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숭인동이나 장안동 일대에서는 중식을 꽤 싸게 팔고 있는 음식점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 쪽 동네의 주민들이나 왕래하는 이들의 소득 수준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할 따름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 싼 가격 대신 뭔가 반비례하는 단점이 분명 있을 거라는 노파심 때문에 쉽사리 발을 들일 엄두를 못내는 경우도 있고.
다만 그런 집들 중에 사회봉사활동과 연계해 운영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마침 어린이날이었지만 이미 해당 사항도 없었고, 그 다음날이면 다시 조기기상-독어공부의 쳇바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던 신세라 개인적으로 위장에 선물이나 줄까나 하는 생각이었고.
찾아가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탈 수 있는 초록버스(2233)가 그 음식점이 있다는 '촬영소사거리' 를 거쳐가기 때문이었는데, 그 근처인 동답초교와 아파트 지역에서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지도를 검색해서 대강의 경로를 파악했다.
하지만 처음 찾아갔을 때-바로 전날인 5월 4일-는 어이없게도 초등학교 이름이 갑자기 가물가물해서, 대충 정류장 이름이 초등학교로 되어 있는 '배봉초등학교' 에서 내려서 한참을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사실 동답초교나 촬영소사거리나 거기서 우회전해서 좀 더 가야 있었는데. lllorz
그런 실패 사례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제대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초등학교 이름과 인근 버스정류장들을 모조리 검색해서 집을 나왔다. 그리고 실수없이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었고;
내가 내린 곳은 촬영소사거리에서 좌회전해 나오는 정류장이었는데, 사실 그 버스 외에 직접 근처 정류소를 거치는 노선이 세 개가 있었다. 다만 그 세 개 모두 집 근처에서 탈 수 없는 버스들이라 이용 대상에는 넣지 않았고. 아무튼 가게에서 지척에 있는 '촬영소사거리/동답초등학교' 정류장과 그 곳을 지나는 버스들의 노선도가 위 짤방.
저 정류소에서 거꾸로 답십리사거리 방향의 고갯길을 오르면, 10미터도 채 안되어 가게 앞에 툭 튀어나온 자판기와 하얀 바탕의 간판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러면 방문 성공.
자판기 오른쪽의 노란색 간판에서 저렴하다는 포스가 물씬 풍겨나왔다. 그리고 오른쪽 창가에 미처 다 담지 못한 문구는, 대충 쓰자면 '음식값은 전액 저소득층 돕기에 쓰이고,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음식점이 아니므로 배달은 하지 않는다' 는 내용이다.
들어갔을 때의 풍경은 음식점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생경했는데, 왼편에는 동대문구의 각 단체나 회사, 개인이 기부한 물품의 바자회 장소와 놀이방, 아동문고 코너가 식탁과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건물 자체도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임시 가건물 형태였다. 음식점의 기능 외에도 저소득층 학생들의 쉼터나 놀이방으로 활용되는 것 같았다.
식탁마다 놓여 있는 코팅된 메뉴 종이. 요리 메뉴보다는 식사 메뉴에 집중하는 가게의 성향을 대번에 파악할 수 있다. 간판 메뉴인 짜장면의 경우 특이하게 '곱배기' 와 '왕곱배기' 두 가지 추가 메뉴가 존재했는데, 그 쪽 중식당들에서 곱배기를 시키면 십중팔구 남긴다는 주위의 경고도 있어서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자신의 폭식 능력(...)을 믿기로 하고 과감히 왕곱배기(3000\)로 주문. 그리고 거기에 (진짜 미친 짓으로 생각되었지만) 물만두(2000\)까지 주문했다. 그렇게 주문해도 겨우 5000원이었고.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학생들이나 아이들이 꽤 많이 드나들고 있었는데, 그 외에는 동네 사람들로 보이는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들어와서 식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테이블은 기본적으로 의자가 비치된 것 외에 창가 쪽의 온돌식 테이블도 있었는데, 대체로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는 못올라가봐서 모르겠지만, 윗층의 난간에는 사회봉사활동을 하러 왔던 유명인사들의 사진과 친필 사인이 담긴 코팅 종이와 신문 스크랩 기사가 잔뜩 붙여져 있었다. 그 외에는 이런저런 물건이나 돈을 기부한 이들과 단체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들도 붙어 있었고. 그리고 다가오는 어버이날을 기념해서인지 대형 카네이션 화환도 눈에 띄었다.
일단 짜장면이 가장 많이, 그리고 빨리 나오는 것 같아서 짜장면부터 받았다. 참고로 이 가게는 주문을 받으면 테이블까지 음식을 갖다주는 일이 없다. 물부터 시작해서 단무지와 양파, 춘장, 수저, 음식까지 자기가 직접 배식구에서 받아다 먹어야 하고, 그릇 치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회봉사를 위해 비영리로 운영하는 곳인 만큼, 인건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책인 듯 싶고.
양이 어떨까 하고 좀 두려운 눈초리로 그릇을 바라봤는데, 생각보다 미칠듯이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비벼보고는 '이 쯤 되면 다먹을 수 있겠군' 이라는 확실한 신념(???)도 생겼고. 한 입 먹어보니 싼게 비지떡이라고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음식에는 개인적인 호불호가 있을 것이고, 진짜 짜장면을 잘하는 곳-이것도 사실 개인적인 편차에 해당하겠지만-에 버금가는 수준이네 어쩌까지고 할 수는 없겠지만, 고기도 꽤 자주 걸리고 너무 짜거나 달달하거나 하지 않은 적당히 간간한 춘장 맛이 꽤 식욕을 자극했다. 무엇보다 가격의 저렴함이 최고 장점일텐데, 일반 중국집 곱배기의 양을 이 가격에 먹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니.
준비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려서, 짜장면을 무서운 스피드로 입에 끌어넣어 2/3 가량을 해치웠을 때 쯤에 받은 물만두. 만두 위에 참기름을 뿌려주는 센스 덕에 고소한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그 때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해서 과연 다 먹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지만, 역시 기우였다. (참고로 간장이나 고춧가루, 식초는 테이블마다 비치되어 있으므로, 따로 가지러갈 필요는 없다.)
물만두 그릇에 담긴 물이나 양파 찍어먹다가 남긴 춘장-참고로 되직하지는 않고 좀 멀건 편이다-을 제외하고는 말끔히 비웠고, 가게의 규칙 대로 먹은 그릇과 수저, 물컵을 배식구와 싱크대에 반납하고 돈을 지불한 뒤 나왔다. 일단 모두 먹어치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다소 부담스럽긴 해서 일부러 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 어느 정도 소화시킨 뒤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가게가 있는 곳에 집이나 직장, 또는 볼일이 없을 때는 굳이 찾아갈 이유를 찾기 힘들겠지만, 입과 위장도 호강시켜주고 가끔은 자선사업에도 동참하고 싶다면 한두 번 쯤은 가도 좋은 가게로 여겨졌다. 다음에는 주위 사람들이 추천했던 고덕역 근처 주양쇼핑의 돈까스를 먹어보고 싶기는 한데, 일단 재정 상태가 좀 안정이 돼야...lll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