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주곡 연주 때는 지휘자와 협연자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협연자가 지휘자 역할도 겸하는 1인 2역의 무대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특히 피아니스트들이 이러한 1인 2역을 많이 하는데, 에트빈 피셔나 게자 안다,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나 미하일 플레트뇨프,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다니엘 바렌보임, 정명훈 등은 음반도 낸 바 있다.
이번에 다룰 물건도 마찬가지인데, 1인 2역인 건 똑같지만 그것을 번갈아가며 진행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또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다.
흔히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악파는 브람스 중심의 '온고지신 보수파' 와 바그너 중심의 '미래지향 개혁파' 로 크게 나뉜다고들 한다. 물론 그 파벌이라는 것이 썰어놓은 빵처럼 정확히 갈린 것도 아니고, 결국 '씹거나 까거나 하고 싶어서 안달난 이들의 대리 전쟁' 이었다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있다(개인적인 의견이 바로 후자다).
다만 전자로 싸잡아 나뉘는 계열의 작곡가들 중에는 브람스를 빼고 별로 알려진 이들이 많지 않다. 바그너 진영의 경우 브루크너나 말러 등이 음악사에서 꽤 중요하게 서술되는데 반해 좀 불공평한 처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사실 사가들의 입장에서는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준 이들을 아무래도 비중있게 소개하는 것이 동어반복을 막는 길이니 어쩔 수 없겠고.
어쨌든 바그너와 그 '신독일파' 라고 싸잡힌 파벌들을 좋아하지 않거나, 공공연히 그들의 안티임을 주장한 작곡가들도 꽤 있었다. 이들은 최근에야 음반 산업의 발달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칼 라이네케(Carl Reinecke, 1824-1910)도 마찬가지 케이스다.
라이네케는 예전에 '레어 애청곡선' 시리즈에서 하프 협주곡을 다룬 바 있었는데, 이번에 소개할 음반에도 마찬가지로 하프 협주곡이 실려 있다. 거기에 플루트 협주곡과 발라드 두 곡을 더해 구성했는데, 그나마 라이네케라는 작곡가의 이름을 유지하는데 공헌하고 있는 두 협주곡이 같이 들어있다는 장점도 있다.
ⓟ 2006 Naxos Rights International Ltd.
낙소스에서 2006년에 발표한 저 앨범(8.557404)에는 각각 독주자로 파브리스 피에르(Fabrice Pierre, 하프)와 파트릭 갈루아(Patrick Gallois, 플루트) 두 사람이 참가했는데, 둘 다 프랑스 출신 연주자라는 점 외에도 독주와 지휘 활동을 겸하고 있는 투잡 뮤지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피에르는 처음에 하프를 전공했다가 피에르 불레즈가 이끄는 현대음악 전문 합주단인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부지휘자가 되면서 지휘에도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는데, 지금은 하피스트와 지휘자 양 쪽에서 골고루 활동중이라고 한다. DG 전속이었다가 방출된 갈루아도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의 최연소 플루트 수석 주자로 활동했던 만큼 노련한 플루티스트인데, 최근에 낙소스로 이적하면서 핀란드 실내 관현악단인 신포니아 핀란디아의 지휘자로 하이든 초기 교향곡 등을 작업하고 있다.
그래서 하프 협주곡의 경우 피에르가 독주를 맡는 동안 갈루아는 지휘를, 거꾸로 플루트 협주곡과 발라드에서는 갈루아가 독주하고 피에르가 지휘하는 이색적인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세 작품 모두 스웨덴 실내 관현악단(Swedish Chamber Orchestra)이 협연했는데, 이 악단은 갈루아의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 작품 전집에서 이미 호흡을 같이 맞춰본 바 있다.
그 때도 갈루아와 피에르가 공동 작업을 했는데, 다만 고전 시대 작품인 만큼 스트링 파트에 일반적인 금속현이 아닌 양의 창자 섬유를 꼬아 만든 거트현을 쓰고 비브라토를 거의 넣지 않는 '정격연주' 스타일의 관현악 연주를 선보인 바 있었다. 그리고 지휘는 모든 곡에서 갈루아가 독주를 겸한 1인 2역을 맡았었고.
이미 사발레타의 DG 녹음으로 들었던 하프 협주곡의 경우 그 느낌이 꽤 틀렸는데, 사발레타가 좀 더 화려하고 강인한 면을 보여줬다면 피에르는 음색과 템포의 미묘한 변화나 서정미에 중점을 둔 모습이었다. 피에르의 경향에 맞추어 갈루아도 관현악을 좀 더 부드럽게 다듬었는데, 협주곡이라고는 해도 너무 뒤로 물러서 있는 경향이 종종 보여서 아쉽기도 하다.
하프 협주곡이 라이네케의 중기 시대 작품인데 반해, 아예 처음 들어본 플루트 협주곡과 발라드는 이미 20세기에 들어선 만년에 작곡된 것들이었다. 특히 발라드의 경우 라이네케의 출판작 중 맨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만년의 작품이라고 해도 스타일의 변화가 급격한 것도 아닌데, 전반적으로 하프 협주곡과 비슷하게 라이네케가 숭배하던 멘델스존이나 슈만 등 초기 낭만주의 시대의 작풍을 유지하고 있다.
플루트 협주곡에서 일반적인 2관 편성 관현악에 트라이앵글을 중용하고 있는 것도 하프 협주곡과 비슷한데, 발라드의 경우 심벌즈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관현악이 바그너 풍으로 거대하게 사용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며, 어디까지나 촛점은 플루트의 연주에 맞춰져 있다. 특히 협주곡의 3악장 말미에서는 빠른 더블 텅잉(투쿠투쿠하면서 혀의 빠른 놀림으로 호흡을 통제하는 주법)과 운지가 곁들여지며 보여주는 속주나 날렵한 꾸밈음 처리 때문에 하프 협주곡보다도 더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하프를 반주해주느라 목소리를 좀 죽여야 했던 관현악도 여기서는 좀 더 앞에 나와있는 형태인데, 특히 2악장에서 관현악이 팀파니와 호른을 필두로 터뜨려주는 투티는 매우 극적인 모습이다. 우울한 느낌의 1부와 좀 더 경쾌한 2부가 번갈아가며 나오는 발라드에서도 마찬가지로 관현악의 주장이 비교적 강하게 나오고 있다.
그리고 협주곡의 경우 지휘자용 총보와 독주자용 악보의 솔로 파트 기보가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갈루아 자신이 두 악보를 참조해 손수 다듬은 솔로 파트 악보로 연주하고 있다고 주석이 달려 있다. 아마 3악장 말미의 플루트 파트의 경우 특히 기교를 요하는 대목을 임의로 수정한 것 같은데, 최대한 고난이도의 패시지를 많이 집어넣어 독주를 부각시키려고 한 의도가 엿보인다.
두 협주곡 모두 하피스트와 플루티스트들이 한 번쯤은 도전해 보는 레퍼토리지만, 공연장에서건 음반으로건 듣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더군다나 두 곡을 모두 넣은 커플링 음반은 내가 아는 한 이것 하나 뿐이고, 가격 면에서도 엄청난 이득이라는 경제적 장점 또한 가지고 있다.
가뜩이나 불황이라는 음반 시장에서 그나마 낙소스가 허기진 배를 불려주고 있는데, 이제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는) 메이저 음반사들을 발라버릴 정도로 성장한 대기업임에도 여전한 저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의 육수가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