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관을 돌아본 뒤에는 옆에 있는 상무대 막사로 가봤다. 진짜 상무대가 있던 곳은 택지 개발로 헐렸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공원 부지를 마련한 뒤 철거한 자재들을 주로 써서 당시 건물 배치도에 맞게 재현했다고 한다. 아직 아침 시간이라 구경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건물들의 내부에도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고문이 없어서 이것저것 많이 찍어봤다.
광주 시내에서 벌어진 항쟁의 경우 내외신 기자들이나 시민들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들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라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비교적 소상하게 알 수 있지만, 연행자들이 격리 수용된 상무대의 경우 군사시설이기도 했고 군인들이 규정에 어긋나는 구타와 가혹행위 등의 모습을 정직하게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길 리도 만무했기 때문에 관련 자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생존자들의 증언과 상황 재현으로 당시 수감자들에 대한 군의 처우가 얼마나 개차반이었는지 알 수 있는데, 단순히 건물로만 재현한 곳도 있었고 적당한 대체품을 써서 재현한 곳도 있었다.
우선 들어가본 곳은 군법회의장. 항쟁 후 연행자들을 재판하기 위해 1980년 여름 동안 급히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들어가 보니 웬 사람들이 있어서 흠칫 했는데, 알고 보니 밀랍인형이었다. 짤방에 보이는 것은 재판을 주도한 영관급 법무장교들과 재판 속기록을 작성하는 행정서기병. 아직 계엄령이 지속되고 있었던 탓에 피고인들에게 제대로 된 변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기소 사실 확인과 확정 형량 선고 위주로 후다닥 끝내버린 '캥거루 재판' 이었다.
물론 피고들도 밀랍인형으로 재현되어 있었다. 짤방이 흐릿해 인형들의 표정은 제대로 읽혀지지 않지만, 꽤나 고압적이고 사무적인 법무장교들의 표정에 비하면 막말로 '불쌍해 보이는' 표정이 역력하게 만들어졌다. 물론 그 중에는 떳떳하게 변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는 표정의 인형도 있었지만.
피고인들을 인솔한 헌병들은 모두 실탄을 장전한 소총을 메고 법정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영창에 재현된 헌병들의 포스에 비하면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감시의 눈빛은 마찬가지였다. 검찰관과 변호인석도 재현되어 있었지만, 예산 부족인지 밀랍인형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 다음 가본 곳은 연행자들이 갇혀있었던 영창. 군 시절에 영창갈 일도 없었기 때문에, 당시 군대 영창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다.
여기도 일부 시설들에는 밀랍인형으로 인물들을 재현하고 있었다. 들어가자마 마주한 당직헌병 밀랍인형. 진압봉을 들고 수감자들을 매의 눈으로 노려보는 모습이다. 영창들은 감시대를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빙 둘러 설치된 탓에, 감시하기 쉽게 되어 있었다. 지금도 영창들이 저런 구조로 지어지고 있는 지 궁금해지기도 했고. 당직헌병의 계급은 병장이었는데, 말년에 저짓하기도 꽤 짜증났을 듯 하다.
영창 내에 재현된 수감자들의 밀랍인형. 모두 정좌 자세로 앉아 있는데, 이런 식으로 식사 시간과 수면 시간, 용변보는 시간 외에 계속 있어야 했던 것은 지금의 영창과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지금 영창에서는 까딱 졸거나 움직였다가 당직헌병에게 피떡이 되도록 쳐맞는 일은 없다고 하니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뒷쪽에 보이는 철창은 특별히 '극렬 범죄자' 로 취급된 수감자들만 격리시키는 일종의 독방으로 생각되었다.
그 옆 칸에는 규정을 어긴 수감자가 구타당하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었다. 수감자를 철창에 매달리게 한 뒤 두들겨패는 모습인데, 사소한 규정 위반에도 이렇게 상습적으로 구타와 가혹행위가 가해졌다고 한다. 그리 중요하지는 않지만, 패고 있는 쪽의 계급은 중사. 역시 표정 재현은 가능한한 악랄하게 되어 있었다.
당시 헌병들이 착용했다는 전투화와 전투복, 진압봉 복제품도 진열되어 있었다. 다만 전투복 중에는 당시 일반적이었던 국방색 전투복 말고 이후에야 제식 채용된 얼룩무늬 전투복도 있어서 좀 의아했다. 진압봉도 밀랍인형 군인들에게 들려놓은 검은색이 아닌, 그냥 나무몽둥이처럼 되어 있어서 고증이 다소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헌병대 식당은 명칭만 봐서는 그냥 병사용 식당처럼 보이지만, 좁은 영내에 하도 많은 연행자들이 들어오다 보니 여기서도 수감자들에 대한 강압적인 심문과 구타가 가해졌다고 한다.
식당 내부에는 당시 것의 복제로 보이는 나무 식탁 정도가 재현물의 전부였는데, 벽에 걸려 있던 플래카드를 보니 요 며칠 전에 여기서 시민들이 연행자들을 먹이기 위해 식량을 조달했던 행사를 재현한 모양이었다.
조리실 내부. 밥과 국을 조리하기 위한 콘크리트제 화덕과 식재료를 다듬는 주방, 취사반 휴게실 등이 재현되어 있었다.
밀랍 인형 대신 사진과 그림으로 재현한 조리실 내부의 심문과 구타 장면. 밥짓는 곳에서 저런 짓을 했으니, 저기서 조리된 밥을 먹어야 했던 부대원들의 심정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연행자들의 심문에 주로 이용된 헌병대 본부 사무실도 물론 재현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수사는 여기서 행해졌다고 하는데, 물론 연행자에 대한 구타와 가혹행위도 행해졌다고 한다.
내부의 여러 칸으로 된 방 중에도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방에 밀랍인형들을 넣어놓았다. 심문하는 수사관이나 진압봉으로 연행자를 구타하는 이나 모두 중사. 위관급 장교들은 뭐하고 있었던 거냐 심문받는 연행자 밀랍인형의 몰골이 말이 아닌 것으로 봐서는, 오른편에서 미리 몽둥이 찜질을 받고 기선제압을 당한 뒤 수사관의 강압적인 심문을 받는 식으로 수사가 진행된 것 같다.
헌병대 중대 내무반. 물론 여기도 그냥 보면 헌병들이 생활하던 곳으로 볼 수 있겠지만, 넘쳐나는 연행자들 덕에 헌병들도 자신의 휴식 공간을 심문과 구타에 할애해야 했다고 되어 있다.
여러 칸의 건물들 중 한 개 내무반만을 재현한 내부에는 그 때 상황을 적은 안내판 정도만이 설명 역을 하고 있었고, 주로 관물대나 총기 거치대, 매트리스, 장구류 등이 차곡차곡 진열되어 있어서 당시 내무반의 생활상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해줬다. 물론 당시 군인들이 정말 저렇게 생활했는지는 그 때의 영상 자료를 확인해 봐야 할 듯. 총기 거치대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총은 물론 M16인데, 아마 실총기는 아니고 복제품 같다.
자유공원을 돌아본 뒤에는 죽은 이들이 안장되어 있는 민주묘지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518번 버스를 돈주고 타야했겠지만, 17일과 18일 이틀 동안 시청 측에서 대절한 관광버스들이 자유공원과 민주묘지를 시종점으로 무료 운행하고 있는 것을 타고 갔다. 다음 편에 '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