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가 또 한번 '고마우신 정부 나으리들의 배려' 로 개방의 폭이 넓어졌다고는 해도, 나는 그다지 고맙지도 기쁘지도 않다. 나의 입장은 이미 사회잡설의 '일본문화 개방에 즈음하야' 라는 글에서 밝힌 바 있다.
어차피 개방으로 밀려 들어올 것은 주로 대중문화 쪽이겠고, 정말 '일본적' 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상업적인 문제로 논의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이러한 난리법석을 떨기도 훨씬 전인 1988년, 일본 작곡가들의 작품을 담은 CD가 들어왔을 때 나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그리고 10년도 더 지나서 용산의 한 음반 가게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쌓여있던 그것들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문제의 CD들은 도시바 EMI에서 80년대 중반 제작한 것들로, 'Great Recordings in Japan' 이라는 시리즈였다. 야마다 고사쿠, 이후쿠베 아키라, 마유즈미 도시로, 아쿠타가와 야스시, 오키 마사오, 이시이 간 같은 일본 유명 작곡가들의 작품을 50-60년대에 녹음한 것들을 복각해 내놓았던 것이다.
총 10개의 시리즈 중 입수할 수 있었던 것은 6개였고, 그 중 가장 자주 듣는 것이 바로 아쿠타가와 야스시(芥川也寸志, 1925-1989)의 작품이 든 2집 CD다.
ⓟ 1987 Toshiba EMI Ltd.
아쿠타가와 하면 일본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라쇼몬' 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떠올릴 것이다. 아쿠타가와 야스시는 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고, 일본 인명 사전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올라와 있는 비교적 드문 예에 속한다.
아쿠타가와는 1947년에 도쿄 우에노 음악원을 졸업했고, 2년 동안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이후쿠베 아키라에게 작곡을 배웠다. 1950년에 '교향악단을 위한 음악' 으로 NHK 창립 25주년 작곡부문 특별상을 받으면서 주목받았고, 1953년에는 전위파에 속한 마유즈미 도시로, 민족주의 악파의 단 이쿠마와 창작 동인 '3인회' 를 결성했다.
아쿠타가와는 이후 교향곡 제 1번, 디베르티멘토, 엘로라 교향곡, 오페라 '검은 거울' 같은 대작 외에 195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지고쿠몬' 을 비롯한 영화음악을 여러 편 남기기도 했다.
지휘자로서도 쇼스타코비치를 위시한 소련 작품이나 중국 작품의 일본 소개에 힘썼고, 저술가로서는 1950년대에 간사이 근로자 협회의 요청으로 기고한 음악 수필을 엮어 '나의 음악 이야기' 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이 책은 국내에서도 번역본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나의 음악 이야기' 를 보면 아쿠타가와의 창작 성향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과거 군국주의 시절에 강제로 주입된 황국 사관을 경멸했고, '죽어있는 전통' 보다는 '살아 숨쉬는 전통' 을 강조했다. 또 음악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 이며, '남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까닭에 아쿠타가와는 '3인회' 에서 극우 국수주의자로 유명했던 마유즈미나 민족적인 어법을 평생 견지한 단 이쿠마와도 매우 달랐다. 물론 아쿠타가와의 작품에도 마츠리(일본 전통 축제)의 북 장단이나 민요 가락 같은 일본 전통 요소를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 보다는 현대 러시아 음악 등의 강한 영향으로 '서구파' 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쿠타가와는 중기에 잠깐 실험적으로 접근한 것 외에는 음렬이나 톤 클러스터, 불확정성 등 현대 기법을 별로 쓰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조성 음악을 견지하면서 스트라빈스키 식의 강박적인 리듬을 즐겨 사용해 '음악의 재미' 를 추구했다. 이것은 스승이었던 이후쿠베 아키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성향으로, 1948년에 작곡된 '교향 3장' 에서도 그 흐름을 엿볼 수 있다.
'교향 3장' 은 아쿠타가와가 아직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던 때의 작품이었지만, 작곡된 해에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되었고 그 실황이 NHK에서 방송되었다. 그 이후에는 오타카 히사타다 지휘의 일본 교향악단(현 NHK 교향악단)이 정기연주회의 곡목으로 올리기까지 했다. 신인 작곡가로서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을 받은 셈이었다.
첫 곡인 '카프리치오(기상곡)' 에서부터 그가 이후 애호하게 되는 잦은 변박과 단순 명쾌한 선율 형태를 파악할 수 있고, 이어지는 '닌날레라(자장가)' 에서는 각각 클라리넷과 오보에가 연주하는 서정적이고 긴 호흡의 두 주제가 인상적이다. 마지막 곡은 열광적인 축제 분위기로 점철되어 있고, 아쿠타가와가 평생 추구한 '대중성과 현대성' 의 고찰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곡 전체는 이러한 '원시주의' 덕분에 동시대의 골치아픈 현대음악보다 대단히 듣기가 쉬우며, 이러한 점이 그의 명성을 유지시켜 주었을 것이다. 한국 초연이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아쉬운데, 나중에 지휘자가 된다면 꼭 무대에 올리고 싶은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