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는 흔히 20년 가량 후배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많이 묶여서 도매금으로 취급당하는 일이 많았는데, 지겹게 지껄여대진 구도는 '토스카니니는 주지적이고 푸르트벵글러는 주정적이다' 였고. 그리고 음악 외에도 한 사람은 극우 독재정권에 반기를 들고 미국으로 옮겨간 행적으로 찬양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국의 예술을 지키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독재정권이 지배하던 나라에서 머물었다가 비난받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예술과 인생을 단칼에 갈라 이야기할 수 있다면 편할 지 모르겠지만, 예상 외로 두 사람의 예술 표현 방식은 많이 닮아 있다. 이를 날카롭게 지적한 이가 최근 푸르트벵글러 평전을 발간한 헤르베르트 하프너였는데, 실제로 그렇게 '주지적' 이라던 토스카니니가 악보에 벗어나는 첨삭-예로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 코다의 팀파니 추가-을 종종 행한 것은 굉장한 모순으로 보였기 때문에 더더욱 설득력있는 주장이었다.
하프너의 견해를 압축시키자면,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는 둘 다 음악을 바라보는 직관적인 감이 뛰어났고 카리스마로 가득찬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연주할 곡에 대해 철저한 악보 분석을 통해 접근했으며-그렇게 '주정적' 이라던 푸르트벵글러도 지휘 활동 중반기에 유명한 음악이론가인 하인리히 셴커에게 음악 분석을 집중적으로 배운 바 있다-, 동시대 작품들에 대한 적극적인 소개자였다.
다만 두 사람의 음악이 꽤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아마 성장 배경과 음악 입문 과정의 차이점에 있다고들 하는데, 푸르트벵글러가 자신을 '작곡하는 지휘자' 라고 계속 강조할 정도로 작곡 활동에 열의를 보인 반면 토스카니니는 이런저런 기악 소품 외에는 작곡한 것이 남아있지 않다.
대신 토스카니니는 실내악 작품들을 관현악용으로, 혹은 현악 합주용으로 확대 편성해 연주하는 것에 꽤 관심을 보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작업들이 후반기에 방송용으로, 혹은 상업용 음반을 위해 만든 녹음으로 남아 있고. (다만 많은 숫자는 아니다.)
토스카니니의 실내악 편작품들 가운데 온전하게 전악장이 녹음된 곡들은 두 곡인데,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초기작인 7중주(원곡 편성은 클라리넷-호른-바순-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와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의 현악 8중주(원곡 편성은 바이올린 4-비올라 2-첼로 2)다.
베토벤의 7중주는 작곡가 생전에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곡들 중 하나였다는데, 심지어 후기 현악 4중주보다도 더 연주 빈도가 높아 오히려 베토벤 자신이 짜증을 냈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교향곡 1번에서 고전 대가들의 어법을 모방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점차 내기 시작한 것과는 달리, 당대의 여흥 음악들인 세레나데나 디베르티멘토의 구조와 어법을 상당히 '온순하게' 따라가고 있다.
토스카니니는 이 곡의 악보를 파르마 음악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구입해 익혔다고 하는데, 평생동안 애호한 실내악 작품 중 하나로 손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원곡의 편성에 대해 '현과 관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고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는데, 이는 이 곡이 단순한 실내악이 아닌 관현악용으로 연주해야 더 곡이 살아난다는 주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1939년에 현악부를 확대 편성해 처음 공연했는데, 다만 관악기들이 모두 종류별로 한 대씩인 것을 감안해 풀 스트링을 쓰지는 않았고 바이올린 12-비올라 10-첼로 8-콘트라베이스 5의 규모로 연주하도록 했다고 한다. 토스카니니는 이 곡을 그의 마지막 수족이었던 NBC 교향악단과 주로 공연했는데, 전곡 녹음도 1939년와 1951년에 두 차례 남겼다.
ⓟ 1992 BMG Music
내가 들어본 것은 1951년 11월 26일에 카네기홀에서 RCA 음반을 위해 만든 녹음인데, 현악 편성을 늘린 것 치고는 곡상이 너무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다만 원곡이 가진 여흥 음악의 성격은 다소 숨어있다는 인상이었는데, 특히 미뉴에트와 스케르초 악장들에서 그런 느낌이 강하다. 너무 조이는 스타일의 지휘자 밑에서 연주하느라 그랬는지 어쨌는지.
멘델스존의 8중주는 대규모 현악 실내악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예에 속할텐데, 10대 소년 시절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연주하기가 결코 쉬운 곡은 아니다. 작년에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뉴욕 필과 윤이상관현악단의 현악 파트 수석 주자들이 함께 연주한 곡이기도 했는데, 그 때도 발췌 공연을 하려다가 서로 '삘받아서' 1-3-2-4악장 순으로 결국 전곡을 연주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꽤 난이도가 높은 곡을 현악 합주용으로 공연하고 녹음하는 시도가 그리 흔하지 않은 것도 당연한데, 있다고 하더라도 대개 전형적인 멘델스존식 스케르초 악장인 3악장만을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토스카니니와 마찬가지로 현악 주자 출신 지휘자들인 존 바비롤리나 샤를 뮌슈 등도 3악장만 공연하고 녹음했다.) 하지만 미국 최고의 연주자들만 모아 만들었다는 NBC향을 거느렸던 토스카니니는 이 곡의 전곡 공연까지 시도했다.
ⓟ 1992 BMG Music
1947년 3월 30일에 뉴욕의 8-H 스튜디오에서 라디오 방송용으로 공연한 것이었는데, 이 때 만들어진 녹음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다만 베토벤 7중주와 달리 테이프가 아닌 래커 또는 아세테이트 디스크에 녹음된 것 같은데, RCA의 토스카니니 전집 CD에서 약하게 지글대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봐서 맞는 것 같다.
토스카니니는 이 곡에서도 텍스처의 변질을 우려했는지 그리 큰 규모의 현악 합주를 쓰지는 않은 것 같은데, 특히 원보에는 없는 콘트라베이스의 경우 포르테 악구나 곡의 중요한 클라이맥스 등을 제외하고는 첨삭을 많이 자제하고 있다. 해석의 기조는 베토벤에서와 마찬가지로 너무 무겁지 않은 음향과 시원시원한 템포로 잡고 있는데, 다만 이 녹음에서는 너무 건조하고 딱딱하게 들린다.
왜 사람들이 8-H 스튜디오에서 만든 녹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지 알만한데, 저 스튜디오는 애당초 클래식 음악 녹음용으로 지어진 시설이 아니라서 계속 음향 문제가 지적된 바 있었다. 하다못해 토스카니니 자신마저도 계속 짜증을 냈다고 하는데, 토스카니니의 해석이 이지적이고 엄격하다는 이미지는 아마 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많은 후기 녹음들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불평해 봤자 소용없는데, 이 녹음이 토스카니니 지휘의 멘델스존 8중주로서는 유일한 전곡 녹음이기 때문이다. 실제 공연으로도 이것이 단 한 번의 전곡 연주라고 하는데, 이외에는 1945년에 3악장만 공연한 녹음 밖에 없다고 한다.
토스카니니는 이외에도 베토벤의 마지막 완성작이기도 한 현악 4중주 16번과 생전에 친교를 맺었던 베르디의 현악 4중주도 현악 합주로 확대 편성해 공연했는데, 다만 이 두 곡은 전곡이 아니라 발췌 공연-베토벤의 경우 2/3악장, 베르디는 3/4악장-만 했다고 한다. (토스카니니 사후 베토벤은 번스타인에 의해, 베르디는 프레빈과 여타 지휘자들에 의해 전곡이 녹음됨)
이외에도 지휘자들이 실내악 작품들을 확대 편성해 공연한 사례를 더 찾아볼 수 있는데, 일부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개중에는 레어 애청곡선 시리즈에서 이미 다룬 것도 있음);
1. 구스타프 말러
루드비히 반 베토벤: 현악 4중주 제 11번 '세리오소'
프란츠 슈베르트: 현악 4중주 제 14번 '죽음과 소녀'
2. 펠릭스 바인가르트너
루드비히 반 베토벤: 대 푸가
3. 조지 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현악 4중주 제 1번 '나의 생애로부터' (이 경우는 아예 관악기와 타악기까지 갖춰진 정규 관현악용 편곡임)
4.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루드비히 반 베토벤: 현악 4중주 제 14번
5. 고노에 히데마로
프란츠 슈베르트: 현악 5중주
6. 존 바비롤리
아놀드 박스: 오보에 5중주
7. 한스 슈타들마이어
안톤 브루크너: 현악 5중주
8. 루돌프 바르샤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제 1, 3, 4, 8, 10번 (3번은 목관악기를 추가 편성한 편곡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