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던진 질문이었다. 이미 몇 년전-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때 나는 군 복무 중이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같은 날 개최한 행사에서 개념을 날려버린건지 뇌용량이 부족한건지, 몇몇 용자 코스어들의 행동거지로 인해 행사의 이미지 뿐 아니라 한국 동인계의 이미지 모두를 실추시킨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코믹월드는 광복절을 비롯해 현충일이나 삼일절 등 꽤나 예민한 날에 걸치는 식으로 행사 일정을 잡아오는 관례를 거의 버리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나 자신도 기분이 좋지 않아 6월 서코에 갔으면서도 일부러 후기를 쓰지 않았었고. 그리고 어쩌면 현충일 보다도 더 '자극적이었을' 광복절 행사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찾아갔다.
코믹월드 측의 강한 의지 표명 때문이었으려나, 아니면 코스어들의 자각이 이루어져서였을까. 행사장 안은 물론이고 바깥에서도 코스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허무함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풍경이 너무나도 편안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느껴졌다. 물론 이렇게 민폐의 온상인 수많은 무개념 코스어들에 대한 통제 조치도, 코믹월드 측에서 이렇게 민감한 날을 피해 행사 일정을 잡아야 한다는 분명한 전제 조건 하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고.
특이하게도 SETEC의 세 관 모두를 판매용으로 사용한 토요일 행사였는데, 2관에서는 판매 부스를 배치한 것 외에도 역대 코믹월드 카탈로그의 커버 일러스트나 수상 동인지들과 일부 샘플 공개 코너, 위탁 동인지 판매 코너 등이 갖춰져 이채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2관까지 사용했음에도 역시 방학 시즌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숫자 때문에 쾌적함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SETEC의 에어컨을 최대치로 가동해도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곳 정도가 좀 시원했을 뿐이었고, 가뜩이나 설사끼 가득한 몸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돌아다니는 것 자체도 힘들었고.
아무튼 이번에도 철저한 계획을 세워 지름에 임했고, 대부분 목표한 바를 달성했다;
마법사가 되기 위한 수련서(C25): 18금 합동 일러스트북 (책 제목은 부스명과 동일)
총 12명의 작가가 참여한 18금 일러스트북. 참가 작가들 중에는 케이온 합동 일러북-이건 물론 노멀-에 참가한 이들도 있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LO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동인 행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사람들의 그림을 노렸는데, lumi 화백의 그림이 그 예였다.
이터널 필드(E35/36): 케이온 패러디북 '케이오프! vol.1' (3000\)
하루히와 럭키스타로 각기 네 권씩의 회지를 낸 바 있는 합동 서클의 새 회지 시리즈. 이번에는 기본적인 캐릭터 형태를 만들고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그렸던 노선에서 탈피한 모습이었는데, 그건 그렇고 나는 저 서클이 나올 때마다 좀 더 근원적인 의문을 가지곤 한다.
"분명히 여러 명이 참가하는 서클인데 왜 회지들의 그림체가 거의 차이가 없을까?"
아무튼 이번 회지는 서클 회원 중 소갱 화백의 작품으로 되어 있었다. 하루히나 럭스처럼 '모든 것은 작가 마음' 으로 진행되는 막장 개그의 노선에서는 벗어나 있었는데, 쿡쿡 쪼는 듯한 신랄함이나 부조리스러운 개그의 응용은 여전했다. 케이온 외에 하루히로 새로운 회지 시리즈를 낸다는 정보도 있었지만, 하루히는 10월로 연기되었다는 안내문이 부스에 걸려 있었다.
SUGAR-RINGO(G41/42): 일러스트북 'Vacation' (3000\)
깜쥐 화백의 작품이었는데, 개인 사정상 부스 참가는 하지 않고 회지만 위탁하는 식으로 참가했다. 아마 코미케 등 일본 동인 행사에 출품하기 위해 만든 책 같았는데, 실제로 일본어 안내문만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림 중에는 팬시용으로 쓰였던 것도 몇 가지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회지의 순번을 'vol.0.5' 라고 비공식 혹은 번외편 식으로 매겨놓은 것 같았다. 어쨌든 저 화백의 일러북은 거의 대부분 내게 만족감을 가져다 주고 있다.
(여담이기는 하지만, 코믹 돌아보고 난 직후 오랜만에 클래식 레코드가게인 풍월당에 갔을 때 지인을 만났다. 그에게도 코믹의 수확물들을 보여줬는데, 이 일러북에 꽤 후한 평을 내려주고 있었다.)
7월 코믹 때 예약했다가 불의의 펑크 소식으로 좌절했던 바로 그 물건. 이번에는 예정대로 나와주었다. 2월 코믹 후기에도 언급했던 회지의 속편인데, 일단 공식 시리즈로는 이것이 끝이라고 하지만 작가인 cocoon 화백이 후기에 '이외에도 생각해 놓은 스토리가 더 있다' 고 했으니 뭔가 또 나올 것 같기도 하다.
메인 캐릭터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카가미네 린/렌 남매였는데, 이번에는 거기에 더해 카이토를 꽤 망가뜨리고 있어서 이채로웠다. 같은 서클의 모니카 화백이 예전에 리제 화백과 냈던 트윈북에서도 카이토를 집중적으로 괴롭히고 있었는데, 역시 바카이토는 까야 제맛?
이렇게 네 가지 품목이 돈내고 지른 것으로는 전부였다. 격증한 부스 숫자에 비해 오히려 더 검소하게 지른 셈이었는데, 물론 행사 끝나고 직행한 풍월당에서 뭔가 있을 것에 대비해 잔금을 아끼려는 생각도 있었고.
그리고 애석하게 펑크가 나는 바람에 부스를 차리지는 못했다지만, 약속이 있어서 구경왔다는 lumi 화백도 운좋게 만날 수 있었다. 가방에 넣어온 바람에 많이 우그러져서 좀 그랬지만, 뚜레쥬르 빵을 공물(???)로 바치고 잠깐 잡담을 하다가 8월 서플에는 제발 펑크내지 말아달라고 싹싹 빌고(?????) 헤어졌다. (가져간 빵은 위에 언급한 '포니테일' 의 두 화백에게도 마찬가지로 전달하고 왔다.)
그리고 대머리크리가 작렬하는 공짜이긴 하지만, 추가 획득 품목도 있었다;
Cat or Fish(O44): 페이트 스테이나이트 밥순이+탄밥 머그컵 (정가: 5000\이었나 5500\이었나...)
몇 년전 모 동아리에서 출품했던 머그컵에 이어 동인 행사에서 입수한 두 번째 머그컵. 이번에도 역시 빵과 데자와를 공물로 바치고 공짜로 받아왔다. 팬시 종류는 이제 별로 구매하지 않고 있지만, 머그컵이나 공CD/DVD, 안경닦개, 필통, 클리어파일 등 실용성과 덕후성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품목은 여전히 관심 대상이다. 우유 마시거나 홍차 타먹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듯.
8월 말의 서플까지 갔다오고 나면 9월 한 달 동안은 중요한 동인 행사가 잡혀있지 않아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장염이라는 필치못할 사정으로 쉴 수밖에 없었던 독일어 공부도 재개할 예정인데, 9월 초에 있을 동원훈련크리 때문에 그것도 신경쓰이고. 애국심 따위는 바닥을 뚫고 맨틀에 이를 정도인 내게는 정말 성가신 이벤트인데, 시기도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을 때라 더더욱 그렇다.
뱀다리1: 여태껏 해왔듯이 모든 전시관을 다 돌고 왔는데, 그 중에는 자작리뷰와 그에 이은 가족드립, 소비자에 대한 기만 등으로 악명을 떨친 바 있던 '피아노하드(가명???)' 가 방금 제철소에서 주조한 강철을 전신에 코팅한 듯 무심하고 시크한 모습으로 당당히 부스를 차려 참가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눈에 띄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대사를 외쳐주고 싶었을 정도였다.
뱀다리2: 광복절 코스금지에 대해 무슨 정당 소속 무슨 위원회의 누군지가 꽤나 어이없는 글을 썼던데, 내가 이 글 서두에도 언급했던 몇 년전 광복절 때의 사건과 그 사건의 여파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가 눈곱만큼도 없었을 뿐 아니라 평소 수많은 무개념 코스어들이 저질러온 민폐에 대한 고찰도 전혀 없어서 뻘글로 간주했다.
드높은 이상, 그래 좋지. 하지만 그게 현실적이어야 진정한 가치가 있는데 저 누군가는 그저 이상만을 좇다가 현실을 완전히 내팽개친 케이스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이없게 고소크리 운운하는 꼴이 뭐같아서 차단했었더라. 괜히 관심 줘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