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일제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유럽을 비롯한 세계 만방에 우리의 존재를 알린 애국적인 음악가. 이것이 그 동안 그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였다.
하지만...과연 그것이 '일반적인' 평가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평가를 거의 뒤집는 엄청난 자료들이 결국 공개되고 말았다. 몇개월 전, 한국의 국가(national anthem)에 대한 존립마저 위태롭게 한 동영상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바로 그 자료가 국내 최초로 고스란히 공개된 것이었다.
어제(19일) 봉천동의 '신포니아' 라는 음악감상실에서 월간지 '객석' 에 안익태의 유럽 체류 시절 보여준 수상쩍은 행각들을 공론화한 바 있던 음악사회학자 송병욱씨가 강연회를 가졌다. 그리고 그 강연회의 첫 순서가 바로 안익태가 지휘한 자작곡인 '만주국' 의 영상물 시청이었다.
이 영상물은 독일의 베를린에 있는 국립영상보관소에서 입수된 것이었는데, 연구 목적으로 단 1회 상영한다는 조건으로 20만원에 가까운 거금을 지불하고 가져온 것이었다. 1942년 9월 18일 베를린의 구 필하모니(Alte Philharmonie)에서 열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음악회' 의 일부인데, 에키타이 안(안익태의 일본식 이름)의 '만주국(Mandschoutikuo)' 이 약 7분 남짓한 길이로 녹화된 필름이었다.
합창 파트의 가사는 당시 주독 일본 공사였던 에하라 고이치가 썼고, 연주는 라미 합창단(Singgemeinschaft R.Lamy)과 나치의 국책 관현악단이었던 베를린 대 방송 관현악단(Grosses Rundfunk-Orchester Berlin)이 맡았다. 물론 지휘는 작곡자이기도 한 안익태 자신이었다.
이 동영상은 정말 충격적인 자료였다. '한국 환상곡' 에서 합창이 등장하기 직전의 소재와 비슷한 관현악 경과구가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정신이 멀쩡한 상태였지만, 이어 장렬한 관현악 총주 속에서 합창이 등장하면서 부터는 정말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합창단이 부르는 첫 선율은 '한국 환상곡' 에서 '무궁화 삼천리 나의 사랑아...' 라는 가사로 불려지는 그것과 거의 동일한 것이었고, 이어 나오는 또 다른 선율 또한 '화려한 강산 한반도...' 라는 가사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아니, 대한민국을 상징하다시피 하는 '한국 환상곡' 에 나오는 선율이 하필이면 왜 일본의 괴뢰 국가인 '만주국' 의 창설 10주년 기념 음악회를 위해 작곡한 작품에서 나온다는 말인가? 나는 귀를 의심해야 했지만, 정말이었다.
게다가 코다에서 사용된 멜로디는 중국 민요인 '우리의 영웅, 소무' 였다. 만주국이 중국의 둥베이 지방에 세운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인용이었을까? 감상실에 중국인이 있었다면 아마 그 또한 얼굴이 시뻘개졌을 것이다.
영상물은 당시 독일이 전쟁 중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했고, 몇몇 장면에서는 이 곡의 작사자인 에하라 고이치로 추정되는 한 일본인 남성이 두 번이나 비춰졌다. (심지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로 보이는 한 대머리 중년까지 나왔다. 정말 푸르트벵글러가 청중으로 입회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물론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강연회는 그간 쌓아올려졌던 안익태의 이미지라는 젠가를 하나씩 붕괴시킬만한 여러 증빙 자료들을 제시하며 계속 되었다.
이어서 다룬 곡은 안익태의 관현악곡인 '강천성악' 이었다. 안익태 자신이 '세종대왕께서 아악을 창작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며 작곡했다' 는 곡이었다. 하지만 (지겹게 또 반복해서 죄송하지만) 이 곡의 중간에 오보에로 연주되기 시작하는 선율이 일본 가가쿠 악곡 중 하나인 '에텐라쿠' 와 거의 똑같다는 것은, 내가 2004년에 이 블로그와 네이버 블로그(현재 폐쇄)를 통해 지적했다가 욕바가지로 보답받은 바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송병욱씨는 가가쿠 악단인 도쿄 가쿠소 연주의 원본 '에텐라쿠', 누마지리 류스케 지휘의 도쿄도 교향악단이 연주한 고노에 히데마로의 서양 관현악 편곡판, 그리고 이어 김만복 지휘의 KBS 교향악단이 연주한 '강천성악' 을 차례대로 들려 주었다. 결과는 뻔했다.
나는 세종대왕께서 일본의 가가쿠 창작에까지 손을 대셨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플루트가 연주하는 샤쿠하치풍 선율이 우리 민족의 음악 어법이라는 것에서도 '뽕짝은 우리 나라 전통 가요다' 라는 분들의 주장을 실증하는 듯 했다.
안익태의 '강천성악' 은 안익태의 미망인인 로리타 안 여사가 1930년대 후반에 작곡된 작품이라고 주장했고, 그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1930-40년대 안익태가 '강천성악' 을 연주회 무대에서 지휘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오히려 관현악 환상곡 '에텐라쿠' 는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연주회 팜플렛이나, 여러 가지 정황을 따져 보았을 때 '에텐라쿠' 가 사실상 '강천성악' 이라는 것이 송병욱씨의 주장이었다.
다만 '에텐라쿠' 라는 이름을 해방 후 그대로 사용했을 때 닥칠 후환을 두려워 한 나머지, 안익태가 제목을 비슷하게 바꾸고 세종대왕을 언급하며 이 곡이 가진 어두운 과거사를 덮으려는 시도를 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 진위는 조금 더 연구해 봐야 나오겠지만, 현재 가장 믿을 만한 주장이었다.
그리고 강연회는 계속 되었다. 안익태의 전기를 처음 집필한 김경래씨가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한가를 실증하는 에피소드들-뉴욕에서 인종차별을 받았다는 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손녀를 익사 직전에서 구출했다는 둥, 베를린 필을 1940년에 처음 지휘했다는 둥-이 계속 이어졌고, 최근에 안익태의 유족과 기념재단 측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의혹들도 다루어졌다. 그리고 안익태가 보여준 몇몇 권력 지향적인 면모들-이승만에게 좀 과하다 싶은 찬사를 '한국 환상곡' 의 헌사로 작성했다가, 4.19 혁명 이후 슬그머니 철회한 것 등-도 다루었다.
내가 정말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악보던 수기던 간에 안익태 자신의 필적으로 된 자료들이 왜 행방불명 상태이거나, 있더라도 공개가 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만주국' 의 필름을 비롯하여, 안익태가 에하라 고이치의 집 주소로 된 곳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보낸 편지 두 통 등 확실한 증거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념재단 측이 애써 무시하거나 그 의미를 축소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인상까지 들었다.
뭔가 뒤가 켕기지 않는다면, 당연히 자료들을 연구용으로 기꺼이 내놓는 것이 한 위인을 기리는 기념재단 측의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왜? 어째서? 대체 그 자료들이 얼마나 문제가 있길래 내놓는 것을 그토록 꺼리고 피하는 것일까? 게다가 허영한이나 이경분 등의 음악학자가 안익태의 외국 체류 시절에 관한 강연을 하는 것까지 취소시켰던 것일까?
이어서 마지막 순서였던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만주국' 의 코다에서 사용된 선율이 중국 민요라는 것과, 에텐라쿠와 강천성악의 유사점을 이미 2004년에 글로 남긴 적이 있다고 솔직하게 발언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일본인이 아닌, 반(1/2) 일본인이었던 안익태가 왜 만주국 기념 연주회를 지휘해야 했을까' 라던가, 그리고 왜 그 연주회에 안익태가 참가했는가에 대한 신선한 주장들을 펼쳤다.
(만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선치화', 즉 일본인보다는 좀 더 중국에 친화적이고 같은 식민지 백성 신세라는 조선인을 통해 중화민족을 다스린다는 슬로건을 내건 나라였기 때문에, 조선인이었던 안익태가 지휘대에 서게 되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만주국이 '모든 민족이 이상적으로 살 수 있는 나라' 라는 바램 속에 세워졌기 때문에, 안익태가 그 이상에 끌려 연주회를 지휘하게 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안익태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처럼, 굳이 우리 나라와 민족에 먹칠을 하는 효과를 낳게 될 지도 모른다' 는 사람도 있었고, '안익태는 친일파였다는 식으로 논쟁이 전개되어, 결국에는 친일이냐 아니냐는 식의 말초적이고 지엽적인 말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송병욱씨가 최종적으로 던진 '안익태는 과연 누구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애국자였다고 올곧게 주장하는 이들이, 과연 확실한 근거에 의해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상당히 중요한 시간이었다.
p.s.: 강연회 후 뒷풀이 시간에 '애국가' 의 가사 세팅 문제, 일본이 박은 쇠말뚝이 민족 정기 파괴가 아니라 사실 측량용으로 박은 것 뿐이라는 견해 등을 강연회에 참석했던 여러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어제 내가 보낸 시간은 정말 귀중한 것이었다. 뭔가 '열린 방식' 으로 토론을 벌일 수 있었으니까. 안익태 기념재단 측에도 이러한 '열린 방식' 의 접근을 촉구하고 싶다.
p.s.2: 그리고 이 강연회 소식을 전해 준 령 님에게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 분이 아니었으면 아마 이 강연회가 열렸는 지도 몰랐을 것이고, 강연회가 열린 음악감상실에서 LP를 CD로 복각해 준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강연회에서 어줍잖은 내 블로그에 관심을 보여준 사람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