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빼떼기죽으로 늦은 끼니를 때운 뒤, 곧바로 통영국제음악당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해저터널 대신 충무교로 건너갔는데, 버스를 타고 건너가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도보로 가본 적은 처음이었다.
대형 선박의 입출항 문제 때문인지, 다리가 꽤 높이 설계된 편이었다. 멍게를 가득 실은 바지선이 마침 다리 아래쪽으로 오고 있었다.
다리 양 가의 인도가 그다지 넓지는 않았고, 여느 교각이 그렇듯 대형차가 지나가면 조금씩 흔들리는 것 때문에 밑을 내려다보는 게 꽤 소름이 끼쳤다. 다리를 건넌 뒤에는 계속 도남로를 따라 이동했다.
가는 길이 좀 멀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치유받으며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거의 도착했을 무렵, 멀리서 농악 비슷한 소리가 들리길래 무슨 공연이 있나 했다. 하지만 공연은 아니었다.
아마 통영시 측에서 통영국제음악당을 지으며 주변 토지에 대해 관광 관련 생업을 가진 주민들과 충분한 합의 없이 용도 변경을 한 모양이었는데, 그래서 주민들이 이렇게 플래카드를 걸고 꽹과리와 북을 치며 항의하는 집회였다. 옆에는 봉고차가 민중가요를 확성기로 틀어놓고 주기적으로 뱃고동 소리까지 울리고 있었는데, 통영국제음악회까지 달갑지 않았는지 그것까지 반대한다는 뉘앙스의 플래카드도 보였다.
온갖 소음의 향연 속에서 음악당으로 향하는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도남로에서 좀 더 올라가야 했지만, 통영시민문화회관처럼 상당히 가파르지는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음악당은 크게 중앙의 발코니 겸 광장을 중심으로 대공연장인 메인홀과,
소공연장인 블랙박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공연장들이 아니라, 발코니를 통해 볼 수 있는 바닷가 풍경이었다.
비록 날씨가 흐렸기 때문에 생각했던 만큼의 장관은 아니었지만, 바다와 인근 지역을 널찍이 조망할 수 있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공연장에서 배부한 책자에 실린 음악제 예술감독이자 이 날 공연의 지휘자였던 알렉산더 리브라이히(Alexander Liebreich)도 인터뷰에서 '이 만한 경치를 볼 수 있는 공연장이 어디 있겠냐' 고 언급했는데, 다음 방문 때는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메인홀로 들어갔다.
일단 꿀빵 꾸러미를 보관소에 맡긴 뒤 올라갔는데, 공연장 내부는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이나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 그리고 최근 재개관한 대구시민회관처럼 슈박스(구두상자) 형태였다. 콘서트에 최적화된 설계인데, 3층에서 봤기 때문에 1층이 어떻게 되어 있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민문화회관보다는 좀 더 넓어 보였다.
하지만 이 개막 공연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음악제 사무국 측의 미숙한 일처리로 꽤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시작되었다. 공연 직전에 자꾸 중복 좌석표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인데, 심지어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 온 나조차도 그렇게 중복 예매로 골탕을 먹었다. 진행 요원들은 1층 로비에 가면 조치를 취해줄 것이라고 했지만, 불과 공연 시작 3~4분 전에 그러라는 건 좀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다행히 내가 예매한 좌석에 그대로 앉을 수 있었지만, 이 문제 때문에 공연은 결국 좀 지연되어 시작되고 말았다. 이 날 출연한 악단은 음악제를 위해 임시 조직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였는데, 정확한 악단원 명부가 없어서 확인은 못했지만 아마 리브라이히가 현재 상임 지휘자로 있는 폴란드 카토비체의 국립 방송 교향악단 단원들에 앙상블 TIMF 단원들을 주축으로 기타 객원 연주자들이 가세한 것으로 보였다.
현악 편성이 14-12-10-8-6으로 단촐한 것을 제외하면 표준 관현악단 편성이기는 했지만, 특이하게 관악 단원들은 대부분 한국인 혹은 한국계로 보이는 동양인 연주자들이었다. 대개 이런 편성의 악단을 조직할 때면 관악은 서양 연주자들을 데려다 쓰는 게 일반적이지만 뭔가 거꾸로 된 모양새였다.
첫 곡이었고, 내가 공연을 보러 오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던 윤이상의 '유동' 은 공연장에서는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음반도 국제 윤이상 협회 회원 전용반 3집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듣기 힘든 편이다. 해당 음반에는 페터 로네펠트 지휘의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이 초연 직전 제작한 방송 녹음이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해당 녹음보다 좀 더 빠른 템포를 잡고 팽팽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손열음이 협연한 라벨 협주곡은 앞에 연주된 윤이상 곡보다는 다소 심심하고 무덤덤하게 들렸다. 손열음이라는 피아니스트가 화려한 기교나 쇼맨십 보다는 다소 신중하고 중도적인 연주를 지향하기 때문에 그런 면을 의도적으로 죽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런 면모가 늘 마이너스인 것은 아니어서, 2악장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어울리게 들렸다.
다만 진한 블루 노트의 음색이 지배적인 1악장이나 떠들썩한 시장통 분위기의 3악장에서는 너무 얌전하게 연주한 듯한 모양새라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손열음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시각이 다소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들린 게 아닐 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여러 번의 커튼 콜 이후 앙코르로는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이 연주되었는데, 사실 개인적인 악취미로는 요즘 일본에서 대리 작곡 문제로 화두가 된 사무라고우치 마모루-라고 쓰고 니가키 타카시라고 읽는다-의 피아노곡을 골랐으면 했다. 손열음이 일본의 사무라고우치 열풍에 음반까지 내고 동참했음을 생각하면 그녀가 계속 관련 문제에 침묵만 하고있는 게 영 못마땅한 탓인데, 물론 그러고 싶어도 JASRAC(일본저작권협회)이 사무라고우치-니가키 간의 저작권 분쟁이 명확하게 끝날 때까지 모든 연주와 방송, 녹음을 봉인한 상태니 못했겠지만.
2부에서는 이번 음악제의 테마인 'Seascape' 에 어울리는 두 곡이 연주되었는데, 우선 브리튼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에서 간주곡 네 곡을 발췌한 '네 개의 바다 간주곡' 이 연주되었다. 이후 연주된 드뷔시의 작품이 인간이 배제된 자연으로서의 바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면, 브리튼 작품은 그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이 생활 속에서 늘 접하는 바다라는 느낌이다.
드뷔시 만큼은 아니지만, 브리튼 곡도 꽤 섬세하고 정교한 연주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곡이다. 그런 면에서 연주 자체는 약간 실망스러웠는데, 물론 마지막 곡인 '폭풍' 에서 휘몰아치는 연주로 만회하기는 했지만 두 번째 곡 '일요일 아침' 에서는 금관의 역량이 아쉬웠고 세 번째 곡 '달빛' 에서는 밀고 당기는 느낌이 좀 더 강했으면 했다.
마지막 연주곡인 드뷔시의 교향 소묘 '바다' 는 공교롭게도 2002년에 이 음악제를 처음 찾았을 때 정명훈 지휘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폐막 공연 2부의 첫 곡으로 연주한 곡이기도 했다. 이번이 두 번째 대면이었는데, 섬세한 디테일 면에서는 2002년 연주보다는 좀 떨어지기는 했지만 관악 파트의 난조도 브리튼 곡보다는 덜해서 윤이상 곡과 함께 이 날 연주된 곡들 중에서는 가장 나은 축에 속했다.
연주 후 커튼 콜이 이어진 뒤 리브라이히가 영어로 직접 앙코르를 소개했는데, '아리랑은 아니지만 한국인이라면 다 알 만한 노래' 라는 식으로 운을 띄우고 민요 '도라지' 의 편곡을 들려줬다. 물론 공식 프로그램에는 나와 있지 않아서 누가 편곡한 것인지 꽤 궁금했는데, 이 궁금증은 의외로 빨리 풀 수 있었다.
사실 공연 내내 집중하기가 좀 어려웠는데, 일단 음악당 자체의 음향 수준은 상당히 좋았지만 객석 바닥까지 모두 나무로 만들어 공연장 자체가 악기 역할을 하는 세종체임버홀과 비슷한 난점을 갖고 있었다. 말인 즉슨, 청중들의 매너가 좋아야 쓸데없는 잡음에 방해받지 않고 그 좋은 음향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뒷자리에 하필이면 아이들을 떼로 데려온 학부모들 덕에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내 지루해진 아이들은 끊임없이 마룻바닥을 밟아 다지고 때로는 앞자리 좌석을 발로 툭툭 건들며 '합주' 에 동참했고, 아이들 외에 라벨 피아노 협주곡 연주 직전까지도 계속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대던 몇몇 '어른이들' 도 진상인 건 비슷했다. 오죽하면 내가 '사진 좀 그만 찍으시죠?' 라고 대놓고 핀잔을 줬을까.
좀 거칠게 말하자면, 통영시청이나 통영국제음악제 측이나 좋은 공연장 지어놓았다고 만족스럽다고 한다면 그건 참 실없는 자뻑이다. 아예 객석 소음마저 집어삼킬 정도의 폭발적인 음량을 자랑하는 록 공연이나 청중들의 일탈이 어느 정도 용인되는 재즈 공연이 아닌 이상, 그리고 클래식 전용 홀로 지어놨다고 공표한 이상 그 공연장의 이미지 관리는 시청과 음악제, 그리고 청중들과 연주자들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어느 한 쪽이라도 균형이 깨진다면 그 후폭풍이 어떠할 지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공연 후 사인회가 있다는 공지를 들어가기 전 확인했는데, 어차피 독주자 우대에 편향된 한국 공연예술계의 특성 상 '뭐 손열음 사인회겠네' 하고 생각해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로비로 가보니 손열음과 리브라이히가 나란히 앉아서 사인을 해주고 있었는데, 손열음은 제껴두고 리브라이히의 사인을 받고 싶어서 바로 줄을 섰다. 다만 로비에서 쇼팽의 녹턴 앨범이 팔리고 있던 손열음과 달리, 리브라이히는 뭔가 자신있게 내밀어 사인받을 음반이 수중에 없었다.
그런데 잘 보니 공연 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앨범이 하나 더 팔리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하이든 교향곡 39번과 45번에 윤이상 실내교향곡 1번이 커플링된 ECM 음반이었다. 이 음반은 이미 예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모처에서 빌려들은 것이라 '언젠가는 사야 겠다' 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구입했다. 덕분에 좀 더 떳떳하게 사인을 요청할 수 있었다.
리브라이히 앞에 서게 되자, 오랜만에 현지까지 가서 배우기도 한 독일어 실력을 살려 공연이 좋았다는 말을 전하고 앙코르의 편곡을 누가 했는 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자 리브라이히는 음반 속지에 사인을 해주면서 뒷쪽에 실린 뮌헨 실내 관현악단 단원 명부 중 누군가의 이름에 표시를 해줬다. 악단 바이올린 단원인 베른하르트 예스틀(Bernhard Jestl)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편곡을 해줬다고요?' 라고 약간 놀란 어조로 묻자, 리브라이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지만 작곡도 한다' 고 답해줬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비매너 청중들의 민폐 덕에 우거지상이 되어 공연장을 빠져나오긴 했지만, 이 순간 만큼은 다시 헤벌쭉해졌다. 사인을 받은 뒤에는 '내일 공연의 성공을 바랍니다' 라는 말을 리브라이히에게 전하고 터미널로 가기 위해 음악당을 빠져나왔다.
음악제는 앞으로도 큰 탈이 없는 한 계속 이어지겠지만,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유무형의 지원이나 청중들의 관람 태도 개선, 주최 측의 책임 있는 운영도 한국의 여타 음악제와 마찬가지로 절실하게 느껴졌다.
이미 돌아갈 차표를 예매했기 때문에, 올 때처럼 느긋하게 걸어갈 수는 없었고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차가 뜸한 편이라 다소 조급한 심정으로 기다리다가 버스 하나를 발견하고 올라탔는데, 다행히 매우 충분하고 여유롭게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중간한 시간에 죽으로 끼니를 때운 탓에 배가 고팠는데, 시간은 많이 늦은 상태라 주변의 식당들도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래서 통영에서 먹은 마지막 한 끼는 터미널 맞은 편의 미니스톱에서 먹은 도시락이었다. 물론 편의점 도시락이라서 '나 이거 먹고 왔다' 고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찬이 꽤 푸짐한 편이라 배를 채우기에는 적당했다. 밥이 좀 적은 건 아쉬웠지만. 그리고 밤차에서 흔들리며 서울로 올라온 뒤, 다시 몇 시간 눈을 붙이고 서울 코믹월드로 향했다. 20대 때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몸이 안따라 주니 꽤 피곤했다.
이후에는 지금까지 교향악축제를 비롯해 클래식 공연을 본 적이 딱히 없는데, 다만 음반은 꽤 여러 종류를 구입했고 이곳저곳에서 처묵한 것들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포스팅은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다만 글 쓸 시간이 주로 주말에 국한되기 때문에 이 때 여러 편 써서 4일 주기로 저장해두는 '묵은 글 저장소' 신세는 당분간 면치 못할 것 같다.
일단 꿀빵 꾸러미를 보관소에 맡긴 뒤 올라갔는데, 공연장 내부는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이나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 그리고 최근 재개관한 대구시민회관처럼 슈박스(구두상자) 형태였다. 콘서트에 최적화된 설계인데, 3층에서 봤기 때문에 1층이 어떻게 되어 있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민문화회관보다는 좀 더 넓어 보였다.
하지만 이 개막 공연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음악제 사무국 측의 미숙한 일처리로 꽤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시작되었다. 공연 직전에 자꾸 중복 좌석표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인데, 심지어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 온 나조차도 그렇게 중복 예매로 골탕을 먹었다. 진행 요원들은 1층 로비에 가면 조치를 취해줄 것이라고 했지만, 불과 공연 시작 3~4분 전에 그러라는 건 좀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다행히 내가 예매한 좌석에 그대로 앉을 수 있었지만, 이 문제 때문에 공연은 결국 좀 지연되어 시작되고 말았다. 이 날 출연한 악단은 음악제를 위해 임시 조직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였는데, 정확한 악단원 명부가 없어서 확인은 못했지만 아마 리브라이히가 현재 상임 지휘자로 있는 폴란드 카토비체의 국립 방송 교향악단 단원들에 앙상블 TIMF 단원들을 주축으로 기타 객원 연주자들이 가세한 것으로 보였다.
현악 편성이 14-12-10-8-6으로 단촐한 것을 제외하면 표준 관현악단 편성이기는 했지만, 특이하게 관악 단원들은 대부분 한국인 혹은 한국계로 보이는 동양인 연주자들이었다. 대개 이런 편성의 악단을 조직할 때면 관악은 서양 연주자들을 데려다 쓰는 게 일반적이지만 뭔가 거꾸로 된 모양새였다.
첫 곡이었고, 내가 공연을 보러 오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던 윤이상의 '유동' 은 공연장에서는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음반도 국제 윤이상 협회 회원 전용반 3집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듣기 힘든 편이다. 해당 음반에는 페터 로네펠트 지휘의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이 초연 직전 제작한 방송 녹음이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해당 녹음보다 좀 더 빠른 템포를 잡고 팽팽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손열음이 협연한 라벨 협주곡은 앞에 연주된 윤이상 곡보다는 다소 심심하고 무덤덤하게 들렸다. 손열음이라는 피아니스트가 화려한 기교나 쇼맨십 보다는 다소 신중하고 중도적인 연주를 지향하기 때문에 그런 면을 의도적으로 죽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런 면모가 늘 마이너스인 것은 아니어서, 2악장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어울리게 들렸다.
다만 진한 블루 노트의 음색이 지배적인 1악장이나 떠들썩한 시장통 분위기의 3악장에서는 너무 얌전하게 연주한 듯한 모양새라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손열음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시각이 다소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들린 게 아닐 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여러 번의 커튼 콜 이후 앙코르로는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이 연주되었는데, 사실 개인적인 악취미로는 요즘 일본에서 대리 작곡 문제로 화두가 된 사무라고우치 마모루-라고 쓰고 니가키 타카시라고 읽는다-의 피아노곡을 골랐으면 했다. 손열음이 일본의 사무라고우치 열풍에 음반까지 내고 동참했음을 생각하면 그녀가 계속 관련 문제에 침묵만 하고있는 게 영 못마땅한 탓인데, 물론 그러고 싶어도 JASRAC(일본저작권협회)이 사무라고우치-니가키 간의 저작권 분쟁이 명확하게 끝날 때까지 모든 연주와 방송, 녹음을 봉인한 상태니 못했겠지만.
2부에서는 이번 음악제의 테마인 'Seascape' 에 어울리는 두 곡이 연주되었는데, 우선 브리튼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에서 간주곡 네 곡을 발췌한 '네 개의 바다 간주곡' 이 연주되었다. 이후 연주된 드뷔시의 작품이 인간이 배제된 자연으로서의 바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면, 브리튼 작품은 그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이 생활 속에서 늘 접하는 바다라는 느낌이다.
드뷔시 만큼은 아니지만, 브리튼 곡도 꽤 섬세하고 정교한 연주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곡이다. 그런 면에서 연주 자체는 약간 실망스러웠는데, 물론 마지막 곡인 '폭풍' 에서 휘몰아치는 연주로 만회하기는 했지만 두 번째 곡 '일요일 아침' 에서는 금관의 역량이 아쉬웠고 세 번째 곡 '달빛' 에서는 밀고 당기는 느낌이 좀 더 강했으면 했다.
마지막 연주곡인 드뷔시의 교향 소묘 '바다' 는 공교롭게도 2002년에 이 음악제를 처음 찾았을 때 정명훈 지휘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폐막 공연 2부의 첫 곡으로 연주한 곡이기도 했다. 이번이 두 번째 대면이었는데, 섬세한 디테일 면에서는 2002년 연주보다는 좀 떨어지기는 했지만 관악 파트의 난조도 브리튼 곡보다는 덜해서 윤이상 곡과 함께 이 날 연주된 곡들 중에서는 가장 나은 축에 속했다.
연주 후 커튼 콜이 이어진 뒤 리브라이히가 영어로 직접 앙코르를 소개했는데, '아리랑은 아니지만 한국인이라면 다 알 만한 노래' 라는 식으로 운을 띄우고 민요 '도라지' 의 편곡을 들려줬다. 물론 공식 프로그램에는 나와 있지 않아서 누가 편곡한 것인지 꽤 궁금했는데, 이 궁금증은 의외로 빨리 풀 수 있었다.
사실 공연 내내 집중하기가 좀 어려웠는데, 일단 음악당 자체의 음향 수준은 상당히 좋았지만 객석 바닥까지 모두 나무로 만들어 공연장 자체가 악기 역할을 하는 세종체임버홀과 비슷한 난점을 갖고 있었다. 말인 즉슨, 청중들의 매너가 좋아야 쓸데없는 잡음에 방해받지 않고 그 좋은 음향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뒷자리에 하필이면 아이들을 떼로 데려온 학부모들 덕에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내 지루해진 아이들은 끊임없이 마룻바닥을 밟아 다지고 때로는 앞자리 좌석을 발로 툭툭 건들며 '합주' 에 동참했고, 아이들 외에 라벨 피아노 협주곡 연주 직전까지도 계속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대던 몇몇 '어른이들' 도 진상인 건 비슷했다. 오죽하면 내가 '사진 좀 그만 찍으시죠?' 라고 대놓고 핀잔을 줬을까.
좀 거칠게 말하자면, 통영시청이나 통영국제음악제 측이나 좋은 공연장 지어놓았다고 만족스럽다고 한다면 그건 참 실없는 자뻑이다. 아예 객석 소음마저 집어삼킬 정도의 폭발적인 음량을 자랑하는 록 공연이나 청중들의 일탈이 어느 정도 용인되는 재즈 공연이 아닌 이상, 그리고 클래식 전용 홀로 지어놨다고 공표한 이상 그 공연장의 이미지 관리는 시청과 음악제, 그리고 청중들과 연주자들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어느 한 쪽이라도 균형이 깨진다면 그 후폭풍이 어떠할 지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공연 후 사인회가 있다는 공지를 들어가기 전 확인했는데, 어차피 독주자 우대에 편향된 한국 공연예술계의 특성 상 '뭐 손열음 사인회겠네' 하고 생각해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로비로 가보니 손열음과 리브라이히가 나란히 앉아서 사인을 해주고 있었는데, 손열음은 제껴두고 리브라이히의 사인을 받고 싶어서 바로 줄을 섰다. 다만 로비에서 쇼팽의 녹턴 앨범이 팔리고 있던 손열음과 달리, 리브라이히는 뭔가 자신있게 내밀어 사인받을 음반이 수중에 없었다.
그런데 잘 보니 공연 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앨범이 하나 더 팔리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하이든 교향곡 39번과 45번에 윤이상 실내교향곡 1번이 커플링된 ECM 음반이었다. 이 음반은 이미 예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모처에서 빌려들은 것이라 '언젠가는 사야 겠다' 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구입했다. 덕분에 좀 더 떳떳하게 사인을 요청할 수 있었다.
리브라이히 앞에 서게 되자, 오랜만에 현지까지 가서 배우기도 한 독일어 실력을 살려 공연이 좋았다는 말을 전하고 앙코르의 편곡을 누가 했는 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자 리브라이히는 음반 속지에 사인을 해주면서 뒷쪽에 실린 뮌헨 실내 관현악단 단원 명부 중 누군가의 이름에 표시를 해줬다. 악단 바이올린 단원인 베른하르트 예스틀(Bernhard Jestl)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편곡을 해줬다고요?' 라고 약간 놀란 어조로 묻자, 리브라이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지만 작곡도 한다' 고 답해줬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비매너 청중들의 민폐 덕에 우거지상이 되어 공연장을 빠져나오긴 했지만, 이 순간 만큼은 다시 헤벌쭉해졌다. 사인을 받은 뒤에는 '내일 공연의 성공을 바랍니다' 라는 말을 리브라이히에게 전하고 터미널로 가기 위해 음악당을 빠져나왔다.
음악제는 앞으로도 큰 탈이 없는 한 계속 이어지겠지만,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유무형의 지원이나 청중들의 관람 태도 개선, 주최 측의 책임 있는 운영도 한국의 여타 음악제와 마찬가지로 절실하게 느껴졌다.
이미 돌아갈 차표를 예매했기 때문에, 올 때처럼 느긋하게 걸어갈 수는 없었고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차가 뜸한 편이라 다소 조급한 심정으로 기다리다가 버스 하나를 발견하고 올라탔는데, 다행히 매우 충분하고 여유롭게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중간한 시간에 죽으로 끼니를 때운 탓에 배가 고팠는데, 시간은 많이 늦은 상태라 주변의 식당들도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후에는 지금까지 교향악축제를 비롯해 클래식 공연을 본 적이 딱히 없는데, 다만 음반은 꽤 여러 종류를 구입했고 이곳저곳에서 처묵한 것들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포스팅은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다만 글 쓸 시간이 주로 주말에 국한되기 때문에 이 때 여러 편 써서 4일 주기로 저장해두는 '묵은 글 저장소' 신세는 당분간 면치 못할 것 같다.
Posted by 머나먼정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