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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클래식 음악을 코미디 쇼 형식으로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바리톤 가수가 '오 나의 태양(O sole mio)' 을 열창하고 있을 때, 갑자기 타악기 주자가 믹서기를 돌리더니 음료수를 채운 잔들을 실로폰처럼 늘어놓은 것에 갖다대며 그 선율을 '훔쳐가는' 것을 보고 옛날 생각이 났다.

아마 누구나 한 번 쯤은 사이다병 같은 데다가 입을 대고 불 때 음료수의 양에 따라 음조가 틀려지는 것을 듣고 신기해했을 시절도 있었을텐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리 제조 기술을 가진 곳에서는 흔히 있었다. 소위 '글라스 하모니카(glass harmonica)' 라는 악기도 처음에는 그러한 장난에서 시작한 물건이었다.

액체의 양을 조절하는 방법 외에도 다양한 크기의 유리 그릇이나 유리잔을 늘어놓고 막대기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기도 했고, 막대기 대신 물에 적신 손가락으로 테두리를 문지르는 방법으로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알체스테' 등의 걸작 오페라로 유명한 작곡가인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도 1746년에 액체 양으로 음조를 조절하는 방식의 글라스 하모니카를 위해 협주곡을 작곡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글라스 하모니카는 1762년에 벤자민 프랭클린이 개량한 것이다. 피뢰침 발명으로도 유명한 프랭클린은 글라스 하모니카의 음역을 4옥타브까지 확장시켰고, 피아노의 소스테누토 페달처럼 음을 길게 늘일 수 있는 페달을 달아 종소리처럼 울리는 독특한 소리의 악기로 만들었다.

ⓟ 2003 HNH International Ltd.

(↑ 프랭클린이 직접 개량한 글라스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는 그림. 낙소스 음반에서)

프랭클린은 이 악기를 '아르모니카(armonica)' 라고 불렀고, 이 악기가 독일에 건너가 '하르모니카(Harmonika)' 라고 불리게 되었다. 프랭클린의 글라스 하모니카는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모양인데, 발명 이래 약 60년 동안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여기 소개할 모차르트의 곡 외에 베토벤도 극음악 '레오노레 프로하스카' 라는 작품에 이 악기를 사용했고, 그 외에도 라이하르트, 나우만, 슐츠 등의 작곡가들이 소나타나 모음곡, 기타 소품들을 작곡했다.

하지만 이 악기는 19세기 중반 들어서 인기가 급속히 떨어졌고,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악기가 되어 버렸다. 아마 이 악기가 아무래도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탓에 빠른 템포의 움직임이 많은 곡에는 효과적이지 않고, 음량도 작은 데다가 유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파손의 위험도 크다는 이유 등이 도태의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 만큼은 어떤 악기도 모방해낼 수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모차르트라는 희대의 거장이 너무나 아름다운 소품 두 곡을 써놓았기 때문에 지금도 간간히 들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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