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링크 란에 뒤늦게나마 국제 윤이상 협회와 재독 작곡가 박영희의 홈페이지를 링크시켰는데, 그래서 예전보다는 더 자주 최신 동향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5월 4일에 국제 윤이상 협회의 회원 전용 CD 신보 소식을 확인했는데, 당장 질러야 겠다고 생각하고는 독일어로 협회에 보낼 주문 이메일을 쓰다가 웬 국제우편 한 통이 집에 배달된 것이 있어서 확인해봤다.
바로 지르려던 그 CD가 담긴 우편물이었는데, 주문하지도 않은 것이 왜 왔는지 꽤 의아했다. 소개장 형태로 동봉된 독일어 유인물 한 장을 사전 찾아가며 해석해본 결과 협회 회원들과 후원자들, 현대음악 전문 음악인들과 기타 음악 관계 인사들에게 특별히 증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정말 돈주고 샀을 물건이었을 듯.
아무튼 이번 CD의 컨셉은 '초기 관현악곡집' 이었다. 다만 정말 초기에 속하는 곡은 절반 정도고, 나머지는 독일 현대 작곡가로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1970년대에 작곡된 작품들이라서 완벽한 의미의 초기작 모음집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1960년대에 작곡된 관현악곡들인 '바라' 와 '유동' 은 이미 협회반 3집을 통해 출반된 바 있다.)
8집 (2010)
ⓟ 2010 Internationale Isang Yun Gesellschaft e.V.
이번 CD 커버는 지난 번의 7집과 마찬가지로 독일 현대 화가인 귄터 리스가 그린 '공간회전점의 조직' 이라는 추상화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속지에는 윤이상이 어린 시절을 보낸 통영의 바닷가 사진과 미국 현대 화가 잭슨 폴락의 그림들도 실려 있는데, 후자의 경우 수록곡 하나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이유였다.
1. 대규모 관현악을 위한 '예악' (1966)
바덴바덴과 프라이부르크 남서독일 방송 교향악단/한스 첸더
1959년 작품인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 이 윤이상의 유럽 시기 작품 중 중요한 등용문 역할을 했다면, 이 '예악' 은 유럽에서 내노라하는 현대 작곡가들의 위치로 격상되는데 크게 기여한 곡으로 꼽을 수 있다. 다름슈타트 여름현대음악제와 함께 독일 현대음악제의 쌍벽을 이루는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초연된 곡인데, 초연에 즈음해 만든 음원은 베르고에서 이미 LP와 CD로 출반한 바 있다.
당시 현대음악계에 꽤 충격을 준 곡이라 그런지 음원들 외에 관련 논문들을 비롯한 문서자료도 많고, 개인적으로는 윤이상 관현악 작품 중 '무궁동' 과 함께 두 차례나 실연으로 접한 유이한 곡이라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첫 번째는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 폐막연주회에서 정명훈 지휘의 라디오 프랑스 필 연주였고, 두 번째는 2010년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에서 롤란트 클루티히 지휘의 서울시향 연주였다.)
음원도 초연 직전 녹음된 것 외에 스테픈 애즈버리의 지휘로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이 카프리치오에 녹음한 것까지 두 종류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앨범의 추가로 세 종류의 음원을 갖게 되었다. 수록된 녹음은 2001년 12월 11일에 프라이부르크의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열린 공연의 실황.
2. 관악기, 하프와 타악기를 위한 '조화' (1974)
바젤 방송 교향악단/하인츠 홀리거
관악합주가 주축이 된 편성으로 작곡된 윤이상 관현악곡으로는 이 곡과 1986년의 '무궁동' 두 곡이 있는데, 이 곡은 윤이상과 친분이 있던 독일 지휘자 롤프 아고프를 위해 작곡된 곡이다. 초연도 아고프가 지휘하는 지걸란트 관현악단 단원들의 연주로 행해졌는데, 윤이상은 이후에도 각 악장이 따로 작곡되어 부분 초연된 바이올린 협주곡 제 2번(1983/86)의 1악장 초연을 아고프에게 맡긴 바 있다.
12음 기법이나 음뭉치, 극단적으로 어려운 연주 기법이라는 서구의 전위 경향에서 한층 더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1970년대 작품의 전형성을 갖고 있는데, 전체적인 음향도 예전보다 한층 더 부드럽고 온기가 느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하프를 독주 악기로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 이후 2중 협주곡이나 공후, 균형을 위하여 같은 하프가 주역 혹은 실내악의 주축으로 편성되는 곡들의 전초 역할을 하고 있다.
이 CD 이전에 '예악' 과 첼로 협주곡이 같이 수록된 카프리치오의 음원-지휘자와 관현악단도 동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롭게 듣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두 번째 음원을 입수하게 되면서 비교 청취의 묘미도 약간이나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오보이스트로 유명하지만 작곡과 지휘 쪽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홀리거가 지휘를 맡았는데, 1980년 8월 27일에 바젤의 폴크스하우스에서 스위스의 독일어/레토로만어 전문 방송국인 DRS를 위해 제작한 방송녹음이다.
3. 대규모 관현악을 위한 '교향적 정경' (1960-61)
남서방송 교향악단(현 바덴바덴과 프라이부르크 남서독일 방송 교향악단)/브루노 마데르나
이 CD에서 가장 깜놀할 만한 수록곡이 바로 이 작품인데, 윤이상의 유럽 시기 작품 중 유일하게 2010년 현재까지 공식 출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곡이라 연주 빈도가 극도로 적은 안습 행보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윤이상의 작품들 중 초연 때 가장 부정적인 평을 받은 곡이었기 때문인 듯.
윤이상이나 미망인 이수자의 증언을 들어보면 연주가 끝나기도 전에 청중석에서 야유와 휘파람이 터져나왔고, 곡에 대해 칭찬한 이는 프랑스 작곡가인 올리비에 메시앙을 빼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곡의 녹음도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겠구나...했지만, 현대음악통 방송국인 남서독일 방송국은 초연 이후에도 따로 녹음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게다가 지휘를 당시 유럽 현대음악계의 본좌로 일컬어지던 마데르나가 맡았다는 것도 충공깽.
대부분 한국 혹은 극동 쪽의 문예 작품이나 유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여타 윤이상 작품들과 달리, 이 곡은 미국 현대 미술가인 잭슨 폴락의 추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 폴락은 물감을 붓으로 칠해 그리는 전통적인 화법 대신 물감을 캔버스에 마구 튀겨 얻는 우연적인 색채의 조화와 대립을 통해 새로운 미적 개념을 추구한 인물로 유명한데, 이 곡에서도 상이한 악상들을 뒤섞어 지독히 어려운 연주법과 음향으로 버무려낸 곡으로 여겨진다.
수록된 녹음은 1965년 3월 17일에 바덴바덴의 한스 로스바우트 스튜디오에서 방송용으로 제작된 음원인데, 이 곡의 출반 음원으로서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게다가 제작 시기가 꽤 오래된 물건임에도 스테레오로 녹음되어 있다는 것도 흠좀무. (유럽 방송국들에서 스테레오 중계/녹음이 일상화된 것은 1967년 전후에 가서였다.)
4. 소규모 관현악을 위한 '협주적 음형들' (1972)
로즈비타 슈테게(플루트), 요헨 뮬러-브링켄(오보에), 연주자 불명(바이올린), 보훔 교향악단/원경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바로크/고전 시대에 유행했던 일종의 '합주 협주곡(콘체르토 그로소)' 이나 '협주 교향곡(신포니아 콘체르탄테)' 양식을 응용한 곡인데, 4년 뒤에 작곡되는 '협주적 단편' 과 짝을 이루는 소편성 관현악 작품이다. 그 동안 주로 특정 악기군으로 대표되는 악상 변화가 윤이상 관현악 작품의 전개 방식이었다면, 여기서는 악기군에서 개별 악기로 세분화해 개별 연주자들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는 스타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플루트와 오보에, 바이올린 독주의 경우 사실상 이 곡의 솔리스트들로 볼 수 있을 만큼 크게 두드러지는데, 후반부에 가면 이 세 악기들만으로 연주되는 실내악 스타일의 긴 악구까지 등장한다. (여기서 파생된 작품이 1집의 첫 곡으로 수록된 '플루트, 오보에와 바이올린을 위한 3중주' 다.) 이외에도 몇몇 섹션에서는 연주자들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보를 일부 생략하거나 하는 우연성 (혹은 불확정성) 요소도 얼마간 도입하고 있는 것도 주된 특징.
공식 초연하기 1년 전이었던 1972년에 이미 음반이 발매된 바 있었는데,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 의 초연 지휘를 맡은 이래로 윤이상의 오랜 친구가 된 프랜시스 트래비스의 지휘로 바젤 졸리스텐앙상블이 베르고에 취입한 것이 한동안 이 곡의 유일한 음원이었다. 그나마 LP로만 발매되었고 여태껏 CD로 복각되지 않고 있었는데, 아예 새로운 음원이 이 CD를 통해 갑툭튀해 'CD 포맷으로는 최초 발매' 라는 기록도 세웠다.
수록 음원은 1980년 9월 27일에 쾰른 서부독일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열린 방송 연주회의 실황인데, 지금은 한국 지휘계의 원로 격이 된 원경수가 지휘자로 이름을 올린 것이 크게 눈에 띈다. 시기가 시기였고, 더군다나 한국 음악인으로서 윤이상 작품을 다루는 것이 개인 신상에 결코 좋을 리 없었던 당시로서는 꽤 용자 혹은 대인배 기질을 발휘한 셈.
*추가하자면, 1970년대 후반 서독의 서베를린 교향악단에 객원으로 초빙받아 '무악' 을 지휘했던 임원식의 경우 귀국 후 음악계로부터 '친북 인사 비호' 라는 죄목으로 탈탈 털리고 말았다. 당시 임원식을 음악 잡지에서 공격한 인물들만 봐도 웬만한 음악계 중진들을 포괄할 수 있을 정도인데, 윤이상에 대한 당시 한국 여론이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여튼 한동안 음악 관련 포스팅 거리가 없거나, 있어도 귀차니즘 때문에 정리하지 못해 가뭄크리였던 상황에서 그야말로 반가운 구호물자가 아닐 수 없었다. 이외에도 정발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역사적인 음원을 시청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에 관해서도 (굉장히 재미없겠지만) 다음 기회에 정리해 포스팅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