사진에 보이지는 않지만 왼쪽 구석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면 입구에서 스탬프를 찍어주고 들어가는 식으로 되어 있었다. 코믹월드나 여타 동인 행사와 비슷한 방식이었는데, 다만 아직 예매권 등의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들어갈 때 찍은 스탬프. 하루만 개최하는 행사라 그런지 스탬프 종류는 이것 하나 뿐인 것 같다.
행사장 내부는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는데, 여러 칸으로 분할되어 있는 컨벤션홀의 한 공간만을 대관해 치르고 있었다. 한 쪽에는 이렇게 참가자들의 부스가 들어서 있었는데, 다만 부스 규모는 서울의 온리전 행사 정도로 단촐했기 때문에 지름신의 대대적 강림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은 이렇게 무대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무대와 부스가 분리되어 개최되는 코믹월드와 달리 이 모든 것이 한 곳에서 진행되기 때문인지, 이벤트가 달아오르면 무슨 부흥회 같은 분위기가 되는 무대 때문에 부스 쪽에서 대화가 잘 안될 정도로 시끄러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부스 규모 외에도 개인적인 취향이나 코믹월드에서도 자주 본 부스들이 많았던 등으로 인해 구입할 것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엠카 화백이나 로리꾼 화백 같은 코믹월드의 단골 참가 작가 혹은 지인의 부스를 찾아가 공물을 바치고(?) 보틀미쿠 핸드타올과 리그 오브 레전드 필통을 각각 사왔다. 아무래도 먼 곳까지 와서 참관한 행사인 만큼, 빈손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니.
컨벤션홀 밖에서도 지역 만화/애니메이션 학원의 홍보 부스라던가 하는 것들이 갖춰져 있어서 즉석 캐리커처 등을 그려주고 있었고, 코스프레 촬영도 주로 여기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코믹월드에서는 계속되는 성토와 비판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인 전범국 군대의 군복 코스프레 같은 상당히 꼴사나운 장면은 여기서도 보였다.
특히 나치 독일군 정복 코스프레를 한 사람을 보고 멋있다며 같이 사진을 찍는 어느 학부형의 모습은 정말 형언할 수 없는 아이러니였다. 주체는 다르지만, 34년 전 민주화를 요구하며 정권 찬탈의 도구로 악용된 군대의 진압에 저항하다가 수많은 희생자를 낸 도시에서 군국주의의 극치였던 나치 군복 코스프레를 멋있다고 하다니 말이다.
쥬씨페스티벌 측에서 이런 꼬락서니의 심각성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주최 측에서 이렇게 정치/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코스프레 행위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강하게 비판하고 시정해야 할 대목이다.
미리 예매해 둔 서울행 고속버스 출발 시간을 고려해 행사 참관을 마친 뒤에는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가, 아직 여유가 있어서 컨벤션센터 내 김대중관을 돌아봤다. 김대중과 관련된 여러 물품과 편지, 사진집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광주에서 김대중이라는 이름이 남기고 있는 상징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물론 기념관 성격이라 김대중의 몇몇 약점이나 실정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어서,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객관적 혹은 거시적으로 보고자 하거나 그에 대해 비판 의식 혹은 적의를 갖고 있다면 다소 껄끄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이 컨벤션센터가 김대중을 지나치게 미화 혹은 찬양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 여론은 아직도 보수 진영에서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고, 당장 이 날도 행사장에 들어서기 전에 반김대중 플래카드를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김대중컨벤션센터를 나온 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또 즉흥적으로 일정을 바꿔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가 가족들에게 선물로 갖다주려고 산 궁전제과 나비파이가 좀 적어 보였기 때문에, 금남로4가역까지 가서 내렸다.
나가는 길에 승강장의 이정표 위에 뭔가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미어캣 조형을 설치해 놓고 있었다. 누가 장난 삼아 세워놓은 것인가 했지만, 다른 곳에도 이렇게 깨알같은 조형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의도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새삼스럽게 우치공원 동물원에 가지 못한 게 아쉬워졌다.
궁전제과에서 나비파이를 더 구입하고, 정말 마지막으로 한 군데를 더 들렀다. 광주우체국과 파리바게트 사이의 골목에 있는 좌판 노점이었는데, 돌아다니면서 먹기 좋은 군것질거리를 몇 가지 팔고 있었다. 물론 와플 같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도 있었지만, 심지어 피자까지 있어서 눈에 확 띄었다.
피자는 조각 단위로도 한 판 단위로도 구입할 수 있었고, 스파게티도 컵에 담아 팔고 있었다. 다만 조각 피자의 경우 종류는 선택할 수 없고 그냥 콤비네이션으로만 한정되어 있었다. 가격이 워낙 쌌기 때문에 맛이나 질에 대해서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특이해 보였기 때문에 한 조각을 주문했다.
조각 피자는 이렇게 종이컵에 담아다 주는데,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양도 이렇게 담아 파는 것 치고는 크게 적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다만 먹다 보면 역시 종이컵에 입을 박고 먹어야 하는 추태(?)를 부릴 수밖에 없는데, 포크라던가 꼬치 같은 게 있으면 좀 더 쉽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피자를 우물거린 뒤 광천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또 터미널에서 예매해둔 서울행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여느 여행이 그랬듯이, 생각대로 모두 제대로 되지는 않았고 언짢았던 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것이든 동인 행사든 간에 일단 큰 축에 잡아놓은 일정들은 제대로 소화했고 예상치 않은 음반 지름까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꽤 흥미로운 경험이 되었다.
돌아온 뒤 또 며칠 동안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해 일을 하고 그것으로 이번에는 남해가에 있는 통영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통영 여행기는 다음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