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노 코즈에의 작품인 '아리아' 1권에서는 '만지작 아가씨' 미즈나시 아카리와, 그녀의 천적(???) 아카츠키가 네오 베네치아에서 각자 약속을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특히 눈여겨 본 것은, 나 자신이 불과 며칠 전에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만난 누군가가 크리스마스 번개를 제안했고, 마땅히 즐길 이벤트도 없는 솔로부대원인 나는 거기에 응해 나가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온라인' 이 문제가 되었다. 상대는 나를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고, 나도 그러했다. 과연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
물론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서로 인상을 모른다는 것 외에도, 그 주최자의 핸드폰은 문자메시지만 수신이 가능했고 나는 그 핸드폰 자체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과연 유사시에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 할까.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그 사람도, 그리고 나도 서로의 위치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핸드폰도 없던 나는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계속 왔다갔다 해야 했고, 그나마 공중전화로는 가족들의 핸드폰으로 '대리 문자' 를 날리도록 부탁하는 수준이었다.
약속 장소는 그 사람도, 또 나도 너무 잘 아는 곳이었기 때문에 정말 답답했다. 결국 '이 사람이겠다' 싶은 사람들을 붙잡고 계속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두 '아닌데요' 였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당신 누구야?" 라면서 굉장히 기분나쁘다는 듯이 한참을 쳐다보던 턱에 열받기도 했다.
결국 나는 그 곳에서 1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GG를 때려야 했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오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금 더 찾아볼 걸 그랬나', '내가 왜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런 고생을 해야 되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러고 나서 어제 예의 '아리아' 1권을 구입했다. 화성을 개발해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들 정도의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상 생활 방식은 소위 '구닥다리 옛 방식' 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영위하는 네오 베네치아인들의 좀 모순된 것 같은 상황이 흥미를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로 그려지고 있었다.
몇 시간이고 약속했던 사람이 오지 않아 조바심에 짜증을 부리는 아카츠키와는 대조적으로, 미즈나시 아카리는 오히려 그 '기다림' 을 즐긴다.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아카츠키에게 '관광 가이드' 까지 해 줄 정도로 여유롭다. 이상하게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현실은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전역' 이라는 감격스러운 이벤트 뒤에도 나는 통장 잔고를 봐가면서 전전긍긍하는 생활을 여전히 계속 하고 있고, 나 자신과의 약속인 '내년 여름 개인 음악회' 를 위한 작곡에다가 값비싼 관현악 총보 구입, 거의 '학습' 을 위해 다니는 연주회까지 포함하면 돈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릴랙스' 를 위해 택한 번개가 물거품이 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리아' 의 에피소드를 보고 나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그 상황에서 계속 조바심을 내고 전화통을 붙들고 늘어져야 소모되는 것은 인내심과 동전들 뿐이지 않았는가. 굳이 그 모임이 실패로 돌아갔다고는 해도, 다른 이벤트를 찾아 즐기면 되지 않았을까.
물론 아카리처럼 순도 100%에 가까운 소위 '만만디' 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이런저런 정신없고 자질구레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기다림', 혹은 '여유로움' 을 찾았으면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 크리스마스 모임을 약속했던 사람과 다시 한 번 연말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에도 그 때의 '실수' 가 반복될까? 물론 반복된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또 만남에 실패하더라도, 기다리는 동안이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일이 되지 않을까.
*마땅한 트랙백 주제가 없어서 부득이 '여행' 을 택했습니다. 괜한 낚시글이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온라인에서 만난 누군가가 크리스마스 번개를 제안했고, 마땅히 즐길 이벤트도 없는 솔로부대원인 나는 거기에 응해 나가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온라인' 이 문제가 되었다. 상대는 나를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고, 나도 그러했다. 과연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
물론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서로 인상을 모른다는 것 외에도, 그 주최자의 핸드폰은 문자메시지만 수신이 가능했고 나는 그 핸드폰 자체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과연 유사시에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 할까.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그 사람도, 그리고 나도 서로의 위치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핸드폰도 없던 나는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계속 왔다갔다 해야 했고, 그나마 공중전화로는 가족들의 핸드폰으로 '대리 문자' 를 날리도록 부탁하는 수준이었다.
약속 장소는 그 사람도, 또 나도 너무 잘 아는 곳이었기 때문에 정말 답답했다. 결국 '이 사람이겠다' 싶은 사람들을 붙잡고 계속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두 '아닌데요' 였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당신 누구야?" 라면서 굉장히 기분나쁘다는 듯이 한참을 쳐다보던 턱에 열받기도 했다.
결국 나는 그 곳에서 1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GG를 때려야 했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오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금 더 찾아볼 걸 그랬나', '내가 왜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런 고생을 해야 되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러고 나서 어제 예의 '아리아' 1권을 구입했다. 화성을 개발해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들 정도의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상 생활 방식은 소위 '구닥다리 옛 방식' 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영위하는 네오 베네치아인들의 좀 모순된 것 같은 상황이 흥미를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로 그려지고 있었다.
몇 시간이고 약속했던 사람이 오지 않아 조바심에 짜증을 부리는 아카츠키와는 대조적으로, 미즈나시 아카리는 오히려 그 '기다림' 을 즐긴다.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아카츠키에게 '관광 가이드' 까지 해 줄 정도로 여유롭다. 이상하게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현실은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전역' 이라는 감격스러운 이벤트 뒤에도 나는 통장 잔고를 봐가면서 전전긍긍하는 생활을 여전히 계속 하고 있고, 나 자신과의 약속인 '내년 여름 개인 음악회' 를 위한 작곡에다가 값비싼 관현악 총보 구입, 거의 '학습' 을 위해 다니는 연주회까지 포함하면 돈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릴랙스' 를 위해 택한 번개가 물거품이 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리아' 의 에피소드를 보고 나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그 상황에서 계속 조바심을 내고 전화통을 붙들고 늘어져야 소모되는 것은 인내심과 동전들 뿐이지 않았는가. 굳이 그 모임이 실패로 돌아갔다고는 해도, 다른 이벤트를 찾아 즐기면 되지 않았을까.
물론 아카리처럼 순도 100%에 가까운 소위 '만만디' 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이런저런 정신없고 자질구레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기다림', 혹은 '여유로움' 을 찾았으면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 크리스마스 모임을 약속했던 사람과 다시 한 번 연말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에도 그 때의 '실수' 가 반복될까? 물론 반복된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또 만남에 실패하더라도, 기다리는 동안이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일이 되지 않을까.
*마땅한 트랙백 주제가 없어서 부득이 '여행' 을 택했습니다. 괜한 낚시글이 되었다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