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에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는 것도 흔치않을 텐데, 이번에는 평화롭게 자연사를 맞이한 인물인 탓인지 그 충격은 그리 크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의 현대사에서 영욕을 함께한 거물급 정치인의 타계라는 점에서 분명히 중요한 소식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를 의식했는지 경찰이 서울광장에 전경버스로 공성전 준비를 하는 재빠른 '초동조치' 를 보여서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여론의 거센 비판에 밀려서인지 몇 시간도 안돼 버스를 철수시키는 모습을 보인 탓에 좀 더 홀가분하게 조문을 갔다올 수 있었다.
차비를 아끼려고 동대문운동장역에서부터 시작되는 지하상가를 쭉 타고 시청역까지 걸어갔다. 서울광장 출구로 향하는 1호선 대합실에는 조문객들을 위해 위와 같은 안내문이 기둥을 따라 쭉 붙어 있었다.
역에서 나와서 바로 찍어본 조문 현장. 이번에는 서울시 측에서 서울광장을 그럭저럭 고분고분하게 내준 것 같았는데, 분향소도 서울시청 공사현장 정면에 크게 마련하고 그 뒷편에는 천막을 광장 내에 쭉 쳐서 조문객들이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마침 근처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도 근조 현수막이 설치되고 있었다.
분향소 입구를 표시하고 있는 현수막. 주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그리운 금강산' 이나 '우리의 소원', '아침이슬' 등이 추모곡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문 대기줄은 꽤 길었지만, 분향소를 크게 마련한 탓인지 줄의 이동 속도가 그렇게 느리지는 않았다. (내 경우에는 대기줄에 들어서서 조문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약 20분 정도 걸렸다.)
아직 쓰지 않는 천막 아래에서는 시민들이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위와 같이 국장으로 장례를 치를 것을 요구하는 항의용 피킷도 볼 수 있었다. 조문객들의 나이와 성별은 가지각색이었지만, 지난번과 달리 고인과 연배가 비슷하실 어르신 분들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분향소 전경. 조문객들은 한번에 약 30명 정도 분향소 앞으로 안내되어 헌화와 묵념(혹은 절)을 하도록 하고 있었다. 오른편에는 고인의 친지들과 동료 정치인들이 상주로 서서 조문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있었고.
대기하는 동안 장례위원들이 근조 휘장과 국화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부터 달고 다니는 것이 있어서 받지 않았다.
조문객들을 위해 분주하게 국화를 준비하고 있는 장례위원들.
헌화를 마치고 묵념을 하기 직전의 조문객들. 묵념 외에 전통적인 큰절을 올리는 사람들을 위해 일정 간격으로 매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큰절을 택했다.
조문을 마치고 상주들과 악수를 나눈 뒤 분향소를 빠져나올 때 다시 보니,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의 근조 현수막도 거의 다 설치된 상태였다.
한편 공식 분향소 외에 오른편 뒷쪽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했다는 작은 분향소가 하나 더 마련되어 있었다. 공식 분향소와 실랑이는 빚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두 번 추모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냥 지켜보기만 하고 광장을 빠져나왔다.
조문을 마치고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잠깐 들렀는데,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을 걸어놓은 코너에도 변화가 있었다. 고인의 초상에는 상중의 검은 테가 둘러졌고, 그 밑에는 국화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이렇게 현 정권과 집권당이 그토록 목이 터져라 '10년을 잃게 만든 인물들' 로 성토하던 두 전직 대통령이 모두 타계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그 10년을 되찾아주리라는 기대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현실에 지쳐 오직 나라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고 있고, 이 나라는 내가 생각하는 한 죽었다고 여겨 근조 휘장을 계속 달고 다니고 있는 상태니까.
하지만 나가기 전에라도 나는 내게 주어진 선거권 같은 최소한의 참정권을 계속 행사할 것이다. 행여 내가 국적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때까지는 내가 나라의 일꾼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던 고인드립을 즐겨 하는 축생들이 설치는 이런 뭐같은 나라, 뭐같은 세상에서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