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엄청 고지식할 정도로 편집광적인 면에 완벽주의 기질까지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하지 못할 언동이 종종 나오곤 한다. 아마 그래서 악기를 배우면서 지금까지 완전히 만족한 적도 없었으리라. (미스터치 하나만 나와도 신경질적으로 건반을 내리치곤 하니까)
차라리 완전히 어렸을 때 배웠더라면...이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당시 가정 형편이 보통 이하였기 때문에-완전히 못사는건 아니었지만, 어쨌든-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긴, 과거에 화풀이해 봤자니까. 그리고 밑에도 쓰겠지만, 너무나도 궁색한 변명이고. 그저 음악의 중요성을 몰랐던 내 탓이다.
그래도 어쨌든 음악이건 미술이건, 어렸을 적에 해두면 꽤 괜찮은 것 같다. 교양으로서도 그렇지만, 일단 거기에 이빨을 박고 놓지 않으려면 소년소녀 시절의 혈기왕성함과 빠른 습득력이 뒷받침되어야 성인이 되어서 덜 힘들다는 것이다. (확실히 지금 뼈저리게 느끼는 중)
청소년 음악 활동이 사회 변혁까지 일으키고 있는 현장 두 곳이 있다고 해서 한 번 조사해 봤는데, 역시 군대 갔다 오니 강산은 변해 있었다.
1. 베네수엘라
내가 군에 입대하기 직전이었던 2004년 10월 21일, 세계일보에 주 베네수엘라 공사라는 사람이 쓴 칼럼이 스크랩되어 있는 것을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다.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관현악단에 대해 소개한 글이었는데, 공식적으로만 베네수엘라에 등록되어 있는 청소년 관현악단의 수가 무려 120개 단체나 된다는 이야기로 운을 떼었다.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로 구성되는 유소년 관현악단도 60개 단체라고 했다.
베네수엘라 하면 나에게 그 동안 떠오르던 이미지는 기껏해야 '미인대회' 라던가, '석유 믿고 미국에게 개긴 나라' 정도였다. 그저 말초적이고 지엽적인 개발도상국으로만 기억되던 나라가 웬일인가 했는데, 결국은 그 중 하나인 '시몬 볼리바르 국립 청소년 관현악단' 이 상임 지휘자인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과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베토벤 교향곡 5번과 7번이라는 레퍼토리로 화려하게 메이저 음반사에 첫 음반을 만들었다.
ⓟ 2006 Deutsche Grammophon GmbH
솔직히 말하자면, 베네수엘라는 우리보다 훨씬 못사는 나라다. 청소년 범죄와 실업률, 학력 문제도 상당히 심각한데, 그나마 그것을 상당 부분 일소해준 것이 바로 청소년과 유소년에 대한 대대적인 음악 교육이었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é Antonio Abreu)라는 인물이 이 흐름을 이끌 재단을 설립했는데-베네수엘라 현지에서는 '엘 오르케스타(el orquesta)' 혹은 '엘 시스테마(el sistema)' 라고 줄여서 부름-, 그의 원래 직업은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이었지만 열성적인 아마추어 오르가니스트이기도 했다.
아브레우의 '시스테마' 는 약 30년 전에 시작되었고, 그 결과 현재 25만여 명이나 되는 청소년과 유소년들이 베네수엘라 각지의 음악 학교에서 음악을 배우고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관현악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두다멜을 비롯해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된 콘트라베이시스트 에딕손 루이스(Edicson Ruiz) 등의 유명인들도 상당수 배출되었다. '시스테마' 의 1세대 대부분이 자연스레 시몬 볼리바르 국립 음악원을 비롯한 음악 학교의 강사 혹은 교수로 이 운동을 줄기차게 이끌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초창기에는 외국인 단원들이 대다수였던 베네수엘라의 30여 프로 관현악단들도 이제는 자국인이 대부분인 상황이 되었고, 아브레우의 '시스테마' 가 청소년 관현악단들의 해외 연주 여행으로 알려지게 되자 주세페 시노폴리를 비롯해 주빈 메타,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등의 유명 지휘자들이 그 후견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밑에 소개할 '서동시집 관현악단' 의 창시자인 다니엘 바렌보임도 이 '시스테마' 의 열성적인 지지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아브레우의 이 음악 운동으로 수혜를 받고 있는 청소년과 유소년 대부분이 극빈층 혹은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이라는 점이다. 에딕손 루이스의 경우에도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굴에서 슈퍼마켓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같이 꾸려 나가던 처지였고, 나머지 아이들도 구두닦이나 환경미화원, 공장 노동자 등의 갖가지 직업을 가진 채로 주경야독 식으로 음악을 배워 나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거나, 그 상당 부분을 떠안고 알콜과 마약 중독, 폭력, 강도, 강간 등의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빈민촌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점차 음악이라는 하나의 대명제로 인해 자신의 삶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게 된 것이 아브레우의 '시스테마' 가 이루고 있는 가장 큰 성과다. 베네수엘라에서 음악은 '등따습고 배부른 자의 것' 만이 아니게 된 것이다.
2. 서동시집 관현악단
'서동시집(West-östlicher Divan)' 은 독일 대문호 괴테가 이란 시인 하피즈의 번역 시집을 읽고 감명받아 남긴 만년의 걸작이다. (따라서 '동서시집' 이라는 말은 명백한 오역임) 이렇게 동서양 문인 사이에 생겨난 교감을 음악에도 적용시키고자 한 것이 바로 '서동시집 관현악단' 이다. 베네수엘라의 '시스테마' 가 30년 이상을 이어오고 있는 장기적인 노력 끝에 이룬 결과물이었다면, 이것은 단기간에 이룬 최고의 성과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서동시집 관현악단은 1990년대 초반에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과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 겸 작가였던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런던의 한 호텔 로비에서 만나 환담을 나누면서 그 씨앗이 뿌려졌다. 특이한 것은, 바렌보임은 아르헨티나 태생의 유태인이었고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태생의 아랍인이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당시에도 계속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난민 간의 극심한 갈등과 대립을 음악으로라도 풀어 보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고, 결국 1999년에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서동시집 관현악단' 의 창단을 발표했다. 바렌보임은 이스라엘 극우/원리주의자들의 원색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해 2월 팔레스타인의 한 대학교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연 뒤, 8월에 중동의 젊은 음악학도들을 독일의 바이마르로 데려와 가르치기 시작했다.
바렌보임은 14세에서 25세 까지의 청소년층 혹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단원을 모집하고, 그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유럽과 미국 각지의 음악원과 음악대학 등에서 유학을 알선하고 관현악단을 조직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인종과 민족을 불문하고 골고루 뽑혔으며, 단기간에 조화로운 앙상블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서동시집 관현악단은 2005년 가을에 워너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과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 로 이루어진 실황 앨범을 첫 음반으로 발표했다. 창단 6년 만에 이룬 성과물이었는데,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이어 겨울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총격전까지 벌어졌던 라말라에서 행해진 연주회 실황-곡목은 모차르트의 협주 교향곡 K.297b와 베토벤 교향곡 5번-도 CD와 DVD로 발매되었다.
ⓟ 2005 Warner Classics/EuroArts
유태인과 아랍인 양 측의 화합을 끌어내기 위해 바렌보임은 세세한 면까지 직접 지도하고 조직했는데, 예로 관현악단의 대표 격인 악장(concertmaster)은 이스라엘인과 레바논인 각 한 명씩 공동으로 맡도록 했다. (라말라 연주회에서도 협주 교향곡의 솔리스트를 아랍계 둘과 유태계 둘로 골고루 배분했었다) 그리고 바이마르에서 시작된 서동시집 관현악단의 워크숍은 바이마르와 시카고를 거쳐 현재는 에스파냐의 세비야를 중심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고, 연주회도 워크숍과 병행해 매년 8월부터 열리고 있다.
'음악으로 평화를 도모한다면 뭐하냐, 아직도 포성이 그치지 않고 있는데' 라며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지만, 진정한 평화를 위한 발걸음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아직 세파에 때묻지 않은 젊은 음악인들에게 음악 뿐 아니라 평화에 대한 이미지도 심어주고자 계획한 일이었고, 그 성과는 착착 진행 중이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이들은 자신들의 출신 국가에서 후배 음악인들을 지도하거나 현지 관현악단의 수석 주자로 활동하는 등 긍정적으로 많이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위의 두 가지 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크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음악은 무슨...' 이라던가, '북쪽 음악인들과 협연하다니, 친북주의자인가?' 라던가 하는 궁색한 변명과 유치한 비난이 난무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아직도 음악이 고소득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입시 때마다 각종 비리와 부정에 대한 폭로 기사를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는 이 땅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