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Monologue(독백)' 라는 타이틀로 통산 세 번째 개인 공연을 가졌던 김동률이었는데, 그것도 예전과는 다르게 두 가지 컨셉으로 고양과 성남에서 한 차례씩 '프롤로그', 서울에서 이틀 동안의 '에필로그' 까지 총 4회의 공연을 진행했기 때문에 라이브 앨범과 DVD가 어떻게 나올 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김동률 본인은 작업 중 어떤 문제가 있어서 앨범 발매는 취소되었다고 발표했고, 그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봄에 와서 2008년 실황이 CD 세 장으로 발매된다는 갑작스러운 공지가 김동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전해졌는데, 클래식 음반도 별로 살 것이 없어서 뚝 떨어져 있던 음반 구매욕을 즉시 회복시켜주는 소식이었고.
ⓟ 2009 Music Farm
그렇게 해서 난생 처음으로, 그것도 대중음악 앨범을 예약 구매로 신청한 것이 오늘 도착했다. CD는 프롤로그가 한 장에, 그리고 에필로그가 두 장에 수록된 형태인데, 프롤로그 CD의 여백에는 공연과 별도로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배려' 와 '고독한 항해' 가 수록되어 있다.
돈도 그렇고 시간도 그랬던 탓에 콘서트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가본 사람들의 말로는 2004년 콘서트보다 더 대규모로 치러졌고 무용까지 곁들여져서 굉장히 화려한 무대였다고 했다. 그래서 은근히 두 번째 실황 때처럼 CD와 DVD의 합본 한정판이 발매되지는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CD로만 나왔다.
기본적인 공연 레퍼토리나 게스트는 어느 정도 예상하던 선에서 모두 초빙되었는데, 2004년에도 출연했던 이적과 하림, 이소은 외에 첼리스트 송영훈과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다만 정식 피처링 멤버는 아님), 마이 앤트 메리의 정순용이 추가로 공연했다. 클래지콰이의 알렉스도 게스트로 공연했다는데, 다만 그 곡-5집의 '아이처럼'-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2004년 공연 때의 곡과 겹치는 곡들도 여럿 있는데, 대개는 그 때의 편곡을 그대로 쓰고 있지만 콘서트 이후 새로이 발표된 앨범들의 곡과 연결시키거나 순서를 바꾸는 식으로 식상함을 덜고 있다. (다만 '축배' 는 키를 꽤 낮춰서 공연했는데, 아무래도 보컬 처리의 문제 때문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발라드 넘버 외에 리드미컬한 곡으로 뭐가 들어 있을까 궁금했는데, 내심 기대했던 전람회 1집의 '여행' 이 들어 있었다. 다만 '여행' 자체의 연주는 그리 길지 않았고, 이어지는 'J's Bar' 의 인트로처럼 처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약간 실망하기는 했는데, 오히려 뒤이은 저 곡의 연주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이내 만족했고.)
꽤 자세한 스탭과 출연진 정보가 든 속지를 보면, (기본적으로 백 밴드와 혼 섹션, 스트링만을 기용한 프롤로그 공연을 예외로 하고) 에필로그 공연에서는 기존 관현악단을 쓰되 인원과 악기를 보강하고 있었다. 2004년에는 없던 바순을 더하고 호른은 2대에서 4대로 증편했으며, 스트링 주자들의 숫자도 늘렸다. 그리고 마지막 'Melody' 에서는 특별히 스케일을 더 크게 하기 위해 호원대 실용음악과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코러스에 보강되었고.
아마 에필로그 공연에 쓰인 장소-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가 2회 공연에서 사용했던 경희대 평화의 전당이나 부산 KBS홀보다는 공간 자체가 크고 가설 무대의 확장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으로 여겨지는데, 대신 전문 공연장이 아니라서 그런지 녹음된 소리는 프롤로그보다는 아무래도 좀 흩어진다는 느낌도 들었다.
'에필로그' 의 콘서트 마무리는 2회 공연 때와 비슷하게 했는데, 우선 'Melody' 를 일단 마친 뒤 김동률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이 같은 곡의 후반부를 연주하며 끝내도록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초반부를 아예 보컬 없이 비워놓는 연출도 시도했는데, 얌전히 듣고만 있던 청중들을 배려한 듯했고. (다만 공연장의 특성 때문인지 청중들의 노랫소리는 좀 산만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는 김동률의 목을 위한 이조 같은 차선책이나 ('에필로그' 의) 공연장 음향 문제 같은 기술상의 난점은 라이브 앨범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지만, 김동률 팬이라면 그런 난점보다는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 자체가 그야말로 계시 그 자체였을 것이다. 특별히 팬 까지는 아니라도, 나도 그랬고. 특히 '거위의 꿈' 과 '고독한 항해', 위에도 언급한 'J's Bar', 'Jump' 등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들었는데, 당분간은 이 앨범이 오디오건 컴퓨터건 휴대용 CDP건 계속 돌아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