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들어본 노래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노래들 중 하나가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곳 100미터 전' 이라는 노래였다. 내가 좋아하는 플랫 조성의 노래였고, 무엇보다 간주에서 울리던 챙챙거리는 악기의 소리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음악을 전공으로 삼으면서 그 악기가 바로 하프시코드(harpsichord)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노래에서는 진짜 하프시코드가 아니라 미디 음원의 소리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원전 연주' 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저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은 생각날 때마다 듣고 있을 정도다.
피아노에 밀려서 한동안 찬밥 신세였다가, 위에 쓴 '원전 연주' 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다시 리바이벌된 악기이기도 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하프시코드다. 그래서 하프시코드 레퍼토리도 대부분 바흐/헨델 쪽에서 맥이 끊겼고, 20세기에 와서야 마누엘 데 파야 등에 의해 작품이 다시 쓰여지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쳄발로(Cembalo)', 프랑스에서는 '클라브생(clavecin)' 이라고 불렀는데, 프랑스의 클라브생 곡으로 유명한 것이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 1626-1661)의 작품들이다.
쿠프랭의 클라브생 곡들은 19세기 말에 의고주의자로 유명했던 브람스가 편집을 맡아 재간행되기 시작했는데, 라벨이 일종의 오마주 작품인 '쿠프랭의 무덤' 이라는 곡을 쓰면서 다시금 그의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도 말년에 신고전주의 사조에 공감을 나타내면서 연구한 것이 그의 클라브생 곡들이었다.
슈트라우스는 청년기에 교향시, 장년기와 노년기에 오페라를 집중적으로 창작했는데, 음악사에서 중요시하는 곡들은 주로 장년기까지의 작품들이다. 노년기에는 나치 정권에 협력했다는 정치적 이유도 있고, 대본 작가를 시원치 않은 사람으로 쓰거나 종종 삽질(???)을 하는 등의 창작 행태 덕분에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나 '변용', 오보에 협주곡, 호른 협주곡 제 2번 같은 작품을 빼면 별로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삽질' 이라 함은 신고전주의에 대한 공감이었는데, 1910년대에 대본 작가 호프만슈탈과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라는 오페라를 썼을 때부터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오페라 속에 몰리에르의 연극을 끼워 넣는다는 대담한 시도가 있었는데, 청중들이 연극을 보러 왔는지 오페라를 보러 왔는지 헷갈릴 정도여서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이 때 연극 부분에 삽입된 음악은 관현악 모음곡 '평민귀족' 으로 독립/보족되어 출판되었다.
'평민귀족' 은 피아노 명곡집에도 있고 무뇌충 노래에도 인트로로 들어가는 '젓가락 행진곡' 의 작곡자인 장-밥티스트 륄리의 극음악에서 소재를 따왔는데, 단지 소재만 따왔을 뿐 거기에 자신의 주장을 첨가해서 거의 '괴작' 으로 만들어 버렸다. 특히 모음곡의 마지막 곡인 '연회' 에서는 슈트라우스의 전작 교향시 '돈 키호테' 에서 돈 키호테가 양떼와 싸우는 장면의 음악까지 들려온다.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 를 아류작 형태로 다시 듣는 느낌일 정도다.
결과물이 어쨌던, '평민귀족' 은 슈트라우스 자신의 창작물로 입지를 굳혔고 지금도 명곡 해설집에 올라오는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2차대전 중인 1941년에 쓴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희유곡이라고도 번역됨)' 는 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작품이다.
ⓟ 1992 Deutsche Grammophon GmbH
'디베르티멘토' 는 프랑수아 쿠프랭의 클라브생 작품들을 사실상 '편곡' 한 것이다. 작품 번호 86번을 당당히 달고는 있지만, 과연 이 곡이 '창작' 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슈트라우스가 당대에 뛰어난 관현악 편곡법을 구사한 작곡가인 것은 사실이지만, 편곡(arrangement)은 편곡일 뿐, 작곡(composition)은 아닌 것이다. 두 곡 이상의 클라브생 작품을 묶은 곡의 경우 곡 사이를 잇는 접속곡(potpourri)을 슈트라우스가 창작하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요즘과 달리 당대에는 바로크 작품이라도 현대 관현악용으로 화려하게 편곡하는 것이 예삿일이었는데, 슈트라우스도 쿠프랭의 클라브생 곡들을 편곡하면서 타악기와 첼레스타 등을 중용하는 등 현대적인 스타일을 따랐다. 물론 두 번째 곡과 세 번째 곡 등에서는 당대에도 널리 쓰이던 오르간과 원곡의 클라브생이 포함되어 나름대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렇게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고, 쿠프랭이 아닌 슈트라우스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모로 실망을 안겨줄 가능성이 큰 작품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CD-오르페우스 실내 관현악단 연주-의 속지에서 로널드 우들리가 쓴 마지막 대목은 인용할 만한 구절이다.
"...이것은 과거의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사라지는 음' 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즉, 손에서 멀어지고 기억조차 희미한-아마도 때묻지 않은 순수한-것으로부터 독창적인 음악 정신 속에 담겨 있을 작곡가의 영감을 얻어내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에 따른 국가적, 정치적인 갈등에도 불구하고, 혹은 슈트라우스의 상상력이 낳은 진기하고 복합적인 음향 세계로 변형될 때 조차도 당대 음악 문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