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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나먼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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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이라면 1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한 나지만, 그래도 영화인들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몇몇 있다. 그리고 그들 중 1순위로 꼭 꼽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찰리 채플린이다.

비록 후기에 대사를 쓰기는 했지만, 대사 없이 몸으로 웃기는 마임 희극의 정신을 토키 시대에 들어선 뒤에도 유지했고, 무엇보다 희극에 비극성을 가미해 웃음 뿐 아니라 감동을 선사한 것 만으로도 그는 20세기의 대표 영화인 10걸 안에 들고도 남을 것이다.

요즘에는 채플린의 영화에 쓰였던 음악들이 종종 음반으로 제작되어 나오고 있는데, 그것들 중 가장 노리고 있었던 것이 바로 데카에서 나온 트리뷰트 앨범이었다. 세미 클래식 분야의 거장인 스탠리 블랙이 런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만든 음반인데, 채플린이 아직 살아있었을 적에(1972) 나온 음반이라 그 의의가 더 큰 것이다.

1997년에 국내에 라이센스로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테이프로 샀다가 CD로 다시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절판된 상태였다. 그러다가 어제 종로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들를 일이 없었던 그 곳의 한 음반 매장에서 가까스로 입수할 수 있었다.

ⓟ 1997 Decca Record Company Limited

'모던 타임즈', '채플린 레뷰(개의 일생, 어깨총, 순례자 등 1918~22년에 제작한 작품을 재편집)', '시티 라이트', '키드', '위대한 독재자', '라임라이트', '뉴욕의 왕', '홍콩의 백작부인' 에 쓰인 음악 열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수록 시간이 고작 30분 약간 넘는 정도다. LP 시대의 기획이라 해도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인데, 차라리 '황금광 시대' 의 롤빵춤 폴카 같은 곡을 좀 더 넣고 40분 대로 늘려서 출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채플린 헌정 앨범이라고 해서 모든 곡이 채플린 작곡의 곡은 아니다. '시티 라이트' 의 라 비올레테라(La Violetera)라는 컨티넨털 탱고 곡은 호세 파디야의 곡이며, '모던 타임즈' 의 티티나(Titina)라는 곡도 레오 다니데르프라는 사람의 샹송이다. 그리고 '모던 타임즈' 의 스마일(Smile)과 '위대한 독재자' 의 유성(Falling Star), '뉴욕의 왕' 의 만돌린 세레나데(Mandolin Serenade), '홍콩의 백작부인' 의 이것이 나의 노래(This is my song)는 영화에서 히트한 뒤 작사가들에 의해 가사가 붙은 경우에 속한다.

채플린 자신이 연기 생활 초기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배웠던 만큼 음악에 대한 감각은 동시대의 어느 영화인들보다도 뛰어났다고 하는데, '시티 라이트' 에서부터 시작된 자작의 영화음악을 들어보면 영국과 미국의 당대 대중음악 어법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가 만들어낸 선율은 때때로 너무 단순하고 간단해서, 편곡자가 어지간히 고생을 하지 않는 한 길게 늘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키드' 의 아침 산책(Morning Promenade)이 특히 그런 경우인데, 스탠리 블랙이 아니었다면 저 곡은 1분 남짓한 소품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늘여놓은 것도 2분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저렇게 (쇤베르크 등도 지적했던) 음악 기교의 부족이라는 결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채플린 자신은 영화음악의 창작/녹음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의 마지막 작업이 된 것이 자신의 첫 비극 작품인 '파리의 여인' 에 곡을 붙이고 녹음한 것이었고, 그 이전에도 노쇠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만의 매력적인 바리톤 보이스로 '서커스' 의 주제가를 직접 노래해 녹음하기도 했다.

자신이 쓴 영화음악이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장식물' 이 되기를 바랬다는 채플린이었으니, 저 정도의 성과가 나온 것만 해도 충분히 감탄할 일이다. 때로는 기교의 허점이 보일 정도의 단순함과 소박함이 복잡함과 장대함을 압도하는데, 채플린의 영화음악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채플린과 아인슈타인. 1931년 2월 로스앤젤레스의 '시티 라이트' 첫 개봉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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