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국립극장 산하 예술단체인 국립국악관현악단 주관으로 열리고 있는 '겨레의 노래뎐'. 올해로 벌써 일곱 번째를 맞이하고 있는 공연인데, 남북 그리고 해외 동포들의 노래-노래라고는 하지만 모든 종류의 음악을 포함함-를 한 무대에 올려 민족의 동질성과 통일의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취지로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 소식은 그 동안 어렵게나마 유지해 오던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도 아닌, 빙산을 하나 던져 놓은 듯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UN이 군사적인 대북 제재를 검토하네, 그 동안 해왔던 인도적인 대북 지원도 다 끊겠네, 개성 공단과 금강산 사업이 중단 위기네 하는 파장이 계속되고 있고, 그러한 상황에서 음악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남한식 배합관현악' 의 편성이 실험적으로 선보여져 화제가 되었는데, '배합관현악' 은 북한에서 서양 악기와 개량된 전통 악기, 그리고 전자 악기를 아우르는 형식의 관현악 편성을 일컫는 용어다. 몇 명의 민족관악 주자를 제외하면 서양식 편성만으로 이루어진 조선 국립 교향악단과 윤이상 관현악단을 제외하면 북한의 모든 예술단체들은 이 배합관현악 편성으로 이루어진 관현악단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김희조의 합주 협주곡 '봄의 찬가' 나 '아름다운 농촌 풍경' 같은 곡에서 서양 관현악단과 국악 관현악단이 혼합 편성되어 있고, 심지어 다작가로 유명했던 미국 작곡가 앨런 호바네스도 아악을 연구한 성과물로 이러한 편성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대부분 단발성으로 그쳤고, 이번 시도같은 경우에는 내 귀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무대에는 북한의 그것과 비슷하게 해금 연주자와 아쟁 연주자들이 무대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고, 바이올린을 비롯한 스트링은 전통 현악기 뒤로 물러서 있는 형태로,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전통 악기 그룹이 서양 악기 그룹을 감싸고 있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치법도 북한의 그것과 유사했는데, 다만 서양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는 없었고 관악 파트는 당적, 대금, 피리, 태평소 등의 전통 관악기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몇몇 곡에서는 북한 개량 악기인 '대피리' 도 사용됨) 남한에서 개량한 모듬북의 경우에는 음량 문제 때문인지 별도의 스크린 속에 격리되어 있었다. 지휘대 앞에 모니터용 스피커가 세팅되어 있던 것도 특이했는데, 아마 이러한 구성으로 열리는 첫 연주회인 만큼 음향 밸런스에 신경을 쓴 듯했다.
로비로 통하는 문이 열리더니 거기서 사자탈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퉁소연구회의 퉁소와 타악기 주자들이 뒤따라 들어 오면서 '여는 마당' 을 시작했는데, 사자탈을 보고는 스쿨럼블을 떠올린 나는 역시 일빠...??? 어쨌든 이러한 오프닝은 예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 청소년 교향악단 연주회 때도 한 번 본 적이 있어서 전혀 생경스럽지는 않았다.
이어 지휘자 김홍재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며 본격적으로 시작된 1부에서는 백대웅의 '북청사자 놀음', 안용희의 '이 마음 밝히리' (손정아 독창), 한시준의 저대(대금을 북한에서 개량한 악기) 협주곡 '노한 파도' (박재호 독주), 김계옥의 가야금 협주곡 '도라지' (김계옥 독주), 안기옥의 '새봄을 주제로 한 살풀이' (무용: 이경화) 다섯 곡이 연주되었다.
작곡가들인 백대웅과 안용희는 남한을, 한시준과 안기옥은 북한을, 김계옥은 중국 조선족을 대표로 한 셈이었는데, '이 마음 밝히리' 같은 경우에는 퓨전 국악이라고는 해도 좀 '깨는' 분위기였다. 노래를 맡은 가수가 재미교포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마치 브로드웨이 뮤지컬 넘버와 국악, 그리고 가요를 뒤섞은 듯한 필이 너무 심하게 풍겨서 거부감까지 들 정도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들은 두 곡의 협주곡이었는데, '노한 파도' 는 서양의 협주곡 양식을 응용했는지 곳곳에서 서양식 조옮김(modulation)도 대담하게 감행하고 마지막으로 갈 수록 격렬하게 휩쓸고 가는 드라마틱한 구성의 곡이었다. '노한 파도' 와 마찬가지로 '도라지' 도 북한의 개량 가야금으로 연주되었는데, 북한과의 교류가 많은 중국 조선족 예술인들 답게 북한 음악의 영향이 상당히 짙은 곡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 한족의 음악에서 받은 영향도 눈에 띄었고, 특히 마지막 대목에서 그러했다.
2부에서는 프로그램 순서와는 조금 다르게 연주되었다. 메조소프라노 정은숙의 독창으로 김순남의 '진달래꽃' 과 윤이상의 '그네' 두 곡이 연주되었고, '2006 평화통일 동요제' 대상 수상자인 최희진의 독창으로 허미경의 '통일여행' 과 이수인의 '어린이 나라' 두 곡이 이어졌다. 계속해서 장사익이 '황혼길' 과 '국밥집에서' 를 불렀고, 국립 오페라 합창단이 김희조 편곡의 합창곡 '농부가', '신고산타령', '한강수타령' 세 곡을 연주했다. 마지막 무대는 소프라노 윤인숙과 합창단이 황병기의 '우리는 하나' 와 황병기+성동춘의 '통일의 길' 을 연주하며 끝맺었다.
김순남과 윤이상의 두 곡은 원래 피아노와 성악 용이었는데, 다른 곡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공연의 새로운 편성을 위해 편곡되었다. 피아노 보다는 훨씬 민족색을 강조한 관현악은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서양식 벨 칸토 발성법은 우리 노래를 부르기에는 너무 둔중하고 발음 처리도 잘 되지 않는 인상이었다. 이는 합창곡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새로운 형태의 민족 성악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최희진은 역대 '겨레의 노래뎐' 출연자 중 최연소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통일여행' 에서는 어린이 특유의 깜찍한 율동을 곁들여 관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이어진 '어린이 나라' 의 경우에는 호흡이 딸렸는지 곳곳에서 조마조마한 노래를 들려 주기도 했다. 어딘가를 계속 보며 노래를 하는 것 같아서 뒤를 돌아다 보니 1층 바로 뒷쪽의 음향 부스에서 누군가가 박자를 저어 주고 있었다.
출연자들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많이 누리고 있는 장사익은 '황혼' 에서 마치 상여 행렬에 쓰일 법한 작은 종을 들고 나와 간간히 딸그랑 거리며 노래를 했는데, 애환을 가득 담은 가사와 걸걸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숙연함까지 가져다 주었다. '국밥집에서' 는 대중적인 곡이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중반부의 소위 '희망가' 대목에서는 관객들이 같이 노래를 부르도록 유도하는 모습이었다.
김희조 편곡의 세 합창곡은 위에 쓴 대로 서양 발성법과 전통 음악의 '충돌' 양상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 분야에서 역시 전문가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 작곡가 김대성씨도 '민요를 합창곡으로 개작한 것 만큼은 아직도 따라잡을 사람이 없다' 라고 평할 정도인데, 특히 '농부가' 에서 보여준 편곡 솜씨는 정말 일품이었다.
이 음악회의 취지인 '민족의 단결' 과 '평화적인 통일' 을 상징하는 마지막 두 곡은 이상과 현실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단지 '우리는 하나' 라는 가사만을 끈질기게 되풀이하며 애절하게 읊조리는 황병기의 '우리는 하나' 는 현재의 정세와 묘하게 맞물리며 이런저런 잡다한 상념 속에 빠져들게 했다.
이어진 '통일의 길' 은 19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 당시 남한의 황병기와 북한의 성동춘 두 작곡가가 공동으로 만든 노래인데, 그 때문인지 통일 관련 음악회에 단골 연주곡으로 등장하는 노래다. 이 곡도 마찬가지로 듣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을 계속 하게 만들었다.
개인적인 내용을 몇 자 더 적고 싶다. 나는 지난 2년 가까이 최전방 부대에 있으면서 수요일 정신 교육 때마다 모 신문 뺨치는 보수성을 자랑하는 국방일보에 있는 교육 자료로 정훈 교육을 받아왔다. 군사령부에서 나눠준 대적관 소책자에는 우리의 주적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주적인지를 가장 첫머리에 명시해 놓았다. 그리고 나는 그 교육 방침 대로 북쪽에 포를 겨누어 놓고 유사시에 대비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미사일 발사 소동과 이번 핵실험으로 경계 방침이 강화되었을 때도 나는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통일' 과 '북한' 이라는 두 단어에 대해 예전처럼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평택 미군기지 사건 때의 재야 단체는 '친북 단체' 로 간주되고, 몇몇 통일 운동 단체도 그 '좌파 성향' 을 의심하는 집단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노동당, 김정일 정권, 군사 조직이라는 당정군을 주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곳에서, 결국 '비정치적이지만 가장 정치적인 부류의' 인간으로 있었기 때문일까?
전체적으로 나는 이 음악회에서 상당히 '가라앉은' 느낌을 받았다. 갈채는 인위적인 인상이었고,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음악을 매개로 현실의 높은 벽과 암담한 미래를 쓰디쓰게 음미하는 번뇌의 시간이었다고 할까. '우리는 하나' 를 부르고 나서 눈시울을 붉혔던 소프라노 윤인숙의 모습이 오히려 뭔가 생경스럽다는 인상까지 들게 된 나. 과연 '민족 대화합' 과 '평화 통일' 은 이루어질 수 있는 희망인가, 아니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