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더불어 퍼붓는 비만큼 짜증나는 것도 없는데, 우산을 써봤자 소용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에 퍼붓던 그런 폭우에 옷과 신발, 가방까지 두 번이나 흠뻑 적신 뒤 오늘(토요일)도 많은 양의 비가 예상된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일단 우산을 챙기고 혹시 모르는 일에 대비해 가방을 덮을 정도가 되는 큰 비닐봉지를 챙겨넣고 집을 나섰다.
나오자마자 보인 하늘 모습부터가 심상치 않았는데, 뭔가 잔뜩 퍼부을 듯한 기세였고. 하지만 당장에 그러지는 않았다.
SETEC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10분. 정식 입장 시간까지는 20분이나 더 남은 상태였지만 이상하게 벌써부터 사람들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입장 시간이 당겨졌을 리는 없었고, 아마 기상 상태가 매우 안좋았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 미리 들여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코믹월드의 '전시장 내 대기 행렬' 을 체험했는데, 무대 행사장으로 쓰는 2관에 관람객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1관과 3관을 동시에 쓰기 때문인지, 각 관 방향으로 크게 두 공간을 할애해 대기시키고 있었고. 에어컨이 작동하고는 있었지만, 튼지 얼마 안된 듯했고 사람들의 열기와 습한 날씨 때문에 무척 더웠다.
30분이 되자 1관과 3관의 입장이 허용됐는데, 예전에 일찍 가본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부스를 가능한한 천천히 돌아봤다(아직 디스플레이를 설치하거나 판매 물품이 든 택배 상자를 뜯고 있는 부스들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관람객은 예상보다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날씨 때문인 듯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뭘 지를지 조사한 목록을 외우고 갔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일단 방향이 그랬던 탓에 3관에 우선 들어가서 망르 화백의 부스 'SORAMIMI(I39)' 에서 하츠네 미쿠 러프북 'Project Viva!!!(2000\)' 를 구입했는데,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조사했던 목록은 예상치 못한 두 부스의 참가에 가볍게 무효화돼 버렸는데, 차근차근 돌아보자는 생각으로 들어간 1관에서 Tiv 화백의 부스 'Tetramoon(A06)' 이 눈에 띄었다. 일본에서 만화를 연재하느라 동인 활동이 몇 달째 정체 상태였기 때문에 아예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제대로 뒷통수를 맞은 셈이었고.
그래서 예정에 없던 일러스트북 'Tetramoon vol.5(4000\)' 을 구입했다. 가방 외에도 우산과 빵봉지 등 손에 든 짐이 많은 편이라 같이 받은 브로마이드가 신경쓰였는데, 결국 가져간 부직포 가방을 꺼내 대충 둘둘 말아 집어넣고 다녔다. 이어 선입금 예약했던 케이온 합동일러스트북 'K-AN(10000\)' 을 동명 부스(A41/42)에서 인수받았다.
그 다음으로 두 번째 카가미네 남매 회지를 낸다던 cocoon 화백의 '포니테일(C08/09)' 에 가봤는데, 이상하게 판매 물품에 보이지 않아서 물어보니 '펑크' 라고 했다. 미리 예약하기는 했지만 회지 제작 사항을 주기적으로 체크하지 못했는데, 집에 와서 해당 작가의 블로그를 확인해 보니 펑크 공지가 떠 있었고. lllorz 아무튼 사과와 함께 8월에는 꼭 나올거라는 답변을 받았다. 위에 언급했던 'K-AN' 의 작업에도 참가한 작가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이후 지른 것들도 케이온 관련 물품이 주종을 이루었다. '활극 B & S(E16/17)' 에서 구입한 트윈북 '삐리리~불어봐, 경음부!!(LM 화백X휴마노 화백+nyame 화백 합동지. 3500\)', 'Black Market(G21)' 에서 구입한 회지 '동인-온!(elover 화백+peia 화백 합동지. 3500\)' 두 권도 그랬고.
1관에서 충분히 '관광당했다는 느낌(?????)' 을 만끽한 뒤 3관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여기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부스의 참가 때문에 추가 자금을 털리는 상황을 경험해야 했고. 우선 또다른 선입금 예약 품목이었던 'Project Motif(K14/15)' 의 두 번째 합동일러스트북 'Lesson(6000\)' 을 인수받았다. 지금도 활발한 동인활동중인 작가들 외에 학업이나 생업 등으로 좀처럼 부스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작가들의 그림을 볼 수 있는 품목이었고.
예상치 못한 부스란 '이터널 필드(I30/31)' 였는데, 동시 진행하던 럭키☆스타와 하루히 패러디북의 최종권들이 나와 있었다(두 개 모두 4권에서 종료됨). 잠시 고민하다가 두 권 모두 구입했는데(3000X2=6000\), 다음 달에 새롭게 '변화 많은 그림체의' 케이온과 하루히 패러디북을 준비한다고 되어 있었다. 카피앤페이스트 기법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의식해서였을까?
일단 이렇게 해서 예상했던, 아니면 그렇지 못했건 쇼핑을 마쳤다. 하지만 지인들에게 돌리기 위해 준비한 빵봉지는 여전히 가득 찬 상태였기 때문에, 누구에게 줄까 고민하다가 다시 '포니테일' 에 갔다. 거기서 독일어 공부하는데 유용하게 쓸거라는 '자기정당화' 하에 코코로★키세키 일러스트로 표지가 장식된 무선노트(2000\. 6월에 이미 구입했지만, 소장한다는 취지였음)를 구입하고 빵봉지를 건네 하나씩 골라줄 것을 부탁했다. 메론빵을 선택한 화백은 츤데레 애호가일까 텐넨보케 애호가일까나...
그리고 남은 빵을 공급하기 위해 단골 부스인 로리꾼 화백의 'Cat of Fish(H01)' 로 향했다. 블로그에 적혀있던 대로 이노무시키 화백과 만든 케이온 트윈지 'Lonely Stars(2500\)'가 나와 있었는데, 예전에도 그랬듯이 빵과 캔음료를 공물로 바치고(???) 공짜로 얻을 수 있었다. 8월 발매 예정이라는 현시연 합동앤솔로지북 홍보용 엽서의 배포도 하고 있었는데, 끊임없이 '쿠치키X쿠가야마' 스토리를 주문했지만 묵살당했다.
그 동안 바깥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아보였다. 폭우가 퍼붓다가도 잦아들고, 다시 폭우가 오는 상황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좀처럼 나갈 생각도 없어서 그냥 부스 옆에서 '뽀개면서'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4시까지 있었는데, 로리꾼 화백이 끊임없이 머리를 쓰다듬는 '자기방어술' 을 실습중이던 한 여성 화백도 만날 수 있었고. (참고로 그 여성 화백도 메론빵을 택했다.)
지금까지 그 정도로 오랫동안 회장 내에 머문 적은 없었는데, 밖으로 나설 즈음 위의 여성 화백이 카드가 든 지갑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다시 들어가 찾는 소동이 있었지만 다행히 분실물 보관 데스크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그때 쯤에는 비도 다 그쳐 있었고 땅도 말라가는 시점이었다. Gott sei Dank!(독어: 다행이군!)
로리꾼 화백은 같이 작업한 이노무시키 화백과 마키노차야 종로점에서 회식을 즐긴다고 했지만, 돈도 없고 독어 숙제도 남아있는 늙다리 십덕은 약수역에서 8월 서코를 기약하며 내려 집으로 향했다. 흠, 광복절이라...
*6월 서코도 물론 갔지만, 일부러 후기를 쓰지 않았다. 그다지 지른 물품도 없었을 뿐더러, 현충일에까지 여전하던 행사장 밖의 문제점들-대부분 코스어와 노점상들로 야기된-이 계속 눈에 밟혔기 때문에 그랬고. 그리고 동인계에서 내가 경멸하거나 심지어 맹렬한 증오를 품고 있는 이들이 조금씩 눈에 띄고 있는 상황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8월에도 아마 그럴 것 같은데, 일단 상황과 내 기분을 봐야겠지.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8월 서코보다는 최초로 SETEC을 대관해 양일 진행한다는 서플이 기대되고 있다. 적어도 지를 품목 하나는 확보해 놓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