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이라고 하는 형식의 곡은 대개 서너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느린 3부 형식, 3악장은 미뉴에트 또는 스케르초 3부 형식 어쩌고...아무튼 음악형식론 같은 책에 보면 그렇게 나와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교향곡들이 군대식으로 다 저런 틀을 따르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저런 형식이 정립되었다는 고전 시대의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도, 잘 찾아보면 6악장짜리 교향곡도 있고 3악장이나 심지어 단악장의 곡에 교향곡이라고 붙인 것까지 나온다. '교향곡은 이렇게 써야 한다' 며 으스대는 스노브들에게 꽤나 치명타인 반례들인데, 그 이후에도 교향곡이라는 정형화된 틀을 마구 부수는 이들이 계속 나왔고.
특히 베를리오즈의 경우 종래의 '교향곡 제 몇번' 이라는 숫자에도, 그리고 기존 형식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는 아주 특이한 교향곡을 네 곡 남겼다(환상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럴드, 로미오와 줄리엣,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 이들 교향곡은 물론 베토벤 등의 아이디어에서 빌어온 것도 있었는데, 동시대 작곡가들에게도 많이들 회자되는 곡이었던 것 같고.
베를리오즈만큼 유명한 사례는 아니지만, 초기 낭만주의 시대에 형식이나 구조 면에서 가장 보수적인 인물로 손꼽히던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이 굉장히 특이한 형태의 교향곡을 쓴 것도 꽤 흥미롭다.
멘델스존의 교향곡은 초기에 습작으로 작곡한 현악 합주 위주의 소편성/소규모 교향곡들을 제하면 다섯 곡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들은 아마 3번 '스코틀랜드' 와 4번 '이탈리아' 일 것이다. 그보다는 빈도가 낮기는 하지만 5번 '종교개혁' 도 그럭저럭 무대에 자주 오르는 곡이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1번과 2번의 연주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기껏해야 교향곡 전집을 녹음하거나 전곡 연주회를 가질 때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렇다고 저 두 곡이 초짜의 미숙함만을 드러내는 곡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한 오해다. 멘델스존의 교향곡들은 절대로 번호 순으로 작곡된 곡들이 아닌데, 완성된 순번으로 따지면 1-5-4-2-3이 제대로 된 작곡 순서다.
초기 습작과 본격적인 교향곡의 약간 어정쩡한 과도기에 놓여있는 1번은 차치하더라도, 2번이 4번 '이탈리아' 보다도 더 뒤에 완성되었음을 생각하면 왜 연주 빈도가 아직도 낮은지 의문을 가질 법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곡의 규모와 연주에 동원해야 되는 인원의 문제가 큰 것 같은데, 그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고.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밑에 언급하겠음)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 2번은 '찬미가(Lobgesang)' 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초연과 출판 당시에는 교향곡이라고 하지 않고 '교향 교성곡(Sinfonie-Kantate)' 이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교성곡이라고 하면 합창과 독창자들이 포함되리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 소프라노 두 사람과 테너 한 사람, 그리고 혼성 합창단에 오르간까지 가세하는데, 곡의 길이도 베토벤의 교향곡 제 9번에 맞먹는 70여 분이나 된다.
길이나 편성 외에 이 곡이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악장 구성인데, 번호 매겨진 것만으로 10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은 약 24분이나 걸리는 관현악만의 연주 대목인데, 그 속에 느린 서주와 빠른 알레그로, 스케르초풍 알레그레토, 장중한 아다지오까지 교향곡의 필수 요소들이 응집되어 있다.
나머지 아홉 개 악장은 관현악 반주가 붙는 교성곡(칸타타) 형식인데, 마르틴 링카르트의 독일 복음성가집에 게재된 코랄 텍스트를 제외하면 모두 시편과 에베소서, 이사야서, 로마서, 연대기 등 성서의 구절을 가사로 쓰고 있다. 제목에서도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데, 왜 성서를 중심으로 한 텍스트를 썼는지는 작곡과 관련된 상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멘델스존이 이 독특한 교향곡을 쓴 것이 1840년의 일이었는데, 1840년이면 독일의 요한 구텐베르크가 서양에서 최초로 활판인쇄술을 고안한지 4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구텐베르크가 그 기술로 맨 처음 찍어낸 책이 바로 독일어 번역 성서였기 때문에, 인쇄술 발명 기념 행사의 텍스트로 자연스레 선택된 것이었고.
살아있을 적에 멘델스존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큰 비판 없이 승승장구했는데, 이 곡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거국적인 행사를 위해 쓰여지고 초연된 곡인 만큼, 청중들의 반응도 좋았고 당시 언론들의 비평도 호의적이었다. 멘델스존이 재임하고 있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직접 지휘한 1840년 6월 24일의 초연 이후에도 세 번의 추가 공연이 열렸고, 이어 영국 방문 때도 버밍엄 음악제에서 공연되었다.
다만 멘델스존은 초연 후에도 곡의 특이한 구성 때문에 고민하다가 영국 방문 후 귀국해 한 차례 개정을 하고 출판했다. (5번과 4번이 번호가 밀린 것도 이 때문이었는데, 멘델스존은 이 두 곡을 그리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생전에 출판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 곡은 멘델스존의 뜻과 기호와는 달리, 그의 사후 점차 연주 횟수가 줄면서 오히려 4번과 5번에도 인지도가 밀리는 형편이 되었다.
아마 이 곡의 독특한 구성으로 인해 생기는 모순이 연주의 가장 큰 장애로 여겨지는데, 기악만으로 연주되는 20여 분의 1악장과 그 뒤에 이어지는 거대한 교성곡 부분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드느냐는 꽤 난감한 과제가 지휘자에게 던져지고 있다. 익숙치 않은 초심자들에게 두 부분은 꽤 이질적으로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독립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영향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특별히 전집 계획 없이 이 곡만 녹음하거나 공연하는 지휘자들은 많지 않은데, 내가 아는 한 볼프강 자발리슈(EMI)와 헬무트 릴링(헨슬러), 리카르도 샤이(필립스),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데카) 외 몇 명이 단독으로 이 곡을 녹음한 인물들이다.
그 중에 아르코예술정보관 자료실에서 빌려들은 것이 1979년에 녹음된 샤이의 음반인데, 데카 전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샤이가 필립스에 녹음을 했다는 것도 이채로웠고 녹음 당시 겨우 26세였던 지휘자가 이 난곡을 어떻게 바라보고 녹음했는지도 궁금했고.
ⓟ 1980 Philips Classics Productions
녹음에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런던 필하모닉 콰이어(합창단), 독창자로 마가렛 프라이스(Margaret Price)와 샐리 버제스(Sally Burgess. 이상 소프라노), 지크프리트 예루살렘(Siegfried Jerusalem)이 기용되었다. 초짜 지휘자 치고는 꽤 굉장한 라인업의 연주자들을 거느리고 녹음한 셈인데, 쭉 들어본 바로는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다만 샤이도 이 곡의 모순된 구조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것 같은데, 물론 신포니아와 칸타타에서 같은 소재를 쓰는 대목은 꽤 적극적으로 연관성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대체로 다소 멀리 떨어져 관망하는 듯한 자세를 많이 취하고 있다. 아마 독창자나 합창단의 기량에 좀 더 승부수를 둔 것 같은데, 독창자들의 노래는 썩 괜찮은 편이다.
문제는 합창단의 녹음 상태인데, 좀 뒤로 물러앉아 있는 듯한 두루뭉실한 소리가 마이너스 요인이다. 구축력으로 따지면 자발리슈 같은 관록있는 인물들이 좀 더 능란하게 해결했을 것 같은데, 자발리슈 녹음-베를린 필과 공연한 실황-은 EMI 앙코르의 저가판으로 발매되었다지만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샤이의 필립스 녹음은 80년대 중반에 CD로 나온 뒤 2 for 1 시리즈인 '듀오' 에 하이팅크의 멘델스존 교향곡 녹음들과 합쳐져 재판되었는데, 그 뒤로는 재발매 소식이 없는 상태다. 그 대신 전속사인 데카에서 아예 새로 만든 후속판이 나왔는데, 바로 샤이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카펠마이스터로 부임한 뒤 치른 첫 공식 연주회(2005년 9월 2일)의 실황이었다.
ⓟ 2005 Decca Music Group Limited
이 공연에서 샤이는 첫 곡이었던 '한여름밤의 꿈' 서곡과 이 교향곡(음반에는 교향 교성곡이라고만 표기되어 있음)의 연주에 최근 간행된 초연판 악보들을 사용했는데, 1979년의 첫 녹음에서는 보편적인 개정판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 차이점을 관찰하는 데도 적절한 음반이고.
다만 저 데카 음반은 구입하지 않았는데, 아예 해당 연주회의 모든 실황을 담은 DVD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DVD는 데카가 아닌 유로아츠에서 2006년에 나왔는데, 음반에는 수록 시간상 누락된 '시편 114(혼성 8부 합창과 관현악)' 와 독일 현대 작곡가인 볼프강 림(Wolfgang Rihm)의 '변형 II' 라는 관현악 작품-게반트하우스 위촉작-의 세계 초연까지 모두 수록하고 있다.
ⓟ 2006 EuroArts Music International GmbH
다만 DVD는 아직 국내에 정식 수입되고 있지 않은 상황인데, 다행히도 일본에 구매대행을 신청했던 지인 덕에 입수에 성공했다. 교향곡의 영상을 보고 들어본 결과를 종합해 보자면, 초연판을 선택한 판본 모험은 꽤 특필할 만한 사건이었지만 곡 자체의 완성도 면에서 따져보면 초연판 보다는 최종 개정판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브루크너처럼 개정 전후의 곡상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사견이기는 하지만, 초연판을 들었던 개정판을 들었건 아직까지 이 특이한 교향곡 자체에 크게 애정이 생기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멘델스존의 의도와 용기가 가상했다고는 쳐도, 본질적으로 무신론자인 데다가 특별히 개신교에 대한 적대감이 강한 내게 있어서 이 곡의 텍스트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싫을 정도이기 때문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