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대사관 정문에서 몇 발짝 뒷걸음질 치다 보면, 오른편에 KT 사옥과 중앙우체국 공사 현장이 있고, 왼편에는 중국음식점과 중국 상품 판매점, 외국 잡지 전문 서점 등이 눈에 띈다. 도향촌은 산동교자 왼편에 자리잡고 있다.
가게 주인분에게 허락받고 찍은 진열장 사진. 카운터를 보고 있던 여성 분은 만삭이셔서 그런지 살짝 짖궃은 미소를 지으시며 '배만 안나오게 찍어 주세요' 라고 부탁하셨다. 그래서 부득이 왼쪽만 노려서 찰칵. 아마 지금 쯤이면 출산하셨을 것 같은데, 요 몇 달 동안 가보질 못해서 잘 모르겠다.
아무튼 거기 가면 내가 꼭 고르는 네 가지를 사서 집으로 왔다. 붉은색을 좋아한다는 중국인들의 취향 때문인지, 가게에서 쓰는 포장용 비닐 봉투도 붉은 글씨 일색.
부용고. 가늘게 썬 튀밥 비슷한 것을 기름에 튀겨 뭉친 뒤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썰어 만든 일종의 강정인데, 투박한 모양새와 달리 카스테라풍의 부드러운 맛을 내서 나를 놀래킨 과자다. 빨간색과 녹색으로 박혀있는건 무슨 나무열매 잘게 썬 것 같은데, 정체는 잘 모르겠다. 다만 기름에 튀긴 과자라서 그런지 마지막에 기름맛이 좀 진하게 남는 단점이 있다. 녹차 종류를 곁들이면 좀 덜할 듯.
호도수. 호두 알갱이들이 들어간 일종의 쿠키인데, 다섯개 들이 기름종이 포장으로 팔고 있다. 그냥 먹으면 많이 달지 않은 평범한 과자로 생각하기 쉽지만, 뜨거운 물을 담은 컵에 한두 개 넣고 풀어주면 호두죽으로도 먹을 수 있다. 포장을 풀었을 때 사진은 못찍었는데, 과자에 호도수의 도(桃)자 같은 한자가 새겨져 있다.
장원병. 도향촌에서 파는 '월병' 종류 중에 가장 단순한 속재료를 쓰는 과자인데, 팥과 대추를 앙금으로 만들어서 속을 채운 물건이다. 대충 듣기로는 대추가 혈액 순환을 도와 머리를 맑게 한다는 효험이 있어서, 과거 시험을 보러 떠나는 자제들에게 장원 급제를 기원하며 선물했다는 일화도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산동팔보. 소위 얘기하는 '중국식 월병(웨빙)' 에 근접한 두 가지 상품 중 하나인데, 원래 도향촌이 자랑하는 월병은 '십경월병' 이지만 개당 3000원이라는 엄청난 고가라서 사먹어본 것도 딱 한 번 뿐이었다. 가격 등을 고려했을 때 벌벌 떨지 않고도 사먹을 수 있는 물건. 속은 디카 화질이 구리고 발로 찍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콩고물에 건포도, 땅콩, 호두, 대추 같은 견과류들이 들어 있어서 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외에도 화생수(땅콩쿠키), 지마병(참깨월병), 수피(파이), 천층수, 흑지마수, 백지마수, 오인수 등이 있는데, 재료나 만드는 법의 차이만 있고 속재료 사용은 다른 과자와 비슷비슷하다. 가령 지마병, 수피, 천층수는 장원병과 같은 팥+대추 고물을 쓰고 있고, 오인수도 파이 기지에 십경월병이나 산동팔보 고물이 들어간 과자다.
월병이나 기타 밀가루 과자 외에도 산사고(산사나무 열매로 만든 양갱)나 녹두고(녹두가루로 만든 일종의 다식), 교과(일종의 튀김과자), 흑지마당(검은깨 강정)과 화생당(땅콩강정) 등이 있는데, 아직 다 먹어보진 못했다. 다만 산사고 같은 경우에는 내가 생각했던 '양갱' 의 맛에서 미묘하게 벗어나 있었다. (나오키식 표현으로 따지면 '맲아' 정도?)
아무튼 글 쓰고 나니 홈페이지도 요 근래에 만든 것 같아 추가. 도향촌 외에도 중국과자 전문 매장이 유명 백화점 등에 입점해 있지만, 가격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비싸서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그 외에 인천 차이나타운에도 복래춘인가 어딘가 하는 전문점이 있다는데, 아직 가본 적이 없어서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