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하고도 한달 남짓 뒤에 두 번째 행사가 열렸는데, 장소가 다음 서드 플레이스 개최 예정지와 동일한 곳이기도 해서 답사차 가봤다...고는 할 수 없겠고. 아무튼 작은 백합이 맵다는 것을 확인한 1회 행사 뒤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가봤다.
집 근처에서 탈 수 있는 2014번 초록버스의 은총을 받아 10시 24분에 성동구민종합체육센터에 도착했는데, 아직 개장 시간까지 30분도 넘게 남은 시점이었다. 당연히 뭔가 대기줄이 형성돼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랬고.
1회 때는 볼 수 없었던 입간판도 등장했다. 센터에 드나들던 '일반인' 들은 대체 무슨 행사일지 궁금해했을 것 같았고.
입장 대기줄은 안에서도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고, 나처럼 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바깥에 줄을 서야 했다. 나중에는 보도 끝까지 줄이 형성되자 행사 운영진들이 보행 방해를 염려했는지 로비의 1/3 정도 공간을 할애해 가급적 건물 안에서 기다릴 것을 유도했다.
입장 약 5분 전. 예정 시간이었던 11시보다 약 5분 늦게 입장이 시작되었는데, 대기줄의 첫 열에 있던 이들에게는 미리 입장권 역할도 할 수 있는 카탈로그를 배부한 모양이었다. 입장 시작 때 카탈로그를 가지고 있던 이들이 입장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머리 위로 치켜들고 가는 모습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의원 회의를 보는 것 같았고.
1회 때는 카탈로그 준비권수가 부족했던 것을 의식했는지 꽤 많은 양을 찍어내서 입구 양편에 쌓아놓았는데, 2000원을 주고 구매한 뒤 행사장을 빠져나올 때까지 지니고 있으면 됐다. 잊어버리면 '그냥 죽는거여(할미넴 어투)' !
스탭들의 허가를 받고 촬영한 행사장 전경(이미 지르고 나서 찍긴 했지만). 소규모지만 체육관을 빌려서 한 만큼 탁 트인 공간 때문에 조망도 좋고 관람객 동선의 혼잡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체육관인 만큼 벽 한켠마다 고정 의자들이 마련되어 있어서 휴식처 역할도 하고 있었는데, 없는 벽에도 여분의 의자를 갖다놓고 있었다. 쓰레기 문제는 두 군데의 벽에 큰 비닐 봉투를 종류별로 붙여놓아 분리 수거를 유도하고 있었고.
사진은 못찍었지만, 1회 때처럼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뭔가 쓰거나 그리고 갈 수 있도록 큰 종이를 붙여놓은 낙서판도 있었는데, 3등으로 축사를 쓰는 행운도 얻을 수 있었고. 축사 내용은 굳이 밝히고 싶지 않지만, 아무튼 계속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작가 스스로도 '중샄 애호가' 임을 밝히고 있는데, 그런 성향이 가장 찐하게 나온 회지. 꽤 두툼한 'Allegoria -Second Chapter-' 를 마감한 직후에 계속 작업을 이어갔다고 하는데, 역시 매달 회지를 낸다는 것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심한 피로를 가져오기 때문인지 이 회지 이후로는 띄엄띄엄 낼 거라고 되어 있었다.
아무튼 1회 백합제 때 산 'Cross-Border' 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 일종의 개인적 영예이자 자랑이 될 것 같고. 1회 때의 회지도 'Allegoria' 와 마찬가지로 속편을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다음 백합제던 어느 행사건 간에 출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1회 백합제 때 'Message' 라는 창작 회지를 구입했던 부스였는데, 이번에는 블로그 커뮤니티들에서 용란 절도라는 범죄 행위를 조장하고 있는(???) '드래곤 케이브' 의 창작 캐릭터 둘을 등장시키고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느낌의 그림체는 여전했는데, 두 번째 개인지이자 본격적인 회지라는 것을 염두에 뒀는지 크기도 일반 회지 수준으로 키우고 표지도 컬러로 만들어 놓았다. 드래곤 케이브라는 것 자체에 큰 애정은 없지만, 1회 때의 느낌을 그대로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예약한 품목이기도 했고.
1회 때 샀던 경험이 있던 부스가 아닌, 완전 첫 대면이었던 부스에서 산 유일한 물품. 중간에 4컷 개그를 배치한 특이한 구성의 회지였는데, 비타의 개그 때문에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타카마치 나XX!!' 라니...(나XX 힌트: 가수, 기자 회견, 거기 인증 시도(...))
이외에도 그림 동화 '헨젤과 그레텔' 의 백합화를 시도한 회지라던가 짧고 굵게 개그와 에로를 모두 노렸던 홍메이링X사쿠야 카피북, 쿈코 주연 카피북, 심지어 파울 힌데미트의 비올라와 관현악용 작품 '백조고기 굽는 사나이(Der Schwanendreher)' 를 패러디한 부스명으로 인상적이었던 '백조고기 굽는 아가씨(그러면 Die Schwanendreherin인가?)' 의 회지도 눈길을 끌었고. 다만 이런저런 고민 끝에 지르지는 못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언급한 그 부스, 설마 음악 전공자가 출전한거 아닌지 모르겠다. 한 번 물어보기나 할 걸)
1회보다 적어도 2.5배는 많은 관람객 숫자 만큼이나 부스의 매진 속도도 굉장했는데, 개장 후 2시간도 채 못되어 출품한 것들을 다 팔고 귀가한 동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서플과 비슷하게 10권 이상을 구매한 이들에게 주최 측에서 주는 특전 물품도 있었다는데, 세 권이 끝이었으니 애초부터 야망은 없었고.
다음 행사가 언제 있을 지 모르겠는데, 계속 1년 주기로 열린다면 당분간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것 같다(빠르면 가을 중에 독일 혹은 오스트리아로 유학할 예정). 가건 못가건, 아무튼 행사의 페이스가 유지되기를 바랄 뿐이다.
행사장 나온 뒤 홍대의 모 음식점에 가서 점심 시키고 기다리던 중 찍은 '인증샷'. 맨 왼쪽의 것은 백합연구소라는 부스에서 무료로 배부한 리포트다. 일본 백합 관련 행사의 참가기와 아동 성교육 만화 '비밀의 봉오리' 에 관한 분석 등이 기재되어 있는데, 여유가 있믄 한 번 통독해볼 예정이고.
여담이지만, 표지에 찍힌 'ANC Creative' 를 'ANG Creative' 로 읽어서 좀 난감했었다. 요즘 숲의 요정 빌리 형님의 포스에 너무 얽혀살고 있는지? 아무튼 지름률 자체는 적었던 만큼 별로 짊어지고 다닌 것도 없었지만, 어깨도 괜시리 뻐근했고(...). 확실히 늙긴 늙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