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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잡설록 (공지 필독!!!)
by 머나먼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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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문화원의 독일어 초급 과정 1단계(A1.1)도 거의 막바지다. 대학 졸업하고 백수인 신세라 돈은 없어도 시간은 쳐남아도는 지경이고, 덕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나가서 어설프게나마 말을 하고 글을 쓰고 하는 중이다.

나는 내 자신이 과연 잘 하고, 실력이 늘고있는 지도 아직 모르겠지만, 오늘 강사가 '과감하게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면서 칭찬을 해줬다. 물론 기분이 좋긴 했지만, 그 과감함은 사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긍정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 기분이나 마음으로는 결코 '긍정적' 인 것은 아니다.

전통음악도 아니고, 서양으로부터 수입된 음악을 위주로 악기를 연주하거나 곡을 쓰거나 지휘를 하는 법을 그 동안 배워왔고 전공으로 삼아 왔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그 음악의 원산지로 가서 좀 더 심도있게 배우고 싶은 욕구도 키워왔고.

하지만 가족들 중 유일하게 나라 밖을 나서보지 못한 것도 있고, 세계적인 경제 불안으로 가족들이 대야 할 유학 비용도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휴학을 자주 안하고 그냥 다이렉트로 다녀서 졸업했다면야 문제가 달라졌겠지만, 아무튼 어느 정도는 자초한 꼴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정말로 나가고 싶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어학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성공하거나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도 물론 있고. 하지만 요즘에는 그러한 사적인 허영심마저도 다른 생각에 가려버리는 것 같다.

"정말 이 나라를 탈출하고 싶다."

적어도 나는 어느 시점까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게 크게 자랑스러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부끄러울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서양음악만 파다가 전통음악을 들으러 다니면서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형태의 중요한 예술 세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만큼은 충분한 만족과 자랑이었고.

하지만 얌전히 음악과 예술 공부만 하기에 내 관심사는 '지나치게' 넓혀져 버렸다. 친일부역 계통의 예술인들이 해방 후 카멜레온처럼 변신하고 치부해 나간 모습을 보고는 큰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고, 그들이 만든 곡을 교과서에서부터 군가, 학교 교가로까지 억지로 불러야 하는 현실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과거만 그렇게 지저분했다면야 차라리 역사의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겠지만, 현실이 그 연장이라는 것도 참 돌아버릴 지경이다. 예술을 봉으로 삼는 행위가 제도권이나 정권, 기득권 같은 '있는 자들' 뿐 아니라 '없어서 쟁취하려는 자들' 에게까지 만연해 있다. '후까시' 나 '간지' 용으로 문화예술을 이용하는 것 만큼 추잡한 것도 없는데 말이지.

최근 벌어진 모 유명 지휘자와 모 정당 당원들 간에 벌어진 갈등 국면에만 국한할 문제는 아니다. 모 가수나 모 대학 총장인 전통음악인이 내뱉은 망발에만 국한할 문제도 물론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거지같은 인간 군상들을 낳고 길러내고 먹여주는 사회 풍토 전체다.

소위 '좌빨' 이건 '수꼴' 이던 '오덕' 이건 '독설가' 던 간에, 정말 꼴보기 싫은 생물들 투성이다. 덕분에 그게 꼴같잖아서 옮겨온 이 곳 티스토리에서도 차단 리스트는 늘어만 가고 있고. 온라인에서만 그런다면 모르겠지만, 오프라인에서도 미칠 정도로 범람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하여' ? '개혁과 진보를 되찾기 위하여' ? 내가 보기엔 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짐승의 단말마같은 울음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넘쳐나는 구호와 공약도 절대 다수가 지키지도 못할 것들이고, 그렇다고 해서 책임있는 해명이나 진심어린 사과, 건설적인 대안이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슬쩍 뭉개고 다음 관심사가, 혹은 다음 떡밥이 덮어주길 기다리는 꼬라지고.

대체 왜 이렇게 된걸까? 양비론자를 좋지 않게 보던 내 자신이 이제 양비론자의 경지 마저 뛰어넘어 좀스럽고 의심많고 폐쇄적인 인간 군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경제 논리로 문화예술을 재단하려는 기득권층이나,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해 먹이를 찾아 헤매는 운동가들이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식견 따위는 완벽한 아웃 오브 안중이다.

이런 상황이니, 음악이라는 예술 쪽을 택한 나 자신이 당장에 먹고 살 문제에 봉착하는 것도 필연적일 수밖에. 게다가 요즘 양쪽이 하는 꼬라지를 보면, 어느 쪽이 힘을 얻고 사회의 주류가 되던 간에 이 땅에서 내가 예술이란걸 안심하고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물론 여기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더라도 적같은건 적같을 거고, 볍신같은건 볍신같을 것도 뻔하긴 하다. 다만 이 나라에, 이 사회에 단단히 실망한 나로서는 여기에 더 이상 머물 의지나 이유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고. 이 시궁창에서 소리높여 외치는 공론자들의 놀잇감이 되느니, 차라리 이역만리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더 빨리 독일어를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일 3시간 반 씩 월~금 주 5회 꽉 채워서 진행되는 '초집중강좌' 를 연이어 2회 신청한 것도 바로 그 탈출 욕구와 조바심 때문이다. 피칠갑한 시가전이 벌어질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내 눈에 비치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상황은 사실상 바이마르 정권 말기의 독일이나 제정 말기의 러시아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나가고 싶다. 가능하면 빨리. 그리고 나가서 돌아오고 싶지도 않다. 꼬라지가 계속 이 꼬라지라면 더더욱. 문화를 생각해줘? 예술을 생각해줘? 네놈년들 개념이나, 행동거지나, 말싸가지나 먼저 생각해 보시지. 내 입 더 더러워지기 전에 이 글은 일단 여기서 끝.

p.s.: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고 윤이상 선생의 말년이 떠오른다. 남한 정권으로부터는 친북 인사로 분류되어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창작과 통일 운동에 매진하던 인물을 최종적으로 '난도질한' 인물들이 누굴까? 거처인 독일 베를린까지 가서 '만약 선생이 한국 방문을 수락한다면 분신자살하겠다' 고 협박한, 정부의 입장과 거의 대척점에 있었던 '과격 운동권' 인사들이었다.

양 측 모두 애초부터 예술 활동보다 정치 활동에 포커스를 맞춰 한 인간을 다루었으니, 이렇게 병맛넘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그 상황이 언젠가 재연되지나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여기까지 왔다. 1990년대 중반에서 10년이 넘게 흘러도 나아진게 없는 셈이다. 나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은 잃어버릴 것도, 그렇다고 되찾을 것도 없는 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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