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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잡설록 (공지 필독!!!)
by 머나먼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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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을 일종의 '강요' 로 시작했고,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취미' 가 되었으며, 그리고 지금은 '전공' 이 되고 있다. 족보를 뒤져 봐도, 그리고 지금의 가족 구성원을 보아도 음악에 투신한 선조나 가족은 한 사람도 없다.

대학 4년 중 3학년 1학기 까지의 학제를 마친 상태인데도 나의 이론은 좀 많이 부실하다. 돈 벌려면 편하게 레슨이나 하라는 주위의 권유에 응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 솔직히 '음악 듣는 것' 을 좋아하지, 음악을 쓰거나 연주하는 것에는 아직까지 재미는 커녕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본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러한 까닭에 지금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내가 과연 '애호가' 인가 아니면 '전공자' 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대학교는 '전공' 을 위해 다니고 있지만, 초등학교 5학년 이래 음악은 '취미' 에서 떠나본 적이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음악 매니아들은 '애호가' 들이다. 수천 장의 레코드를 가지고 있다거나,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제 6번에서 최종판 해머가 몇 번이나 연주된다거나, 비틀즈의 비공식 녹음 테이크가 몇 종류나 되는가를 논하는 것은 솔직히 전문가보다는 매니아들이 더 열성적이다.

오히려 음악을 다양하게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공자' 들로, 이들은 음악을 주로 '분석' 하기 때문에 좋고 싫음이 확실히 가려지게 된다. 특히나 분석에 혈안이 된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나 드보르작 같은 작곡가들을 '너무 물러터지고 달콤한 작곡가' 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나는 '애호가' 로 시작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장르와 종류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클래식 쪽만 해도 전공자들은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는 칼린니코프(Vassily Kalinnikov), 페핑(Ernst Pepping), 마르투치(Giuseppe Martuzzi)같은 작곡가들의 작품, 중국-일본-북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든 CD까지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1996년 생일 때는 Fireegg Friend 여 모군이 사준 넥스트 라이브 콘서트 챕터(2집 투어) 테이프 두 개를 시작으로 대중음악 쪽도 듣기 시작했으며, 암울한 재수생 시절에는 수없이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드럭의 크라잉 넛과 노 브레인을 시작으로 국내 펑크/하드코어 밴드의 음악에 열광하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여러 장르의 음악인들과 친분을 공유하고 있다. 80대의 원로 작곡가 조념 선생님을 비롯해 약관 30대의 작곡가 김대성씨, 지휘자 박태영씨, 사이코빌리 밴드 '명령 27호' 의 베이시스트 시드니군 등. 그리고 책꽂이에는 여러 관현악 작품의 악보들과 각종 음악가의 전기/이론서, 그리고 조니 로턴(섹스 피스톨즈와 PiL 보컬)의 욕설과 비속어로 가득찬 자서전까지 있고.

하지만 남은 대학 생활과 그리고 계획중인 유학-개인적으로는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중 한 군데 택일할 예정-은 확실히 '전공자' 혹은 '전업 음악인' 을 목표로 하는 것인 만큼, 전공자로서의 경험과 지식이 쌓여야 하는 것이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영영 '애호가' 로 남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까지의 음악 청취 경험이 앞으로의 인생에 얼마나 반영이 될 지,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 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애호가' 와 '전공자' 어느 쪽도 버리고 싶지 않은 만큼, 앞으로는 이 둘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될 듯 하다.

(네이버 블로그, 200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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