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연주 혹은 연구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때로는 즐거움을, 때로는 괴로움을 안겨주는 것이 바로 판본(Fassung)의 문제다. 교향곡 한 곡을 다룬다고 해도 작곡자 자신이 개정하지 않은 것으로 할 것인지, 개정한 것으로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심지어 페르디난트 뢰베나 프란츠 샬크, 시릴 히나이스 같은 브루크너의 동료나 제자들이 멋대로 손을 댄 비공인판도 상당히 많다.
조그마한 지적 사항이라도 나오면 개정 작업에 들어가는 A형틱한 소심함 때문에 때로는 작곡 활동에 큰 지장을 줄 때도 있었는데, 특히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교향곡 9번에 있어서는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교향곡 9번이 3악장까지밖에 완성되지 못한 이유를 찾자면, 전작인 8번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큰 줄기를 찾을 수 있다. 브루크너는 1887년에 8번 교향곡을 완성하고, 이를 지휘자인 헤르만 레비에게 보여주며 평가를 부탁했다. 하지만 레비는 그 곡에 대해 '지나치게 길고 어두워서 이해할 수 없다' 고 일축해 버렸고, 브루크너는 이 한 마디에 대단히 상심해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브루크너가 택한 것은 곡의 전면적인 개정이었다. 1890년에 완성된 개정판은 원곡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친 것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곡 같을 정도로 컨셉을 확 바꿔버린 대목도 있었다. (예로 1악장의 엔딩과 2악장 중간부(트리오), 3악장 클라이맥스의 심벌즈와 트라이앵글) 하지만 개정벽이 도져버린 브루크너는 8번 외에도 3번, 심지어 초기작인 1번까지도 개정 작업 목록에 포함시켰고, 이러한 개정 작업의 연속으로 9번 교향곡의 작곡 속도는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브루크너는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4악장의 완성에 몰두했는데, 심지어 임종하던 날까지도 계속 작곡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브루크너도 결국 베토벤 이래로 계속되어 온 '9번 징크스' 를 깨지 못했고, 결국 유언으로 '3악장이 끝나면 테 데움(Te Deum)을 연주해 주기 바란다' 는 말을 남기고 1896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겨진 9번의 세 개 악장은 브루크너 사후 7년이 지난 1903년에 페르디난트 뢰베의 지휘로 빈에서 초연되었는데, 그나마 뢰베 자신이 멋대로 개정한 악보를 사용한 연주였다.
1930년대에 들어 이러한 비공인판의 득세에 맞서 브루크너 협회 관계자들은 작곡자가 남긴 자료들을 가지고 원전판을 간행하기 시작했는데, 그 신호탄이 된 것이 1932년 출판된 9번의 미개정판 악보였다.
알프레드 오렐이 새로이 편집한 9번의 악보는 출판한 해의 4월 2일에 지그문트 하우제거의 지휘로 카임 관현악단(현 뮌헨 필)이 연주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하우제거는 연주회의 1부에서 종래의 뢰베판을, 2부에서 다시 오렐의 편집판을 연주해서 그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 보였고, 이 때부터 비공인판의 연주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오렐의 신간 악보에는 4악장의 스케치 자료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말 그대로 자료일 뿐이었고 연주할 수 있는 상태라고 보기는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번의 말러 10번과 마찬가지로 이 스케치 자료들을 가만히 두지 못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첫 번째 인물이 윌리엄 캐러건(William Carragan)이었는데, 1984년에 4악장을 복원해 내놓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서 4악장 완성 작업에 뛰어든 이들로 이탈리아의 니콜라 사말레(Nicola Samale)와 주세페 마추카(Giuseppe Mazzuca)가 있었는데, 이들의 복원판은 1987년에 첫 선을 보였다.
4악장의 완성 작업에 대해 사람들의 견해는 크게 찬반 양론으로 갈렸는데, 낙소스에서 브루크너 전집을 완성했던 게오르크 틴트너 같은 경우에는 '역사적인 흥미만을 불러 일으킬 뿐' 이라고 일축했다. 종래의 브루크너 교향곡들이 마지막 악장에서 상당히 난잡한 모습을 보여준 것을 들어 '차라리 미완성인 지금 상태가 낫다' 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고,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같이 4악장 복원판을 지휘하는 대신 스케치들을 부분적으로 연주하며 강의를 하는 '렉처 콘서트' 로 찬반 양론을 떠나 학구적인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말레+마추카 콤비는 1992년에 존 앨런 필립스(John Alan Philips)와 벤야민 구나르 코어스(Benjamin Gunnar Cohrs) 두 사람을 더 끌어들여 1987년판을 개정했고, 이는 2004년에 재차 개정되었다. 캐러건도 1984년판을 2003-04년에 걸쳐 다시 개정해 발표했으며, 사말레 외 세 명의 개정판은 2003년에 낙소스에서 요하네스 빌트너(Johannes Wildner) 지휘의 베스트팔렌 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Neue Philharmonie Westfalen) 연주로 CD가 발매되었다.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이 음원이다.
공동 작업자 중 한 사람인 코어스는 직접 쓴 CD 속지에서 알프레드 오렐이 9번 개정판에 넣은 스케치에서 제외된 부분들의 행방, 브루크너의 비서였던 안톤 마이스너와 임종 때까지 진료한 의사 리하르트 헬러의 증언-헬러는 브루크너 자신이 9번 교향곡을 D장조의 '감사의 노래' 로 끝맺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실된 원고의 재발굴과 복원 작업 등을 상당히 자세히 써놓고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결국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고, 낙소스 전집 완성자인 틴트너의 견해를 거스르면서까지 음반을 발매한 것에 대해 의문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코어스가 내놓은 자신들의 작업에 대한 변명은 지난번의 말러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판본은 '연주회용 판본' 이며 선택은 청중들에게 맡겨진다는 것 같은데-영어라서 제대로 된 해석은 대략 난감-,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CD로서 가장 부담없이 집을 수 있던 것이 바로 낙소스 음반이었다. 물론 예전에도 사말레+마추카+필립스+코어스 판본은 일본 카메라타 레이블에서 나온 쿠르트 아이히호른 지휘의 린츠 브루크너 관현악단 연주 같은 몇몇 종류의 음반이 유통되고 있었지만, 비싼 가격과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에 쉽게 손대지 못하던 터였다.
물론 베스트팔렌 신 필하모닉이 신생 악단이라는 점 때문에 주저하기도 했는데-엄밀히 말하면 레클링하우젠의 베스트팔렌 교향악단과 겔젠키르헨의 시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합쳐진 악단이므로 신생은 아님-, 웅장한 맛은 그다지 기대하기 힘들지만 브루크너 교향곡 하면 떠오르는 금관의 강조와 오르간 사운드의 재현에 상당히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염가반인 것을 생각하면 '제값은 충분히 하는' 연주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이히호른의 황소걸음에 비하면 오히려 상쾌할 정도여서 듣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젊은 브루크너 연주' 라고나 할까? 돌아가신 틴트너 대협은 섭섭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으나, 이 음반도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의 '진 엔딩' 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그 가치를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