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자국 작곡가의 작품이 든 음반을 시중에서 어렵잖게 구할 수 있는데, 물론 대부분은 일본인 연주자들에 의한 녹음이 다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다케미츠 도루 같은 세계적인 대가들의 경우에는 해외 악단에 의한 공연이나 녹음도 활발해서, 도이체 그라모폰이나 필립스 등 메이저 레이블의 앨범으로도 구할 수 있고.
해외 음반사들의 일본 지사에서 로컬반으로 기획해서 녹음하고 출반한 것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아르코예술정보관 자료실에서 꽤 흠많무인 물건 하나를 발견해서 빌려들었다;
단 이쿠마(團伊玖磨, 1924-2001)는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작곡가로 꼽히는데, 특히 1952년에 일본 민화 '유즈루(저녁 두루미)' 를 소재로 작곡한 오페라는 1989년까지 무려 540회나 상연되어 일본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았다.
오페라 외에도 가곡에서 교향곡까지 거의 모든 장르에 손을 대고 영화음악이나 극음악에도 재능을 보였다고 하는데, 그 중에 일본 폴리그램에서 CD 네 장 세트로 교향곡 전집을 발매한 것이 빌려들은 물건이었다.
다만 진짜 놀란 것은, 저 세트의 녹음에 기용된 악단이었다. 다름 아닌 오스트리아의 빈 교향악단(Wiener Symphoniker)이 연주를 맡았는데, 내가 아는 한 일본 작곡가의 교향곡을 한두 곡도 아니고 전집으로 완성한 음반 중에 유일하게 해외 유명 악단이 기용된 사례였다.
단은 1950년부터 1985년까지 여섯 곡의 번호 붙은 교향곡을 발표했는데-1954년 작품인 '부를레스케풍 교향곡' 은 작곡자가 교향곡으로 인정하지 않았음-, 이후 일곱 번째 교향곡인 '쟈슈몬' 을 구상했지만 2001년에 단이 중국 방문 중 심부전으로 타계하면서 미완성이 되었다. (이후 보완되어 재연되었다는 소식도 없음)
교향곡 제 1번 A조 (1950. 단악장)
교향곡 제 2번 B플랫조 (1956. 3악장)
교향곡 제 3번 (1960. 2악장)
교향곡 제 4번 (1964. 4악장)
교향곡 제 5번 (1965. 3악장)
교향곡 제 6번 '히로시마' (1985. 3악장)
초기의 두 곡은 조성 논리를 따르고 있지만, 특별히 장조나 단조로 표기하지 않은 것에서 보듯 스트라빈스키나 힌데미트, 버르토크 같이 근대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이어지는 곡들은 더욱 무조성의 성격을 띄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전위적이고 무조는 아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중심 조성이 없지만 조성감은 유지하고 있는 칼 닐센의 중기 이후 교향곡들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여섯 곡 모두 기본적으로 3관 편성의 정규 대관현악 편제로 쓰여져 있는데, 5번까지는 순수 기악곡 형태를 유지하다가 6번에서 소프라노 독창과 일본 전통 관악기들인 노칸(能管), 시노부에(篠笛)를 추가하고 있다. (독창은 3악장에서만 참가하고, 가사로는 영국 시인인 에드먼드 블론든의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들에게 바친 추도시를 택함)
*다만, 개인적으로는 일본인들이 '원폭' 이라는 단어에 갖는 공포감이나 그것을 가지고 주장하는 '평화' 를 결코 좋게만 봐줄 수 없다는 것을 부언해 둔다. 하물며 독일에서도 나치 잔재의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통에, 일본에서는 지금도 기득권층들이 수시로 '우리는 피해자일 뿐이다' 라느니 '난징대학살과 종군위안부는 없었다' 느니 하며 입에서 똥내음을 풀풀 풍기고 다니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고.
우선 초기작 두 곡인 1번과 2번의 녹음이 1988년 6월 27일부터 7월 2일까지 제작되었는데, 이 때 지휘는 일본 지휘계의 노장이었던 야마다 가즈오(山田一雄)가 맡았다. 녹음 장소로는 빈 콘체르트하우스 대강당이 선정되었고, 제작진은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섭외한 세 명-프로듀서 쿠르트 라프와 엔지니어들인 오스발트 그리츄, 알프레트 시틀러-에 기획을 겸한 일본인 프로듀서인 안도 겐지까지 네 명이 참가했다.
나머지 네 곡은 작곡자인 단 이쿠마 자신의 지휘로 다음 해인 1989년에 모두 녹음됐는데, 우선 1월 4-7일 동안 4번과 5번이 녹음되었다. 그리고 6월 29일과 7월 2일 사이에 남은 곡들인 3번과 6번이 녹음되어 전집 녹음 작업이 완료되었다. (녹음 장소와 제작진은 1988년 선녹음 때와 동일함. 6번 녹음 때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소프라노 가수인 안나 푸사르와 초연 때도 참가했던 노칸/시노부에 주자 아카오 미치코가 추가 기용됨)
이렇게 해서 모인 녹음들은 1989년 후반에 일본 폴리그램에서 로컬반으로 출반되었는데, 다만 녹음의 저작권은 영국 데카 본사가 가지는 것으로 계약되었다. 일본에서도 이 기획은 꽤 화제였던 것 같은데, 두툼한 박스에 CD와 함께 동봉된 속지는-쿠르트 라프의 독일어 기고문을 제외하면 거의 다 일본어이긴 하지만-단 이쿠마의 약력과 연표, 연주자/단체 프로필, 단의 음악 성향, 각 곡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 주변인들의 단에 대한 인상, 프로듀서 안도의 녹음 후기, 단이 직접 빈 체류 기간 동안의 경험을 쓴 짤막한 에세이 등을 빼곡히 수록하고 있다.
ⓟ 1989 The Decca Record Co., Ltd.
전집은 1989년의 초판 발매 후, 단 타계 직후인 2001년에 일본 유니버설 뮤직에서 추모반 형태로 재판되었다고 한다(다만 추가로 수록된 곡이나 특전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음). 다만 이것도 일본 로컬반이었고, 아직까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발매는 없는 듯하다.
이 이후에도 일본 작곡가들의 음반 발매는 물론 계속됐는데, 가장 최근에는 낙소스를 통한 '일본작곡가선집' 이 20여 장이나 연달아 발매되면서 화제가 된 바 있었고. 다만 그랬던 일본도 요즘에는 세계적인 경제 침체와 음반 매상의 급감 등의 이유 때문인지, 당초 50여 장의 앨범을 목표로 한 저 계획을 잠정 동결시킨 상태다.
아무튼 음반이 발매가 한 번 되었고, 그것이 한국 땅에까지 들어왔다는 증거는 어디엔가 같은 세트가 돌고 있을 거라는 추측도 들게 한다. 다만 아직도 한국에서 일본 클래식 작곡가 하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게 현실인 이상, 중고 시장에서라도 이 세트를 구한다는 것은 초고난도 미션일 듯. lll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