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 뮤지션들과 관현악단이 협연하는 소위 '크로스오버' 는 이제 전혀 새롭고 신기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들국화도 한 번 관현악단과 조인트 콘서트를 한 적이 있고, 메탈리카나 스콜피온스, 포티셰드, 잉베이 맘스틴 등의 사례도 CD나 DVD 등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지금은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 빼고는 멤버들 모두 환갑을 넘겨 '노익장 밴드' 라는 존경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듣고 있는게 딥 퍼플(Deep Purple)이다. 락 리프의 대명사가 된 'Smoke on the Water' 를 비롯한 수많은 명곡을 남겼고, 지금까지 판매된 앨범 숫자만 1억장을 넘기고 있는 신화적인 존재라는 것이 중평인 것 같고.
딥 퍼플의 경우 순전히 락 계통에서 벌인 활동 외에도 위에 쓴, 관현악단과 협연한 예를 남긴 초창기 그룹 중 하나라는 업적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모두 탈퇴한 상태지만,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와 키보디스트 존 로드는 자신들의 본업인 락 외에도 클래식 음악에도 나름 깊은 관심과 조예를 보여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존 로드의 경우에는 음악원이나 음악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독학으로 중세에서 엘가에 이르는 영국 음악의 전통적인 곡들을 분석하면서 작곡 기법도 터득했던 입지전 스타일의 인물이었다. 그러한 '양다리' 경험을 최초로 작곡 영역에서 발휘한 것이 '그룹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이라는 곡이었다.
그 때까지 시도된 '크로스오버' 에서 처음으로 '협주곡' 이라는 클래식 장르를 과감히 들고 나온 것이었는데, 바로크 시대의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과 리피에노 협주곡(Concerto ripieno), 고전 시대의 협주 교향곡(Sinfonia concertante) 양식들을 주로 참고하고 거기에 영국 작곡가들의 어법(관현악)과 락의 어법(그룹. 이 경우에는 대체로 주자들의 애드립 솔로로 표현됨)을 섞어 작곡되었다.
이 특이한 작품은 1969년 9월 24일에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초연되었는데, 작곡가 겸 지휘자인 말콤 아놀드(Malcolm Arnold)가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oyal Philharmonic Orchestra)가 협연했다.
하지만 1969년 당시 영국의 클래식 음악계와 락 음악계는 서먹하거나 아니면 지독하게 반목하는 상태였고, 존 로드의 협주곡 연주도 리허설 단계에서 자주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로열 필의 노장 단원들은 계속 '저속한 락 밴드와 공연하는게 싫다' 면서 수시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고, 지휘자로 나선 아놀드가 딥 퍼플과 로열 필의 긴장 관계를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아놀드는 트럼페터로 시작해 작곡가와 지휘자로 전향한 전형적인 클래식 음악인이었지만, 다른 장르의 음악에도 열린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드문 인물이었다. 실제로 아놀드는 관현악 총보 작업에 익숙치 않았던 존 로드를 위해 오케스트레이션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밴드와 관현악의 배치 문제도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등 협조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공연은 클래식 작품과 딥 퍼플만의 소공연, 그리고 존 로드의 협주곡이 차례로 연주되는 형식이었는데, 전체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말콤 아놀드: 교향곡 제 6번 (로열 필/아놀드)
딥 퍼플 단독 소공연: Hush, Wring that Neck, Child in Time
존 로드: 그룹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딥 퍼플/로열 필/아놀드)
공연은 존 로드의 협주곡 3악장 후반부가 앵콜 연주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협주곡은 녹화/녹음도 되어 1969년 12월에 LP로 출반되었다(LP의 경우 수록 시간 문제로 2악장을 반반씩 나누어 담았음). 1990년에는 협주곡 공연 전 연주된 Wring that Neck과 Child in Time 두 곡을 보너스로 수록한 CD가 발매되었고, 2003년에는 DVD 오디오 포맷으로 공연 전체의 실황을 모두 수록한 음반도 발매되었다.
ⓟ 1990 EMI Records Ltd.
하지만 존 로드의 컨셉은 그리 완벽하지 않았다. 음량 문제 때문인지 관현악과 그룹이 따로 노는 경우가 너무 많았고, 리치 블랙모어가 맡았던 1악장의 기타 솔로는 너무 길게 들렸다. '융합' 보다는 '대립' 의 미학이 너무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녹음 상태도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건조해서 관현악 사운드의 경우 손해를 많이 보았다.
아무튼 이 협주곡의 성공으로 BBC에서는 존 로드에게 비슷한 컨셉의 작품을 위촉했다. 그래서 나온 후속작이 'Gemini Suite' 라는 곡이었는데, 이 곡은 이상하게 한국에서 앨범을 찾아보기 무척 어려워서 지금도 들어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협주곡은 초연 이후로 연주된 적이 거의 없었는데, 1970년에 로스앤젤레스의 헐리우드 보울에서 로렌스 포스터 지휘의 로스앤젤레스 필이 딥 퍼플과 두 번째로 협연했다. 그러나 공연 후 악보계의 실수였는지 어쨌는지 악보가 분실되었고, 이후 협주곡은 29년 동안 연주되지 않고 있었다.
1999년에 협주곡 초연 30주년을 맞아 존 로드는 잃어버린 악보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는데, 이 작업에는 네덜란드 작곡가인 마르코 드 괴아이(Marco de Goeij)가 큰 도움을 주었다. 괴아이는 1969년 실황의 필름을 입수해 소리와 영상을 듣고 보면서 관현악 파트를 '따주었고', 몇몇 대목의 삭제나 축소, 개정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렇게 '개정된' 1999년판 악보는 같은 해 9월 25-26일에 초연 장소였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재연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번에 협연한 악단은 폴 만(Paul Mann) 지휘의 런던 교향악단(London Symphony Orchestra)이었고, 1969년 공연과 마찬가지로 녹화/녹음되어 DVD와 CD로 출반되었다.
ⓟ 1999 Eagle Records
물론 시대도 바뀌었고, 음악인들의 인식도 훨씬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이 큰 플러스 요인이었다. 1969년과 달리 런던 교향악단은 공연 준비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심지어 1악장 코다 직전에는 클라리넷 주자가 멋진 애드립 카덴차까지 연주해 주었다. 녹음도 1969년과 달리 현장감이 훨씬 강하게 느껴졌고.
다만 1999년 개정판도 좀 아쉬운 점이 있긴 하다. 1969년 초판 녹음에서 보여주었던 관현악과 그룹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부족하다고 느껴졌고, 스티브 모스나 이언 길런, 이언 페이스의 솔로 연주도 너무 단축되거나 예전같지 않다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로열 앨버트 홀의 그 악명높은 잔향 때문에 소리가 산만하게 흩어지는 느낌도 있다(1969년 녹음의 건조한 소리는 아무래도 무대에 마이크를 바짝 셋팅해 녹음했기 때문에 나오지 않았나 함).
일단 곡 자체의 완성도를 따진다면 개정판에 손을 들어주겠지만, 저 곡의 본모습을 알고 싶다면 1969년 초판도 들어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하고 싶다. 크로스오버 작업 초반의 시행 착오와 30년 후 존 로드가 곡을 돌아보는 관점의 차이를 파악하는 것도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가 있으니.
추가로 1969년과 1999년 당시 딥 퍼플의 라인업을 적어둔다;
1969년 딥 퍼플 라인업:
이언 길런 (Ian Gillan, 보컬)
리치 블랙모어 (Ritchie Blackmore, 기타)
존 로드 (Jon Lord, 키보드)
로저 글로버 (Roger Glover, 베이스)
이언 페이스 (Ian Paice, 드럼)
1999년 딥 퍼플 라인업:
이언 길런 (Ian Gillan, 보컬)
스티브 모스 (Steve Morse, 기타)
존 로드 (Jon Lord, 키보드)
로저 글로버 (Roger Glover, 베이스)
이언 페이스 (Ian Paice, 드럼)
*영어판 위키 참조 추가 사항: 1999년 개정판 초연 이후, 딥 퍼플은 2000-2001년에 지휘자 폴 만과 함께 남미와 유럽, 일본에서 투어도 가졌다. 유럽 초연(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조르제 에네스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과 일본 초연(도쿄. 신일본 필하모닉 협연)도 이 투어 기간에 이루어졌다.
딥 퍼플 외에 오스트레일리아 락 밴드인 조지(George)도 2003년에 시드니(시드니 교향악단)와 퍼스(서오스트레일리아 교향악단)에서 오세아니아 초연을 포함해 모두 다섯 번 공연했는데, 2008년 현재 딥 퍼플 외에 저 협주곡을 연주한 유일한 락 밴드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