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오래된 음원의 복각 출반을 전문으로 하는 낙소스 산하 레이블 '낙소스 히스토리컬(Naxos Historical)' 에서 출반된 CD 하나를 구매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의 초기 녹음 복각 시리즈 중 두 번째 음반으로, 그가 남긴 최초 녹음들인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과 베토벤 교향곡 제 5번 등이 수록되어 있다(8.111003).
ⓟ 2008 Naxos Rights International Ltd.
물론 구매 의도도 저 최초 녹음들 때문이었는데, 사실 이 CD를 사기 전에도 이미 같은 녹음을 수록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물건은 정체가 불분명한 이탈리아산 해적판이었고, 복각 수준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곡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채로 제작되었다는 것이었고.
녹음 시기를 감안해볼 때 지글대는 SP 특유의 표면 잡음이 꽤 커서 잘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런 잡음 속에서도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잡힐 정도면 문제가 좀 심각하다. 예의 누락 부분은 3악장에서 첫 부분이 들릴듯 말듯 아주 작게 재현되는 부분인데, 내가 파악하기로는 거의 아홉 마디 가량의 음악이 아예 생략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저 복각 CD가 안이하게 편집되어 제작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빠심이 격렬하고 투철한 일본의 진성 푸빠 오덕들의 홈페이지들을 열람한 결과, 복각에 사용한 원본 SP 자체가 이러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푸르트벵글러의 첫 녹음 세션은 1926년 가을에 베를린의 폴리도르 스튜디오에서 있었고, 악단은 그가 상임 지휘자로 재직하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였다. 음반사는 SP를 발명한 독일계 미국인 에밀 벌리너가 만든 음반사 '그라모폰' 의 독일 지사였다가, 1차대전 때 적국 산업체로 분류되어 강제 매각되면서 독립하게 된 독일 그라모폰(현 도이체 그라모폰)이었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는 전임자였던 니키슈와 달리, 녹음 작업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음악의 흐름을 중시했던 저 깐깐한 지휘자는, 녹음 세션을 4분 단위로 중단해야 하는 당시 녹음 기술과 환경에 대단히 적대적이었다.
요즘이야 몇 시간이고 계속되는 대작들도 연주만 잘 되면 한 방에 녹음할 수 있는 기술력이 갖춰져 있지만, 그 당시 레코드 수록시간은 한 면당 4분~4분 30초 정도가 고작인 실정이었다. 게다가 베토벤 교향곡의 경우에는 레코드 장수를 줄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반복되는 1악장 제시부를 반복 없이 연주해야 했다. (참고로 푸르트벵글러의 대선배였던 아르투르 니키슈도, 1913년에 베를린 필과 같은 곡을 세계 최초로 녹음하면서 똑같이 반복을 생략했다.)
이렇게 4분 단위의 토막난 세션을 진행하면서 푸르트벵글러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나기 시작했는데, 급기야 '대체 어떤 5번을 연주해야 하는 겁니까? 어제 했던거 아니면 작년에 했던거 말입니까?' 라고 제작진들에게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어쨌든 녹음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우선 10월 16일 하룻 동안 녹음이 모두 완료된 베버의 서곡이 첫 레코드로 출반되었다.
베토벤 교향곡은 그 당시로서는 꽤 긴 곡이었기 때문에, 베버 서곡을 녹음한 당일에 1악장과 3악장을 우선 녹음하고 보름 뒤인 30일에 2악장과 4악장 후반부를 녹음했다. 그리고 나머지 미수록 부분은 1927년에 녹음되었다고 한다(1927년의 마무리 세션 일자는 불명). 하지만 3악장 녹음 때는 푸르트벵글러가 그 당시 녹음 기술로는 잡아내기 힘들 정도로 작은 소리를 후반부에 요구했기 때문에, 기술진들은 레코드의 표면 잡음에 소리가 묻혀버릴 것이 뻔한 부질한 녹음 작업을 해야 했다.
아마 기술진들과 푸르트벵글러 둘 다 그 최약주 부분의 체크를 소홀히 했던가, 아니면 아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음반은 누락된 3악장 일부에 대한 재녹음 작업 없이 그대로 출반되었는데, 그 당시에도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더 웃긴 것은, 2악장에서 레코드가 4면에서 5면으로 바뀌는 부분에서는 거꾸로 이전 4면 끝에 이미 수록되어 있던 아홉 마디 정도의 악구가 5면 첫머리에서 그대로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푸르트벵글러는 생애 첫 세션의 적같은 경험 때문에, 이후 수 년간 녹음 작업 자체를 거부했다.
(↑ 베토벤 교향곡의 오리지널 SP 라벨)
(*물론 1929년에 독일 그라모폰과 다시 녹음 작업을 재개하기는 했지만, 그 때는 대부분 짧은 시간 내에 덜 끊어서 녹음할 수 있는 소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푸르트벵글러가 다시 교향곡 녹음에 손을 댄 것은, 1930년대 후반에 HMV(현 EMI)가 커팅용 왁스를 여러 개 준비해 차례로 돌리면서 세션을 끊이지 않게 할 수 있는 신기술을 도입하면서였다. 1926/27년 세션에서 다루었던 베토벤 교향곡 5번도 1937년에 HMV에 재녹음되었고, 1년 뒤에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도 녹음되었다.)
3악장의 누락이건 2악장의 중복이던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실수인데, 문제는 복각 기술이 진보하면서 재발매된 음반들 중 어느 하나도 저 누락 부분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레코드 원판의 기록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 누락 부분을 땜질하는 것을 싫어하겠지만, 내 입장은 다르다. 아무리 오래되고 '후진' 녹음이라도, 녹음 과정에서 빠뜨린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메꾸어서 매끄럽게 넘어가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작업이 아닐까?
어쨌든 내가 전에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해적판도, 심지어 복각 왕국 일본에서 제작된 CD들에서도 저 누락 부분은 그냥 떨어져 나간 상태 그대로 제작되었다. 그러다가 올해에 낙소스에서 저 애물단지 녹음에 손을 댄 것이었는데, 내가 낙소스에 기대를 건 것도 그들이 염가 음반 치고는 복각에 꽤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는 근성 때문이었고.
그리고 낙소스의 복각 기술진들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낙소스 히스토리컬의 복각 책임자인 마크 오버트-손은, 3악장에서 떨어져 나간 아홉 마디 가량의 악구를 1937년에 HMV와 재녹음한 음반에서 빌어와 메꾸었다. 물론 1926년과 1937년의 레코드 음질차를 고려해, 1926년 SP의 노이즈를 배경에 자연스럽게 깔아놓아 감쪽같이 숨겨놓았고. 처음 출반된지 무려 80년 만의 일이다.
이후 남겨진 푸르트벵글러의 녹음들 중에도 크고 작은 누락 부분이 곳곳에 있는데, 특히 방송용으로 남겨진 것들이 그렇다. 1939년에 베를린 필과 제국방송에 방송용으로 녹음한 5번은 방송국의 실수인지 아니면 전쟁통에 파손되어서 그랬는지 아세테이트 디스크 하나가 아예 없는 채로 보존되고 있다. 이것을 1990년대 중반에 프랑스 복각 전문 음반사 타라가 CD화할 때, 분실 혹은 소실된 디스크 부분을 역시 1937년 HMV 녹음에서 갖다가 썼다. (다만 이 경우는 처음 듣는 사람도 쉽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땜질한 부분이 확 튄다.)
물론 '날아간 아홉 마디 쯤은 아무래도 좋다' 는 사람에게는 그리 새삼스러운 소식도 아니겠지만, 누락 부분의 수복 작업을 한 최초 복각반이라는 점 외에도 복각 퀄리티가 굉장히 좋다는 것과, 그리고 그런 물건이 값도 6000원대로 꽤 싸다는 것까지 친다면 빈티지 애호가로서는 지나치기 힘든 유혹이다. 낙소스가 이후 계속 진행할 이 초기 녹음 컬렉션에서, 일본 푸르트벵글러 협회가 꼭꼭 숨겨놓고 회원 전용 CD로만 발매하고 있는 브람스 헝가리 춤곡 3번 미발표 녹음(1929.8.12 또는 22. 다만 아직까지 진위에 대한 논란이 있음)같은 초레어템을 끼워넣어 발표하면 진짜 우왕ㅋ굳ㅋ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