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발트뷰네 2003 포스팅에서 예고한 대로, 이번에는 미국의 작/편곡자 겸 트롬보니스트인 윌리엄 루소(William Russo, 1928-2003)의 곡들을 골라봤다. 흔히 '빌 루소(Bill Russo)' 로 불리는 인물인데, 재즈 신에서 많이 활동했지만 그 외의 영역도 스스럼없이 자유자재로 넘어다니고 소화한 전방위 스타일의 인물이었다.
1950년대에 스탠 켄튼 악단의 트롬보니스트 겸 작/편곡자로 들어가서 일했을 때부터 주목받았는데, 켄튼 악단의 외형은 스윙 시대의 빅 밴드와 비슷했지만 좀 더 혁신적인 방법의 편곡과 연주를 추구하던 터라 젊은 세대의 연주자나 청중들로부터 호기심어린 시선을 많이 받고 있었다. 또 루소는 피아니스트 레니 트리스타노에게 개인적으로 배우기도 했는데, 그의 '쿨' 한 성향에서 꽤 많은 영향을 받았다.
루소는 작/편곡 일을 하면서 색소폰 섹션에 무게가 실려 있던 종래의 빅 밴드 형식 대신, 트럼펫과 트롬본 등 금관악기만을 사용하고 다른 종류의 악기는 일절 쓰지 않는 독특한 형식의 연주 배치를 위한 편곡을 만들기도 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군터 슐러 등이 주도한 '서드 스트림(Third Stream)' 에도 참가했고, 1960년대에는 약 5년 동안 영국에 있으면서 '런던 재즈 오케스트라' 라는 빅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서드 스트림은 지금도 논란이 되기는 하지만, 재즈와 다른 음악-특히 클래식-의 경계를 없애고 제 3의 길을 열고자 한 시도였다. 여기에 참여한 이력부터 루소가 전방위적인 활동을 할 만한 여건과 성향을 충분히 쌓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1959년에는 순수 클래식 작품인 교향곡 제 2번 '타이탄즈' 를 작곡해 쿠세비츠키상을 받고 번스타인 지휘의 뉴욕 필 연주로 초연한 이력도 갖고 있다.
1965년에는 '시카고 재즈 앙상블' 을 결성했고, 듀크 엘링턴의 후기 이력 중 중요하게 취급되는 '종교 음악회(Sacred Concert)' 에도 참가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락 음악의 열풍을 체험하면서 락 칸타타나 락 오페라 등의 작곡에 열중했고, 1970년대에는 다시 클래식 계열 혹은 그것과 재즈/블루스 뮤지션의 협연을 붙인 '퓨전' 형태의 작품을 썼다.
한편, 1966년에 시카고에 머물던 일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는 '빅 존스' 라는 클럽에 갔다가 코키 시겔(Corky Siegel)과 짐 슈월(Jim Schwall) 두 뮤지션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4인조 블루스 그룹 '시겔-슈월 밴드(Siegel-Schwall Band)' 의 공연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오자와는 시카고 교향악단이 주최하는 연례 여름 음악제인 라비니아 음악제에 자신이 상임으로 있던 토론토 교향악단을 이끌고 객원 출연중이었는데, 이 때부터 시겔-슈월 밴드와 자신이 이끄는 관현악단의 협연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이듬해에도 라비니아 음악제에 참가한 오자와는 루소의 교향곡 2번을 공연했는데, 공연 후 루소와 만난 오자와는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고 루소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루소는 승낙하고 협연을 위한 실제 지식을 쌓도록 하기 위해 오자와를 자신이 교수로 있던 컬럼비아 대학교의 재즈 콘서트와 강의에 초대하고 블루스나 락의 어법에 관해 특강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루소의 '블루스 밴드와 교향악단을 위한 세 개의 소품(Three Pieces for blues band and symphony orchestra op.50)' 은 1968년에 완성됐고, 같은 해 7월 7일에 라비니아 음악제에서 시겔-슈월 밴드와 오자와 지휘의 시카고 교향악단 연주로 초연됐다. 청중들의 반응은 꽤 열광적이었다고 하는데, 1년 뒤에는 오자와가 부지휘자로 있던 뉴욕 필과도 연주했을 때는 리허설 때부터 각 곡이 끝나자마자 단원들이 박수치고 환호하면서 연습이 계속 중단됐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루소는 실제 블루스 넘버들의 멜로디나 코러스를 작곡에 많이 차용했는데, 시겔의 하모니카와 일렉트릭 피아노, 슈월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부각시키기 위해 해당 악기들에는 즉흥 연주의 기회를 많이 부여했다. 밴드와 관현악 모두 블루 노트를 적용하면서 불협화음이나 복화음 등으로 이따금 텐션을 주었고, 두 번째 곡에서는 바이올린을 솔로 악기로 참여시켜 밴드의 블루지한 연주와 대조를 주는 아이디어도 사용했다.
이후에도 저 곡은 오자와와 루소의 지휘로 미국 각지에서 연주됐고, 1972년 6월에는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녹음한 것이 이듬해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교향 춤곡과 커플링되어 발매된 LP는 그라모폰의 미국 매상을 부쩍 높여준 베스트 셀러 레코드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시겔-슈월 밴드가 협연자로 나섰고, 오자와 지휘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협연했다.)
첫 시도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뒤, 루소와 오자와는 비슷한 아이디어의 곡 하나를 더 작업했다. 이번에는 시겔-슈월 밴드의 공동 리더 중 한 사람이었던 코키 시겔의 솔로 연주와 관현악의 협연이었는데, '거리 음악(Street Music op.65)' 이라는 제목의 블루스 협주곡이었다.
후속작인 이 협주곡에서는 바로크 음악-특히 합주 협주곡-의 구성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차용했는데, 더불어 홀수 박자나 당김음 등으로 좀 더 리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리듬 섹션 역할을 하는 기타와 베이스, 드럼을 뺀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선율이나 프레이징의 묘미를 살리는 데도 주력하고 있는데, 관현악의 사운드도 좀 더 무겁고 깊어졌다.
1976년에 완성된 직후 마찬가지로 오자와 지휘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따라붙어 도이체 그라모폰에 녹음했는데, 거슈인의 '파리의 미국인' 과 함께 커플링되어 이듬해 발매되었다. 이 레코드 역시 잘 팔려나갔고, 1978년에는 프랑스의 디스크 대상(Grand Prix National du Disque)도 받았다.
오자와가 클래식 외의 음악에도 열린 사고관을 갖고 있어서 가능했던 작업이었는데, 이후 보스턴 교향악단으로 옮겨간 뒤에는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의 공연과 녹음이 주가 되어 한 동안 이런 '퓨전' 작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에 마커스 로버츠 트리오와 협연하면서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는데, 그 시기와 발맞췄는지 도이체 그라모폰에서도 '디 오리지널스' 시리즈로 CD를 발매했다.
ⓟ 2002 Deutsche Grammophon GmbH
수록 시간 문제로 번스타인 작품을 뺀 대신 루소의 두 곡과 거슈인의 작품을 넣어 구성한 물건인데, 물론 그 이전에도 이런저런 컴필레이션으로 나온 바 있지만 루소 작품을 모두 넣어 발매한 CD는 이게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번스타인 곡의 녹음은 예전에 염가 시리즈로 나온 '클래식사전' 의 것으로 갖고 있음)
루소는 이후에도 계속 작곡과 교육 활동에 주력해 여러 권의 재즈 작/편곡 이론서를 출간했고, 컬럼비아 대학교 음악대학 학장도 맡았다. 1995년에는 마일즈 데이비스와 길 에번스의 공동 작업 음반으로도 유명한 '스케치스 오브 스페인' 의 첫 전곡 콘서트를 열었고-음반에 수록된 것은 일부 누락된 상태라고 한다-, 엘링턴이나 밍거스 등의 대규모 재즈 모음곡 양식을 응용해 두 편의 '시카고 모음곡' 을 작곡했다.
2002년에 암 선고를 받으면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는데, 작곡과 연주 활동은 계속 했다. 마지막 작품으로는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멜로디를 따온 'Jubilatum' 이었고, 죽기 1주 전에도 시카고 재즈 앙상블과 함께 마지막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가 남긴 약 200여 편의 재즈 작곡들은 지금도 여러 빅 밴드의 연주 곡목으로 활용되고 있고, 앙상블도 계속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