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움직이는 지역은 많이 한정되어 있는 편이다. 특히 시의 끄트머리 쪽에는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갈 일이 없는데, 이번에도 '특별한 일' 때문에 가보게 되었다. 장소는 서울의 최동단인 강동구의 명일동.
돈까스 매니아로서는 '이러이러한 집이 맛있더라' 는 소문만 듣고도 솔깃해지는데, 거리가 약간 멀다고 느껴지기는 했지만 어차피 서울 안이고 지하철로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것으로 게임 센터링(?????)이었고. 그렇게 해서 5호선 고덕역 근처의 '주양쇼핑' 이라는 쇼핑몰 지하의 돈까스가게들을 찾아 릴레이를 벌이기로 했다.
고덕역은 종착역인 상일동 바로 전 정거장이고, 출입구 구조도 매우 단순해서 개찰구가 하나 뿐이다. 일단 나와서 왼쪽 출구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주양쇼핑 광고판이 출구 역세권 지도 옆에 붙어 있다. 하지만 이건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데, 초행길인 이에게 훼이크를 먹이기 쉽기 때문이고.
이렇게 4번과 5번 출구를 모두 표기하고 있는데, 초행길인 사람이라면 5번을 택해야 실수를 안하고 갈 수 있다. 괜히 4번 출구 광고판을 믿고 나갔다가는 주양쇼핑이 아닌 E마트를 보고 혼란스러워한 뒤 다시 역으로 돌아오기 십상이고. (나도 그랬다.)
5번 출구로 나온 뒤, 바로 난 길로 우선 걸으면 된다.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2차선 도로인데, 출퇴근 시간대가 아니라 그런지 꽤 한산한 분위기였다. 사진 왼쪽의 상가를 지나칠 즈음부터 하얀 바탕의 큰 빌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바로 예의 주양쇼핑 건물이다.
광고에 나와 있기로는 강동 지역 최대의 쇼핑몰이라고 하는데, E마트가 들어선 뒤로는 어떤지 모르겠다. 어쨌든 GS슈퍼마켓이나 크라제버거 같은 점포들도 입점해 있고, 지금도 명일동이나 고덕동 아파트촌 사람들의 중요한 생필품 구매처로 기능하고 있는 것 같다.
쇼핑몰 안은 성내역 인근의 오래된 아파트 상가와 비슷한 분위기라 향수를 자극했는데, 특히 지하층의 분위기는 더욱 그랬다. 한켠에는 GS슈퍼마켓이 있고, 다른 한 켠에는 재래시장처럼 온갖 형태의 점포들-특히 식품점이나 음식점-이 별다른 칸막이 없이 줄줄이 들어서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돈까스 가게들은 꽤 여러 군데였는데, 특별히 고덕동 거주민으로부터 사전에 받은 정보를 토대로 어디서 먹을 지를 정했다. 정보를 좇아 보니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자마자 보이는 점포들이 눈에 띄었는데, 그 중에 '두리돈까스' 를 첫 점포로 택했다.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지만 요란한 간판도 없고, 천정 위의 파란 표찰 정도가 가게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부엌은 중앙에, 먹는 테이블은 부엌을 중심으로 빙 둘러쳐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벽 쪽에 위치한 점포들은 좀 더 일반 식당의 분위기가 났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구조의 점포에 이상하게 호감이 가고 있고. 조리하는 모습의 생동감을 더 가까이 볼 수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뱅 둘러 쓰는 공간도 대개 두 개 식당이 같이 사용하고 있는데, 공간이 협소하기는 해도 특별한 칸막이 없이 공평하게 나눠쓰고 있었다. 두리돈까스 맞은편에도 스파게티 전문 식당이 영업하고 있었는데, 주방의 경계는 확실했지만 먹는 사람들은 돈까스 쪽 점포에서 스파게티를 먹거나 반대로 먹거나 하고 있어서 특별히 '텃세' 나 '영역 다툼' 은 없는 듯 싶었다.
일단 앉고 나면 테이블 앞에서 재빨리 김치 두 종류-배추김치와 열무김치-와 수프를 내온다. 수프는 소위 '인스턴트 수프' 였는데, 건더기 하나 없는 크림수프는 아니었고 쇠고기수프 스톡으로 만든 것이었다.
수프를 먹은 뒤 주방의 분주한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가 돈까스 접시를 받았다. 돈까스의 크기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세 쪽이 나오고 거기에 밥과 양배추채, 스위트콘 통조림, 마카로니 샐러드, 오이피클과 단무지가 나오는 전형적인 한국식 돈까스 셋팅이었고.
개인적으로는 독극물로 인식하는 오이 때문에 피클과 마카로니 샐러드에는 결국 손을 대지 못했지만, 나머지 메뉴들은 말끔히 먹어치웠다. 특히 돈까스 소스가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은 감칠맛이 특히 그랬다. 그리고 먹어보니 양도 그리 적지는 않았는데, 요구하면 돈까스도 리필해 준다는 말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나머지 점포들 중에 추천받은 곳은 두리돈까스 오른편의 두 군데와 벽 쪽의 한 군데인데, 저마다 독특한 옵션이 있다고 한다. 어느 쪽을 먼저 가던 일단 시간과 돈이 되는 대로 나머지 세 군데도 가볼 예정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