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 애호가로 시작해서 전공자의 길을 걷고 있는 녀석이다. 그 만큼 공연장에 가는 것도 상당히 좋아하고, 심지어 내가 듣고 싶은 곡이 있다면 교통비를 불문하고 지방에라도 찾아가는 짓거리도 종종 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주머니 사정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서울이든 지방이든 간에 아무래도 저가형 공연을 많이 찾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 글의 자극적인 타이틀대로, 항상 그런 연주회에 갔다 오면 아무리 좋은 연주였다고 해도 항상 감동 반 실망 반의 감정을 안고 돌아오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아래는 내가 최근에 직접 겪은 두 번의 사례다;
#1
3월 23일에 고양의 덕양 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에서 있었던 고양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 이 악단은 고양시민이 가장 애호하는 작곡가로 선정된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교향곡 전곡을 올 한해 동안 완주한다는 계획을 잡고 있고, 이 날에는 초기작인 교향곡 1번과 2번이 연주되었다.
입장료는 으뜸자리 10000원, 좋은자리 8000원, 편한자리 5000원으로 서울 지역의 관현악단 공연보다도 더 저렴한 수준이었다. 물론 그 간의 '비지떡 징크스' 가 신경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내가 처음으로 '실제 공연으로 다 들어보겠다' 고 다짐한 베토벤 교향곡 시리즈이므로 가능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듣기로 했다.
물론 공연 내내 나의 인내심-정확히 말하자면 냉소와 조롱을 가슴에 품고-은 내가 생각해도 기특할 정도로 잘 발휘되었다. 이러한 저가 공연에서는 으레 벌어지는, 질럿 러쉬를 연상시킬 정도였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의 대량 입장으로 인한 소란스러움도 여전했다. 아니, 여전한 수준을 떠나 컬트적이라고 할 만큼 대단했다. 그 때문에 쉴새 없이 터져나오던 기침 소리라던가, 각 악장이 끝나고 계속 튀어나오는 박수는 논의할 가치도 없을 정도였다.
#2
3월 28일에 전주의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있었던 전주 시립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 이 악단은 개인적으로 한국 지휘자들 가운데에서 가장 선호하는 박태영이 상임 지휘자로 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아가서 공연을 봤을 정도였다.
이 악단의 정기 연주회 입장료는 1층 객석이 7000원, 2층 객석이 5000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위의 고양 필보다도 더 싼 가격인데, 가격 하락에 반비례하는 청중 민폐도는 내가 뻔질나게 찾아갔던 2002년 때와 별 다를 바 없었다. 아니, 더 심했으면 심했지.
1부 공연 시작 전부터 이미 촌극은 시작되고 있었다. 악단 조율 중에도 계속 '값싼 자리였던' 2층에서는 화기애애한 잡담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이는 공연 중에도 계속되었다. 심지어 악단 단원들조차 2층 객석을 계속 야리면서 연주를 할 정도였다.
서곡이 끝난 뒤 들어온 청중들의 감탄할 만한 무개념도 이어졌다. 협연자였던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이 무대 인사를 하고 조율까지 한 직후에도 자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이들 때문에 공연은 계속 지연되었고, 지휘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2층의 잡담도 여전해 백주영씨 마저도 계속 객석을 주시하면서 연주했을 정도였다.
2부 공연은 그보다는 '살짝' 덜했지만, 여전히 핸드폰 벨소리라던가 쉴새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소리, 연주 중에 쿵쿵 거리며 자리를 빠져나가는 이들, 그리고 약방의 감초인 '악장 간 박수' 는 '싼 게 비지떡' 이라는 교훈을 되새겨줄 뿐이었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비지떡' 현상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한국 공연 문화의 '풍습' 이다. 값이 싼 만큼-거기다가 학생들의 경우에는 할인까지 되니까-일선 학교에서는 이를 '학생들의 문화 생활 향유' 를 위한 기회로 쓰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 '기회' 에 대한 동기 부여의 방식이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도 종종 이러한 '동원형 공연' 을 본 적이 있었다. 내 의지로 가는 것도 아니었고, 쌩까거나 하면 다음 날 나를 기다리는 것은 체벌 혹은 점수 감점 등의 '징벌' 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정말 보고 싶다' 라고 생각한 것들도 아니었고.
이런 상황이니 공연에는 거의 집중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따분하고 지루해서 그냥 조용히 닥치고 공연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도 '증거물' 인 입장권과 '요식행위성' 감상문을 준비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있었고.
공연을 보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과제' 라는 이유 때문에 오는 학생들, 더군다나 저연령층 청중들이 제대로 된 감상 마인드를 가지고 올거라는 기대는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게다가 내가 보기에는 저렇게 '동원하고 있는' 학교들에서는 공연 감상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에티켓 교육도 하지 않고 있던가, 아니면 대충 하고 보내고 있다.
이런 꼬라지니, 청중은 물론 연주자들도 짜증을 가슴에 한껏 품고 연주하는, 또 들려지는 음악은 이미 그 가치가 상당 부분 떨어져 허공에 정신없이 흩어지고 있다. 고양시민들이 정말 베토벤을 좋아하고 있기는 한걸까? 전주라는 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예향' 이라는 이미지가 계속 어울리는 곳인가?
하지만 이러한 '관습' 은 굳이 수도권이나 지방만 그런 건 아니다. 서울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여전하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 보내놓고 보자' 는 식의 상명하복식 들이대기성 동원령이 계속되는 한, 공연장의 천태만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조니 로턴이 회고한 것처럼 사이가 안좋은 다른 학교 학생들이랑 맞닥뜨릴 때는 주먹다짐을 할 지도 모르겠다. 공연 중에도 객석에서 들려오는 앙칼진 욕설과 외마디 비명의 대활극. 기대되지 않는가?
p.s.1: 에릭 사티는 어쩌면 환호성을 지를 지도 모르겠구만.
p.s.2: 저가 공연을 본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느냐' 는 사람들에 대한 대답;
p.s.3: 이 글의 문체는 이글루 밸리의 '뉴스 비평' 에서 가끔씩 독특하게 빈정대시는 자칭 '우파' 분들의 글들을 상당 부분 참고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분들의 포스는 못따라가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