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야도쿄를 무리해서 달리던 것도 이제 당분간 옛날 일이 됐는데, 독일어 배우는 것 때문에도 그렇고 교향악축제 예매 등으로 나간 돈 때문에 뭔가 호기를 부리며 사먹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염가의' 노란 버스(교통카드 기준 700\)를 이용하기 때문에 교통비 타격은 최소화하고 있는데, 행여 집에서 밥을 못챙겨먹고 간다거나 하면 그것도 꽤나 낭패다. 커피 등 뜨거운 음료를 뽑아마시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정수기의 뜨거운 물로 배를 속여야 하는데, 이럴 때 천원짜리 지폐라도 몇 장 있으면 그야말로 구원의 손길이고.
독일문화원 근처에는 남산도서관과 용산도서관이라는 두 개의 시립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듯이 위치하고 있는데, 내가 아는 한 서울 어디에도 이렇게 기상천외한 도서관 배치는 없는 걸로 안다.
아무튼 위치가 위치라서 이렇다할 음식점도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곳인데, 그나마 각 도서관들에 딸린 구내식당과 매점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첫 과정을 끝내는 6주 동안 틈틈이 먹었던 것들의 짤방을 정리해 봤는데, 우선 남산도서관부터;
두 곳 모두 메뉴는 대동소이한데, 매일 반찬이 바뀌는 백반 메뉴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시사철 고정된 품목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무난할 것 같아 시켜본 돈까스(3000\). 프루츠칵테일 약간과 오이피클, 당근과 건포도가 약간 들어간 채썬 양배추, 밥이 따라나오는 것은 여느 한국식 돈까스와 다를 바 없고, 파 넣은 우동국물이 따라나온다.
미칠듯이 맛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먹고 남길 정도는 아니고 그럭저럭. 돈까스는 주문을 받으면 튀겨내는게 아니라 미리 절반 쯤 익힌 것을 다시 튀겨서 내오는 것 같은데, 소스를 흠뻑 끼얹어 내오는 것까지 하면 바삭함은 덜할 수밖에 없다.
불행인지 뭔지, 남산도서관은 지금 수도설비 공사 때문에 장기 휴관중이다. 휴관 며칠 전에 들이닥쳐서 먹어본 까스정식(3500\). 돈까스와 생선까스, 햄버그스테이크가 한 조각씩 나오는 메뉴인데, 치즈까스와 함께 '최고가' 메뉴이기도 하다.
곁들이는 거의 똑같은데, 다만 생선까스에 따로 소스나 드레싱을 얹는게 아니라 샐러드에 뿌리는 아일랜드 드레싱을 그대로 쓴다는 것에서 좀 충격을 먹었고. 그리고 햄버그 위에 뿌려진 것은 겉보기에 토마토케첩 같지만, 칠리소스다.
두 도서관이 아주 가까이 붙어있어서 어느 곳이 휴관을 할 때면 일종의 상호보완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언덕배기 아랫쪽에 찰싹 달라붙은 모습인 용산도서관에도 물론 편의시설의 일종으로 구내식당과 매점이 운영되고 있다;
용산도서관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로 첫 메뉴를 돈까스(3000\)로 택했다. 가격은 똑같고 조리법도 대동소이하지만, 외식업체가 달라서 그런지 약간 차이가 있다. 평범한 밀가루 크림수프기는 하지만 수프가 나오고, 김치와 단무지 담은 종지도 기본으로 제공된다. 돈까스 접시의 꾸미(?)에는 프루츠칵테일 대신 마요네즈에 버무린 마카로니가 나오고.
마찬가지로 바삭함은 덜한 편인데, 소스도 다른 제품을 쓰는지 남산 것보다는 덜 달달하고 오히려 약간 짭짤한 맛이다. 그래도 가격의 저렴함과 중국집이나 분식집도 주변에서 찾기 힘든 산간벽지(???)의 상황에서는 달리 불평할 거리를 찾지 못하겠다.
두 번째 갔을 때는 새우볶음밥(3000\)을 시켜봤다. 이것 역시 시판되는 냉동 제품을 미리 반조리한 것에 그냥 흰밥을 약간 더해서 볶아 내오기 때문에 준비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 편이다. 다만 그런 까닭에 손맛은 기대하기 힘들고.
수프 대신 그날 제공되는 백반 메뉴의 국물이 따라나오는 것 같고, 마카로니 대신 프루츠칵테일 약간이 곁들여진다. 볶음밥 특유의 고슬고슬함은 부족했지만, 양이 꽤 돼서 배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막바지에 한번 더 갔을 때 시킨 햄버그스테이크(3000\). 마찬가지로 시판품으로 조리한 메뉴인데, 햄버그라기 보다는 핫바 같은 연육 제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나오는 곁들이도 돈까스와 다를 바 없고, 소스도 똑같은 것을 쓰는 것 같다. 배고픈 상태여서 남김없이 먹긴 했지만, 차라리 돈까스나 치즈까스를 시킬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강의는 아침에 시작해서 점심때 끝나는 '초집중강좌' 인데, 주중에 매일 나가야 되는 꽤나 빡센 시스템이다. 아침을 많이 먹는 타입이 아니라서 비슷한 식으로 토요일에 나갈 때마다 엄청난 허기짐을 느꼈는데, 그렇다고 저런 염가 식당에 갈 만한 돈도 아쉬운 상황이라 문제고. lllOTL
*보너스로 2월 초에 멘야도쿄 때문에 서교푸르지오에 갔다가 본 양 우리. 서울 도심에서 양을 키운다는 것 때문에 꽤 유명해진 곳이었는데, 최근에 가보니 치워져 있었다. 호기심에 보는 사람도 많기는 했지만, 양들 입장에서는 우리도 좁고 먹을 것도 그리 풍족하지는 않아 보였다. 게다가 볼일본 것도 자주 치워주지 않는 것 같아 냄새도 났고. 양들은 어떻게 됐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