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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잡설록 (공지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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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지평선당(音響地平線黨. Sound Horizon Party)은 오덕정계에서 나름 의석수가 꽤 되는 정당인데, 그 세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2차 전당대회(라고 쓰고 온리전이라고 읽는다)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소는 보라매청소년수련관 다이나믹홀이라고 했는데, 전당대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도보로 갈 수 있는 약도를 짤방 곁들여 소상히 제시해주길래 신대방역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대회장인 청소년수련관에 다다르고 나서야, 나는 거기가 예전에 서드플레이스가 개최된 동작구민회관 바로 아래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유력 정당이라지만 선량한(????) 시민을 낚다니. 아무튼 대회에 관한 어떤 이정표도 붙어있지 않았고, 심지어 다이나믹홀 입구에도 '여기 정말 맞나?' 싶을 정도로 무척 조용하고 인기척이 없는 분위기였다.

일단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신분증 확인 절차를 밟는 곳과 대회 참가비(2000\)를 내는 곳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었다. 순화어로는 저연령층, 비속어로는 초딩들의 무분별한 입당으로 인해 당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지도부의 강한 의지 표명으로 보였는데, 이미 계란 한판 임박인 늙다리 오덕으로서는 그 확인 절차가 오히려 서글픈 대목이었다.

(↑ 전당대회장 풍경)

회장 안은 대체로 소강당 정도의 크기였고, 자신들이 만들어온 당 홍보물을 판매중인 이들의 숫자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대신 일반 정당원이나 참가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충분한 의자와 공간을 준비했는데, 거의 1/3 정도의 비율이었다. 홍보물 판매 외에 그들의 지도자들을 직접 연기하기 위해 찾아온 배우들(이라고 쓰고 코스플레이어라고 읽는다)도 있었고, 입장 때 나눠준 유인물에도 오후 세 시부터 자신들을 지지하는 예술인들의 특별 공연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다만 비당원으로서 들어온 나로서는, 이미 홍보물 판매 코너도 10분이 안되어 다 돌아본 데다가 세 시까지 기다릴 만큼의 인내심도 없었기 때문에 좀 아햏햏한 느낌이었다. 어떤 특정 정당에 대한 빠심이 부족한 회색분자인 탓에, 사실 갈까 말까 고심도 했었고. 하지만 특별히 그 동안 눈여겨본 극렬 당원 세 사람의 홍보물 판매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것 만을 목적으로 온 것이기도 했다.

B-06이라고 쓰여진 곳에서 현재 '항아,籬' 라는 작품을 밍크에서 연재 중이기도 한 론 당원과 국내 최대 오덕의회인 '코밑월드(가칭???)' 에서 우수 정치홍보물로 선정되기도 했던 'LOST' 의 공동 작가들인 모니카 당원, cocoon 당원 세 사람의 합동 선전화집 '환상악단(4000\. 예약품목)' 과 론 당원의 단독 홍보물인 '흑의 예언서(3000\)' 를 우선 질렀다.

다만 나름 전공자라는 입장에서 좀 이상한 모양의 트럼펫이라던가 현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의 활쥔 모습, 톱니펙이 아닌 나무펙 조현을 하는 콘트라베이스 같은 대목이 좀 켕기긴 했는데-이것도 나름 골치아픈 '직업병' 이다. 그러니 내가 베바를 그토록 싫어했지-, 당의 영도와 위업을 화려한 카리스마로 채색해낸 선전화들에 들어있는 힘과 의지는 비당원인 나마저도 덜덜 떨게 할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전당대회장에서는 이외에도 그 동안의 여러 오덕집회에서는 구매할 일이 전혀 없었던 음악 CD까지 구입했다. 유인물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았지만, B-06의 바로 왼쪽에서 'Project C.A.S.H.' 라는 이름으로 음향지평선당의 정치가요들을 클래식 스타일로 편곡했다는 앨범을 팔고 있었다(8000\).

자세한 트랙 리스트 같은 것이 없어서 살지 말지를 좀 망설였는데,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추후 수록곡과 거기에 담긴 정치 이념을 서술한 소책자를 jpg 파일 형식으로 보내준다는 말을 듣고 구입한 뒤 해당 사항을 기재했다. 다만 아직까지 풀 오케스트라를 동원할 만큼의 정치력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 대부분 트리오(3중주)~쎾쓰텟(6중주) 정도의 편성으로 편곡되어 있었다(오케스트라 버전의 경우, 미디 음원들 중 나름 고품질인 것을 사용해 분위기를 내는 선으로 제작되어 있었음).

원곡의 가사와 그 이념은 아직도 모르고 있지만, 거기에 들어 있는 선율은 확실히 뭔가 2차 창작품을 만들 것을 다그치는 듯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좀 집중적으로 들어본 뒤, 그 중 몇 곡의 주제 선율을 따서 본격 관현악 작품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요즘 갖가지 오덕정당들이 정치 집회를 가지고 있는 상황인데, 당장 2월 1일에만 해도 라이벌 정당인 '인조가수당(人造歌手黨. Vocaloid Party)' 이 누님 계열 거물급 정치인 한 사람을 추가한 새로운 당 지도부를 구성해 전당대회를 열 예정이라는 소식도 접했다. 그리고 그 보름 뒤인 2월 15일에는 화훼업자들이 주축이 된 '동방당' 과 '성모감시당' 등의 군소정당들이 규합된 연합전선이 열 '백합제' 라는 집회도 예정되어 있는데, 모 물고기가 이런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고 물러났는지 어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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