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는 생전에 현대음악의 적극적인 소개자로서 이런저런 논란거리가 되었지만, 현재 녹음으로 들을 수 있는 레퍼토리들의 대부분은 바로크에서 후기 낭만을 포괄하는 독일/오스트리아 계통의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그 자신도 '현대음악을 공연하는 것 보다 베토벤이나 브람스를 제대로 공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고 강조한 바 있는데, 다만 그러한 독어권 음악에 대한 자부심 마저도 그의 바로크 해석에 대한 보편성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후배인 카라얀과 마찬가지로, 푸르트벵글러의 바로크곡 녹음은 너무 큰 편성에 터무니없는 시대착오적 해석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푸르트벵글러는 1932년에 쓴 '바로크 음악의 연주에 대하여' 라는 글에 자신의 바로크관을 밝히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원전 연주나 정격 연주는 현대의 상황에 걸맞지 않는 촌극에 불과하고 수난곡이나 오라토리오 등 대규모 종교곡이나 평균율과 푸가의 기법 등 복잡하고 방대한 작품의 전곡 공연도 당시 관습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인내력만 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항변' 에도 불구하고, 새카만 후배 칼 리히터가 생략이 일체 없는 바흐의 종교곡들을 녹음한 이래 발췌 연주나 녹음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촌극' 정도로 치부되던 원전 연주나 정격 연주가 오히려 바로크/고전음악 연주의 대세가 되어 있고, 현대 악기로 연주하더라도 정격 연주법을 절충할 정도로 주류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정격/원전 연주에 대해 무조건 긍정하고 찬미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구 클래식 음악의 해석과 수용 역사에 대해 비교적 어렵잖게 서술한 와타나베 히로시의 '청중의 탄생' 이나, 그보다 좀 전문적이고 다소 사회학적인 해석이 많기는 하지만 크리스토퍼 스몰의 '뮤지킹, 음악하기' 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아무튼 베토벤 음악처럼 절대적으로 '숭배'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푸르트벵글러의 레퍼토리에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음악은 마찬가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마태수난곡(Matthäus-Passion)' 은 평생에 걸쳐 각지에서 공연했고, 녹음도 남기고 있다.
푸르트벵글러가 바라본 '마태수난곡' 은 지금과 달리 '낭만적인 작품' 이었던 것 같은데, 1953년에 프랑스 언론인 앙리 자통과 가진 인터뷰의 녹음에도 언급되고 있다. 바흐 서거 200주년이었던 1950년에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까지 저 곡을 무대에 올렸는데, 보조 지휘자로 동행한 미하엘 길렌은 푸르트벵글러가 리허설에서 '바흐와 푸치니는 똑같습니다!' 라는 거의 망언 수준의 발언을 단원들에게 하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와 거의 정반대의 음악관을 갖고 있던 길렌조차 그가 만들어낸 음악의 카리스마를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단순한 신파조의 연주는 아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좋지는 않은 음질이나마 남아 있는 녹음들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의 '마태수난곡' 녹음은 모두 세 종류인데, 그의 바로크 음악에 대한 생각과 당시 대부분의 연주 관례와 마찬가지로 전곡 공연은 없었다. 대개 가사의 원본이 된 마태복음에서 큰 기둥이 되는 스토리를 주로 취하고 부가적인 아리아나 레치타티보를 삭제한 형태로 연주했는데, '축약본 전곡 공연'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1. 1950년 4월 29일 (또는 5월 2,6,7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콜론 오페라극장 실황녹음 (닐다 호프만/마르가레테 클로제/안톤 데르모타(복음사가)/안젤로 마티엘로(예수)/요제프 그라인들/콜론 오페라 합창단과 관현악단)
2. 1952년 4월 9일 빈 콘체르트하우스 대강당 실황녹음 (이름가르트 제프리트/힐데 뢰슬-마이단/율리우스 파착(복음사가)/한스 브라운(예수)/오토 비너/빈 징아카데미/빈 소년합창단/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3. 1954년 4월 14-17일 빈 콘체르트하우스 대강당 실황녹음 (엘리자베트 그뤼머/마르가 회프겐/안톤 데르모타(복음사가)/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예수)/오토 에델만/빈 징아카데미/빈 소년합창단/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길렌이 회상한 1번 공연 때의 녹음은 음질이 굉장히 좋지 않고 합창부는 독일어가 아닌 에스파냐어 번역 가사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2번 공연의 녹음도 무슨 사정 때문인지 절반 남짓만 녹음되어 있다고 하고. 두 녹음을 묶은 CD가 아치펠(Archipel)에서 발매된 바 있었는데, 아직 국내 수입은 안된 걸로 알고 있다.
그나마 모든 공연이 녹음되어 있으면서 셋 중 가장 녹음 상태가 양호한 것은 최만년의 세 번째 것인데, 푸르트벵글러의 '마태수난곡' 중 메이저 음반사(EMI)를 통해 정규반이 나온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EMI에서 출반한 음반도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 1995 EMI Records Ltd.
1954년 공연에서 푸르트벵글러가 삭제한 곡은 모두 14곡이었고, 나머지 곡들-특히 레치타티보-도 수난사의 흐름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생략하고 연주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략되어 녹음된 전체 실황 중에서 두 곡은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결함이 있어서 복각 과정에서 제외되었다고 표기되어 있다.
EMI가 복각의 난점을 들어 제외시킨 곡은 푸르트벵글러가 공연에 사용한 바흐 구전집 악보의 분류 기준으로 65-66번에 해당되는데, 베이스 독창의 레치타티보(Ja! freilich will in uns das Fleisch und Blut)와 아리아(Komm, süßes Kreuz, so will ich sagen)가 해당된다.
하지만 문제는, EMI가 누락시킨 두 곡을 넣은 비정규반들이 훨씬 전에 출반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일본의 극렬 푸르트벵글러 팬들이 이러한 음반들을 입수해 시험 청취한 결과, EMI가 복각에서 뺄 정도로 심각한 결함은 없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그가 남긴 모든 녹음을 종류별로만 모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 더군다나 무신론자인 내게 곡 자체가 그렇게까지 깊은 감동을 주지는 못했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회현 지하상가의 중고음반점을 돌다가 문제의 비정규반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발견했는데, 그 때까지는 이렇게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해서 그냥 넘어갔다.
다음날 가지고 있던 EMI CD의 속지를 들고 다시 같은 곳을 찾아갔는데, 구전집 분류에 따라 곡별로 트랙이 세분화되어 있던 EMI의 것과 가사가 통째로 수록되어 있던 비정규반의 것을 일일이 대조해 보고 직접 들어보았다. 결국 그 비정규반도 EMI가 누락한 두 곡을 온전히 수록한 것임을 최종적으로 확인했고, 18000원이라는 가격으로 질렀다(참고로 CD 세 장짜리 세트였다. EMI는 두 장).
ⓟ 1988 OBC Inc.
비정규반은 '프라이스리스(Price-Les$)' 라는 이름의 레이블로 1988년에 나온 것이었는데, 발매 시기가 CD 초기에 속한 것도 있고 복각 기술도 EMI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퀄리티였다. 특히 음질이 흐릿하고 애매한 편인데, 음질 외에도 다른 결점이 하나 더 있었다.
EMI반에는 아무 문제없이 수록되어 있던 64번 곡인 복음사가(Evangelist)의 레치타티보(Und da sie ihn verspottet hatten)가 여기서는 거꾸로 누락되어 있었던 것인데, 결국 푸르트벵글러의 1954년 마태 실황을 온전히 갖추고 있으려면 EMI의 세트와 그 외 비정규반 세트 두 가지를 모두 갖춰야 하는 꼴이 된 셈이다.
(*프라이스리스 외에, 밑에 언급할 일본 사가반을 제외한 다른 비정규반들도 모두 64번 곡을 생략했다고 한다. EMI의 복각에는 4일 동안의 연속 공연 중 첫 날의 실황을 녹음한 테이프가 쓰였다고 여겨지는데, 다른 날의 실황 테이프들에는 문제가 된 65-66번곡 부분에 하자가 없어서 비정규반 제작에 섞여 사용되었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물론 양 쪽에서 누락시킨 부분을 모두 수록한 사가반이 일본에서 몇 년전 발매된 바 있다고 하지만, 지금 환율이나 경제 상황으로 봤을 때 지를 가능성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음질 차이는 있을 망정 이런 식으로 이미 '완전판' 을 확보한 내게는 더더욱 해당 사항이 없고.
비정규반을 사온 뒤 EMI의 전곡과 거기에서 누락된 두 곡의 비정규반 녹음을 WAV로 떠서 합쳐 CD에 구워서 듣고 있는데, 65-66번 곡을 전후해 두 음반의 복각차가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자니 CD 두 장에 담기는 불가능해서, 마태의 맨 마지막 코랄(Wir setzen uns mit Tränen nieder)을 세 번째 CD에 떼어넣고 여백에 푸르트벵글러의 다른 바흐 녹음들-1950년 잘츠부르크에서 빈 필과 공연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과 5번과 1948년 베를린에서 방송녹음한 관현악 모음곡 3번-을 커플링한 나만의 세트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현존하는 푸르트벵글러의 바흐 녹음을 종류별로 다 담은 세트를 만든 셈인데, 이런 생각을 하는 복각 음반사나 업자들은 아직 없는 것 같고. 그리고 이미 푸르트벵글러 사후 50주년이 지난 상황이라 저작권으로 옭아맬 건덕지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