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의 러시아 침공으로 수도 모스크바가 위기에 처했을 때, 소련의 독재자였던 요시프 스탈린은 마야코프스카야 지하철역에 마련된 혁명 기념일 연단에서 (그 때까지는 '중요 경로' 에서 별로 언급되지 않았던) '혁명 이전의 위인들' 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항전 의지를 모을 것을 호소했다.
"짐승같은 도덕관밖에 가지지 못한 독일 놈들이 뻔뻔스럽게도 절멸시키고자 원하는 대상은 위대한 나라 러시아, 다시 말해 플레하노프와 레닌의, 벨린스키와 체르니셰프스키의, 푸슈킨과 톨스토이의, 고르키와 체호프의, 그리고 글린카와 차이코프스키의 조국인 것이다."
스탈린이 선대의 명사들을 이렇게 강조하면서 언급한 연설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이후 소련 정부의 선전 포스터에는 수보로프나 자파예프 등 혁명 이전의 '봉건 영웅' 들까지 소련군과 함께 등장해 독일군을 무찌르는 내용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쇼스타코비치가 볼코프에게 구술했다는 '증언' 에 의하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제자이자 사위였던 막시밀리안 슈타인베르크가 '스탈린 동지가 왜 음악 쪽에서 내 은사는 빼고 차이코프스키를 넣었을까' 라고 울분을 터뜨렸다고 쓰여 있는데, 솔직히 그 상황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차이코프스키가 아니고 누구였을까. (게다가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름도 길지 않은가 'W'a;;;)
어쨌든 소련이 붕괴한 뒤에도 러시아는 차이코프스키의 덕을 아직도 많이 보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국립 음악원이 있고, 국제 콩쿨이 열리고, 관현악단도 있다-옛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이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관현악단으로 최근 개명함-. 그리고 아무리 벽촌의 레코드 가게에서도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이 든 CD나 테이프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으니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정작 차이코프스키 자신은 생전에 이러한 명성을 별로 누리지 못한 사람이었다. 현재 명곡에서 빠지면 이상한 그의 대표작 상당수가 초연 때 별의별 혹평을 다 받았고, 림스키-코르사코프를 필두로 한 '러시아 5인조' 들에게는 서구 추종자로, 반대로 안톤 & 니콜라이 루빈슈타인 형제로부터는 '지나친 민족색과 허술한 구성' 을 지적받는 등 '양 쪽에서 다 씹히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물론 차이코프스키는 학생 시절에 서구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기는 받았다. 하지만 그 영향이란, 루빈슈타인 형제가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보다도 이후의 사람인 베토벤과 슈만이었다. 시류를 앞질러 가는 사람에게 흔히 따르는 것은 보수파나 연장자들의 공격이었으며, 루빈슈타인 형제의 비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차이코프스키가 아직은 모스크바 음악원의 풋풋한 작곡 초년생이었던 1865년에 쓰기 시작한 작품이 '서곡 F장조' 인데, 다음 해에 그 작품을 개정했다. 덧붙여 그 '다음 해' 인 1866년, 차이코프스키는 모교의 교수가 되어 있었다. 요즘도 음대 졸업하고 1년 만에 곧바로 교수가 되는 사람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초년생' 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 바로 이 서곡이다.
개정이 되면서 곡은 시간과 내용 모두 원래 형태보다 더 부풀어서 나왔는데, 느린 인트로(서주. 0:00~3:32)와 발전부(주제가 제시된 뒤 이리저리 비비꼬고 양념을 치는 부분)가 더 길게 되었다. 또 확실한 끝맺음을 위해 코다를 새로 썼는데, 흔히 '학구적인 지식' 을 자랑하기 딱 좋은 푸가토(9:20~9:59)가 코다를 시작하도록 했다. 그 외에 관현악 편곡 때의 미비점도 보완했고, '업그레이드' 된 이 작품은 초연 때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가 '내 작품은 초연 때 성공하면 잊혀지는데' 라고 농담을 한 것이 이 곡에도 적용되고 말았다. 피아니스트들이 가끔 전곡 녹음을 할 때나 연주되는 피아노 협주곡 2, 3번 같은 '범작' 보다도 더 연주 횟수가 적은 곡이 되고 말았는데, 게다가 '아직 개성이 부족한 초기 작품' 이라는 이유로 더욱 무시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없는 게 없다는' 낙소스에도 이 곡이 담긴 CD가 아직 없을 정도다.
물론 후기 작품들에 비하면 이 곡이 별로 깊이가 없고, '기회 음악' 같은 속임수가 지나치게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본론부터 이미 '호두까기 인형' 류의 발레에서 보여지는 경쾌함과 발랄함이 예견되어 있고, 마지막에서 연주되는 금관의 코랄풍 악구(9:59~10:35)에서는 소박하나마 러시아 전통의 편린이 느껴진다.
새로운 작품의 발굴에 인색한 편인 메이저 레이블에서 이 곡이 담긴 음반이 나온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데, 1990년에 창단되었음에도 단숨에 러시아의 대표 관현악단 반열에 오른 '러시아 국립 관현악단(Russian National Orchestra)' 과 지휘자 미하일 플레트뇨프-요즘에는 피아노에만 전념 중-가 1993년 도이체 그라모폰에 녹음한 '러시아 서곡집' 이 그 앨범이다.
이 앨범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첫 곡이었던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에서 보여준 엄청나게 빠른 연주에 집중했는데, 차이코프스키의 곡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던 듯 했다. 글린카 곡에서 사람들을 놀래켰던 플레트뇨프와 관현악단이 막상 차이코프스키 곡에서는 너무 '얌전히' 연주했기 때문인 듯 하다. 곡의 발랄함과 경쾌함은 그 만큼 강조되었지만, 막상 장려하게 연주해야 할 코다의 금관 코랄 등에서까지 힘이 부족했던 것은 마이너스였다.
부족한 대로 이 음반에 만족해야 하는 것도, 이 음반이 '현재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차이코프스키 서곡 F장조의 음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이체 그라모폰 본사에서도 일찌감치 폐반의 수순을 밟은 터라, 앙트레(Entrée) 시리즈 등으로 재발매되기를 기다리던가, 아니면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레코드점들을 찾아 사냥을 다니는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레어 사냥꾼은 피곤하다.
*플레트뇨프의 녹음 중 차이코프스키 교향시와 관현악곡-만프레드 교향곡 포함-을 CD 세 장에 모은 '트리오' 시리즈의 음반이 최근 발매되었는데, 거기에 이 곡이 커플링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