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은 필연적으로 다재다능함을 발휘해야 했다고 하는데, 하다못해 바흐만 봐도 연주가, 지휘자, 작/편곡자 등을 혼자서 다 맡아 활동했다. 바로크 시대뿐 아니라 고전 시대때도 그랬고, 초기 낭만주의 시대에도 그랬다.
각 분야가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지금 시대에도 1인 다역을 하는 음악인들이 종종 있는데, 비록 제도권에서 그렇게까지 부각되지는 않았어도 바로크 음악인의 그것에 필적할 만한 전방위 활동을 벌인 작곡가가 바로 김희조(1920-2001)다.
김희조라는 사람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이 많더라도, 건전가요의 대명사격인 '잘 살아보세' 나 국민체조 음악을 한 번도 듣지 않은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김희조가 쓴 음악은 의외로 아직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좀 더 파고들어보면 꽤나 놀랄 만큼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김희조의 음악 학력은 정말 보잘것 없는데, 상업학교를 나와 은행원이나 회계, 경리 등의 직업을 가졌던 초기 이력만 보면 왜 음악가로 분류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독학으로 음악을 시작해서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 비올라, 튜바 등의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었다는 연주 실력은 확실히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김희조의 재능은 악기 연주에 그치지 않았는데, 해방 직전에 김순남에게 작곡을 배우면서 이후 진행될 작곡 활동에 있어서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김순남은 당시 조선 음악계에서 가장 전위적이면서 민족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고, 그에게서 전통음악의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현대적인 작품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고.
하지만 작곡 활동 뿐 아니라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결국은 월북의 길을 택했던 김순남과 달리, 김희조는 남한에 남았고 6.25 발발 후 입대해 초대 육군본부 군악대장을 역임했다. 군악대장 재직 시기에는 수많은 취주악곡을 작/편곡했는데, 김순남으로 부터 받은 영향이 이 때부터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양식의 취주악단을 이끌면서도 김희조는 전통음악에 대한 수집과 연구를 계속 했는데, '방아타령' 을 취주악용으로 편작한 곡은 지금도 민관군 취주악단의 연주곡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당대 명창들이었던 김소희나 박귀희 같은 인물들을 군악대 문관으로 초빙해 생계를 해결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판소리 등 전통 성악의 탐구도 진행되었다.
전역 후에는 KBS에서 방송 출연용으로 조직한 KBS 관현악단과 합창단의 지휘자 겸 작/편곡자로 일했는데, 이 때도 단소나 피리 등의 전통악기와 서양 관현악의 협주용 작품이나 민요의 합창 편곡 등을 만들어 연주/방송했다. 지금도 전통음악 쪽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은 김희조가 편곡한 민요 합창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통음악 외에도 미국의 재즈/블루스 어법을 습득해 예그린악단을 위한 뮤지컬도 작곡했고, 새롭게 개교/창단된 국악예술학교(현 국악고등학교)의 교사와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3대 상임 지휘자로 기용되면서 전통음악을 배우는 이들에게는 서양음악 이론을 가르치고 국악관현악단을 위해서는 창작곡을 만드는 활동이 계속되었다.
김희조의 업적 중 가장 높이 평가되는 영역이 바로 이 '창작국악' 영역인데, 김순남으로 시작해서 당대 최고의 명창이나 명인들을 직접 만나 습득한 전통음악의 기법이나 특색에 서양식 어법과 통속성을 섞어 이후 창작국악을 작곡하는 많은 이들에게 일종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다.
실제로 그가 작곡한 10여 편의 '합주곡' 은 지금도 국악관현악단들의 필수 연주곡이 되어 있고, 서울올림픽의 개회식 음악 중 전통색이 짙은 곡도 김희조가 작곡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KBS 관현악단 시절의 발상을 역으로 해서 플루트 같은 서양 악기와 국악관현악단을 협주시키는 작품도 남겼고, 아예 서양 관현악단과 국악관현악단을 합주시키는 곡도 쓴 바 있다.
김희조 관련 저서나 논문 등을 살펴보면 마지막으로 예를 든 계열의 곡이 두 가지 나오는데, 하나는 1980년대에 작곡한 '봄의 찬가' 라는 곡이고 또 하나는 1990년대에 작곡한 '아름다운 농촌 풍경' 이다. 이번에 이 뻘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이 바로 후자다.
(*사실 이 시도는 김희조가 하기 이전에도 이미 몇 차례 시도된 적이 있다. 심지어 아르메니아계 미국 작곡가인 앨런 호바네스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으로 위촉받은 교향곡 제 35번(1978)에서 그 아이디어를 미리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장일남도 1985년에 같은 편성으로 '허도령의 죽음' 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1997년에 KBS 국악관현악단이 100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했는데, 100회 기념으로 김희조에게 KBS의 양대 단체인 국악관현악단과 교향악단이 협연하는 곡을 위촉했다. 그래서 작곡된 곡이 바로 한·양 합주를 위한 협주곡 '아름다운 농촌 풍경' 인데, 예정대로 1997년 11월 13일에 KBS홀에서 김용진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그 때 실황 중계를 우연히 집에서 보게 됐는데, 재빨리 비디오 카세트를 찾아내 녹화하는데 성공했다. 해당 작품이 지금껏 음반으로 출시되지 않은 상황이라, 비록 열악한 음질과 화질이나마 운좋게 희귀 자료를 확보한 셈이었다.
정식 명칭이 협주곡이기는 하지만 구성으로 봤을 때는 모음곡에 가까운데, 일곱 개 악장에 각기 표제도 붙어 있다.
1. 상쾌한 아침
2. 출농
3. 즐거운 사이참
4. 여름 농사
5. 수확의 계절
6. 풍년송
7. 축제
편성, 악기, 음악 어법 등 모든 것이 상이한 두 관현악단을 위해 어법도 조금씩 달리 하고 있는데, 물론 기본은 전통음악의 서법이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다만 국악관현악은 아무래도 전통악기 거의 그대로를 쓰는 탓에 연주하면 오히려 어색한 서양식 화음보다는 해금이나 대금, 피리의 전통음악풍 선율 병주가 가야금이나 거문고, 장고 등의 장단 반주에 곁들여지는 식으로 진행되는 대목이 대부분이다.
서양관현악도 서양식 3화음을 쓰기는 하지만, 거기에 민요 음계의 조식에 맞춘 4도 화음(예: 도-파-시b-미b)이나 2도 화음(예: 도-레-파-솔) 같은 화음을 섞어 위화감을 줄이고 있다. (이런 식의 '3화음을 피하는 방법' 은 스승 김순남이 즐겨 사용한 것에서 힌트를 얻었음이 분명하다.)
특별히 현대적이거나 전위적인 것을 기대한 사람들이라면 아마 싱겁거나 구티난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꽤나 특이하고 위험이 큰 편성의 곡임에도 억지스럽다거나 두 관현악 사이에 충돌이 빚어지는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확실히 실전에 강한 작곡가다운 면모였고.
다만 합주곡의 경우 여러 국악관현악단의 앨범으로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이렇게 서양 관현악이 곁들여지는 곡이나 전통악기와 서양 관현악을 협주시킨 곡의 경우 음반을 찾아보기가 굉장히 힘든 실정이다. 물론 김희조의 최대 업적이 창작국악 쪽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긴 하지만, 일종의 '퓨전' 을 시도한 사례로 음반 하나 쯤은 있는 것도 나쁠 것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