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에 마침내 초급 과정인 아(A)의 네 단계 수업을 모두 듣고 수료증을 받았다.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니고, 그 다음 중급 과정인 베(B)를 연이어 들으면서 슬슬 유학에 꼭 필요한 어학 시험인 테스트 다프(Test DAF)도 준비해야 되니.
아무튼 그 수업이 인연이 되어 두 차례의 회식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것에 대한 짧은 회고;
내가 들었던 아 츠바이 츠바이(A2.2) 초집중강좌 수업은 두 사람의 강사가 진행했다. 한 사람은 베를린 출신의 교포 강사였고, 또 한 사람은 드레스덴 출신의 독일인 강사였고. 부득이 두 사람의 강사가 나눠 진행한 이유는 교포 강사분이 연수를 위해 독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송별회를 겸해 6월 12일에 수업 끝나고 회식 자리가 마련되었다. 장소는 강남 모처의 '쿤스트할레'. 독일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예술회관' 정도가 되겠는데, 공연장 용도로만 쓰이는 곳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외관이 무척 독특했다.
컨테이너 박스들을 층층이 쌓아올리고 몇 군데는 갤러리나 회의, 공연 공간으로 개장한, 한국 관점에서는 꽤 아방가르드 스타일인 건물이었다. 1층에서는 바와 카페테리아를 겸하는 큰 공간을 중심으로 비보이 공연 등이 진행되는 공간과 현대미술 작가들의 오브제 등이 전시된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아래 짤방이 건물 입구와 그 안의 카페테리아 모습이다.
굳이 독일어 이름을 쓴 곳답게 카페테리아 메뉴 중에서도 소시지인 커리부어스트(Currywurst)와 독일식 돈까스인 슈니첼(Schnitzel)이 있었다. 다만 강남 답게 가격이 꽤 센 편이었는데, 돈없는 십덕은 그저 7000원짜리 커리부어스트로 만족하기로 했다.
커리부어스트는 수업 듣다가 교재에 헤르베르트 그뢰네마이어라는 독일 유명 가수의 노래가 나와 있어서, 그걸 듣고 굉장히 재미있었던 기억 때문에 고른 메뉴이기도 했다. 노래 내용은 대충 해석하면 만취한 청년이 해장용으로 커리부어스트를 먹다가 옷에 흘리는 바람에, 엄마한테 혼나지 않으려고 친구 등 뒤에 숨어 몰래 집에 들어가려 한다는 내용이고.
독일에서는 무척 흔한 소시지라 길거리 가판 음식점들인 임비스(Imbiß)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원조 도시는 베를린이라고 하고. 구운 소시지에 토마토 케첩을 듬뿍 뿌리고 그 위에 카레 가루를 솔솔 뿌려서 내놓는데, 독일인들은 맵다고들 하지만 고추와 마늘 등 향신료에 단련된 한국이나 동남아인들에게는 애들 장난 수준이라고들 하고.
그렇게 해서 나온 음식. 빵 두 쪽이 같이 나왔고, 곁들이로 오이에 요구르트 소스 친 것이 나왔지만 서빙된 즉시 옆사람에게 주고 버로우했다. Ich hasse Gurke!!! (←난 오이 싫어해요!!!) lllorz
그리고 사진 찍은 후이기는 했지만, 독어 강사분이 슈니첼 약 반 쪽을 썰어 주신 덕에 두 가지를 다 맛볼 수 있었다. 독일 현지의 음식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는 모르지만, 내 입에는 잘 맞았고. 다만 소스친 한국식 돈까스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그냥 튀긴 고기와 레몬만 서빙되는 슈니첼이 다소 싱거울 수 있을 것 같고, 커리부어스트도 맵지는 않지만 카레가루의 자극성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한국인 강사가 독일로 떠난 뒤의 수업은 원어민이 맡았는데, 불행히도(???)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분이었다. 하지만 그 간의 수업 내공으로 약력을 들어 보니 아직 동서독 분단 시절에 태어났고, 이후 러시아인 남편과 결혼해 싱가포르로 이주한 뒤 그 곳에서 독일어 강사를 하다가 불과 몇달 전에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나머지 1주 반 가량의 수업이 끝난 6월 24일에는 쫑파티 겸으로 해서 한 차례 더 회식이 있었다. 우리가 계획을 설명하자 강사분도 '나는 케이크를 구워 오겠어요' 라고 해서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고. 독일인들도 영국인 만큼은 아니지만 티타임을 꽤 챙긴다고 하는데, 그래서 독일인이 만드는 케이크는 어떤 맛일지 단거홀릭으로서 많이 기대하고 있었다.
마지막 수업날 쉬는 시간에 개봉된 강사분의 케이크. 초콜릿 케이크(독일어로는 Schokokuchen 정도 되겠다)였는데, 특별히 크림 같은 것을 발라 장식하지 않은 검소함이 돋보였다. 다만 새콤달콤한 과일맛 아이싱 부스러기가 인상적이었고.
인원수에 맞게 자른 케이크. 겉모양은 충분히 봤으니, 맛을 봐야 할 시간이었다. 독일 갔다온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독일 음식은 기름진거, 짠거, 단거 세 가지가 너무 극단적이다' 라고들 했는데, 그래서 살짝 걱정이 들기도 했고.
하지만 먹어보니 미칠듯이 단 맛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오히려 초콜릿의 쌉쌀한 맛이 좀 더 강해서 꽤 어른 취향의 케이크였는데, 생각같아서야 몇 조각이고 먹고 싶었지만 다른 학생들도 있어서 본능 억제.
그리고 학생들은 십시일반해서 근처 피자 체인점을 통해 피자 세 종류를 배달시켰다. 다만 강사분의 경우,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페스코(pesco) 타입의 식성이라 특별히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파인애플 피자 한 판을 추가로 시켰다.
*페스코의 경우, 다른 채식주의자들과 달리 달걀과 우유, 벌꿀도 먹고 생선 등 해산물도 먹는다고 한다. 다만 고기 종류는 일체 먹지 않는 것이 차이점이고. 마라톤으로 수십 킬로그램의 살을 빼 유명했던 전직 독일 외무장관 요슈카 피셔도 다이어트를 위해 잠시 페스코가 되었다고 하는데, 최근에 몸이 다시 불기 시작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고.
이렇게 먹고 즐기는 동안 아직은 되도 안되는 실력이기는 하지만 독일어로 계속 강사분과 대화할 수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선물받은 김홍도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설명하면서 한국 교육계의 체벌과 관련된 정보 등의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4개월 전의 나였다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매주 월~금 5일 동안 무척이나 빠른 속도와 빠듯한 양으로 악명높은 초집중강좌 수업을 세 번 연속으로 들어보니 꽤나 힘들었는데, 그나마 이렇게 중간중간의 이벤트들 덕에 조금씩 기분전환해가며 무사히 각 과정들을 끝마칠 수 있었다. 다만 중급 과정의 경우 훨씬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반 개설 숫자도 초급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편이다.
아무튼 독일 가서 현지인들로부터 무시받지 않고, 일상에서 충분히 소통 가능한 상태로 유학을 가야 하니 앞으로도 계속 강좌를 신청해 들을 예정이다. 다만 시험 준비의 경우 사설학원과 병행해서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쩌면 단기간 독일 어학연수도 가야 할 것 같고. 머리가 굳고 난 뒤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