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이 상당히 강경한 편이라, 전문을 모두 일단 가려둡니다.)
#1
꽤 오랜만에 '정치적 포스팅' 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을 까제껴본다. 후보가 개차반이고 뭐고 간에, 나는 내게 주어진 투표권이라는 것을 가능한한 모두 행사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군 복무 중에도 부재자 투표를 했고, 대학교 다닐 때도 총학생회 선거에 늘 표를 던졌으니 꿀릴 것도 없겠고.
하지만 이번 선거만큼 답이 없어보이는 최악의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교육감이나 교육위원 선거의 경우에는 그렇게 크게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고. 특히 어느 단체 탓하면서 그 단체가 교육을 망치네, 그 단체가 없어져야 참교육이 서네 하는 어그로 몰기식 유세를 하는 후보들은 줄줄이 개무시해 버렸다.
제대로 된 통계를 내면서 까는 것도 시원찮을 판에, 늘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 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같은 중등교육 시간에 배울 법한 오류를 대놓고 범하는 후보에게 교육감이나 위원의 자질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자기가 내세울 점이 없건 있던 우선 상대를 득달같이 까고 보는 후보들의 등장이 일상화된다는 것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치 역사에서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2
가장 고민한 것은 서울시장 투표였다. 아니, 뻥안치고 정말 찍을 생물체가 없었다. 누구든 공약에 결함이 보이는 것은 매한가지였고, 유세나 토론 과정에서 병크를 터뜨린 이들도 있었고, 해당 후보나 후보의 소속 정당 자체가 병신력이 충만한 경우까지 어느 하나는 꼭 해당되었으니까.
하지만 무효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외국으로 '튀기' 전에 마지막으로 행사하는 권리이니, 누구든 계속 고민하며 찍어야 하는 판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시장 선거도 그냥 어느 한 후보를 골라 찍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결코 마음이 편치 않다.
#3
다만 어느 후보던 간에, 중요한 것은 내가 이번 선거에서 소위 '진보정당 당원' 이라 자칭하는 이들에게는 한 표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세가 다른 거대 정당들보다 약하기 때문에 표 줘봤자 쓸모없다는 천박한 논리가 아니다. 아무리 정당이 작고 세가 약하다고 해도, 그리고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닌 무소속 후보라도 공약의 실천 가능성이나 그 정당성을 제대로 입증할 수 있다면 그 쪽에 표를 주는 것도 나름의 이유를 댈 수 있을 테니.
하지만 그 '진보정당' 의 출마 후보들도 아니고 몇몇 당원들이 유세기간 내내 병크를 터뜨린 것이 문제였다. 특히 모 블로그 커뮤니티에서는 그 정당들 중 하나인 진보신당에 속하는 어느 당원이 한두 표 받는 것도 행운으로 여겨야 하는 판에, '사표론' 을 거창하게 들고 나와 뻗대는 바람에 완전히 정이 떨어져 버렸고. 사실 그 당의 어떤 다른 당원도 예전에 모 유명 지휘자를 새벽에 방문하겠답시고 한바탕 소란을 피우다가 병신력 인증만 하고 나가떨어진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18세기식 계몽주의에 쩔어버린' 당원들이 판치는 정당으로 이미지를 각인시켜버린 상태였지만.
대부분의 '진보정당' 들은 기존 거물급 정당들에는 없거나 부족하다는 '순수함' 과 '개혁 정신', '소수와 비주류에 대한 배려' 를 특히 전면에 내세우고 정치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정당이 내세우는 장점마저 단점화하는 입방정들이 이렇게 난무하는데, 과연 오만가지의 다양한 의견과 과제가 난무하는 현실 정치판 속을 어떻게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분명한 병크를 벌이고 있는 당원이 있다면, 그 당원의 당내 영향력이 얼마나 되건 간에 비판과 성토가 있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강제 출당 조치도 행해져야 하지만 그런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감싸줬다면 감싸줬지.
정치는 립서비스이기도 하지만, 립서비스가 아니기도 하다. 휘황찬란한 학력과 높은 수준의 학식을 자랑하던 인텔리 후보들도, 서민들의 표심을 못잡아 줄줄이 낙선하는 곳이 선거판이다. 유권자들을 설복시키기 힘들다면, 적어도 떨어져 나가게끔 만드는 병크는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엘리트 당원이라는 인간들이 말은 청산유수로들 한다지만, 그들이 상대를 자신보다 무식하고 열등하다고 까내리는 순간 당의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이런저런 블로그 커뮤니티나 트위터에서는 자신이 진보정당들의 당원임을 선전하고 다니면서, 자신의 입놀림이 당의 이미지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를 모르며 나불대는 속물들이 너무 많다. 겸손함과 관대함 같은 미덕도 없으면서, '찌질한 안티들의 뻘소리' 를 논파하고 있다고 우쭐대지 마라. 자신의 뜻을 현실적으로 행사할 의원도 자치단체장도 제대로 못내는 현시창이 계속되는 한, 속물 당원들과 해당 정당들에게는 꿈도 희망도 없을 테니.
#4
선관위 측의 무사안일했던 선거 홍보 태도도 분명히 까여야 할 대상이었다. 자그마치 여덟 부류의 후보나 대표를 동시에 뽑아야 했다. 한두 명의 후보를 놓고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판에, 여덟 번을 뽑는다는 것은 꽤나 골치아픈 의무 행사였고. 하지만 오프라인에서건 온라인에서던 선관위 측의 논리는 소위 '밥 로스식' 으로 일관했다. "참 쉽죠" ? 퍽이나. 만약 이번 선거율이 지난 지방선거들보다 더 떨어지는 것으로 최종 집계된다면, 너무 많은 후보를 한 번에 뽑아야 했던 번거로운 절차가 첫 번째 원인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5
인터넷의 민심과 현실의 민심이 여전히 같지만은 않다는 것도 이번 선거에서 새삼스레 드러났다. 많은 블로그 커뮤니티들이나 트위터를 비롯해, 어느 쪽에 유리해 보일 수도 있을 투표 권유 포스팅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그 어느 쪽은 대부분 '범야권', '진보 진영 단일 후보' 등등의 키워드로 분류할 수 있는 쪽이었고. 그 때문에 선거법 위반 논란도 꽤 많았다.
특히 위에 열라게 깐 진보신당 같은 진보정당들에서는 여전히 꽤 열정적으로 넷상에서 자당 홍보에 나서고 있었다. 모 커뮤니티에서 개싸움판으로 유명한 모 추천글 시스템에도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하는 포스팅이 등재되기도 했고, 그런 글들만 보면 진보정당 후보들이 대대적으로 당선되거나 박빙 경합을 벌이는 것 같은 경천동지할 결과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선전할 것 같다는 기대감(???)을 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냉엄했다. 심지어 야권의 경쟁 상대였던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마저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나 천안함 관련 이슈 같이 현재 진행형인 쟁점들에서 보여준 찌질한 모습 때문에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의 후광에 기대며 유명세를 높이는 포퓰리즘' 이라며 넷상에서 신나게 얻어터졌을 정도로 경쟁 야당들에 대한 여론이 대단히 안좋아 보였음에도 말이다.
물론 국참당은 그 비판에 합당한 결과를 받았고, 꽤 약진한 모습을 보여준 민주당도 승세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불안정하다. 하지만 그러한 여야 양당을 견제할 만한 단체장이나 의원을 얻기에는 진보정당들도 마찬가지로 불안정하고 지지 기반이 취약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넷상에서 후보 지지 포스팅이 추천글에 등극하고 수십 수백명의 추천을 받는다고 해서 현실 정치의 영향력까지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이 결과를 어떻게든 쓰게 삼키고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해당 진보정당들과 소속 당원들, 지지자들마저 자신들이 깠던 경쟁자나 정당들 못잖은 자가당착에 빠져 있음을 새삼 느낄 수밖에 없다. 3번 항목과 동어반복일 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노빠' 같은 감정적인 키워드에 얽매여 평소 지녔던 냉철함마저 희석되어 버린 그 쪽 진영의 포스팅들이 모 블로그 커뮤니티에 대량 추천을 받아 인기글로 오르는 모습을 보면, 일찌감치 막장화된 그 곳을 포기하고 나와버린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6
그리고 진짜로 나노입자가 되도록 까고 싶은 후보가 있다. 투표도 개표도 당선자 발표도 모두 끝났으니, 실명을 거론해도 될 것 같아서 까놓고 쓴다. 서울 중구청장 후보 9번이었던 이학봉. 이 화상은 내 신상 정보를 어떻게 '캐냈는지', 뽑아달라며 핸드폰 문자메시지며 전화 통화며 징징대면서 아주 명확하게 내 눈밖에 났다. 시끄럽게 돌아다니던 선거 유세차의 진상짓만 해도 짜증나는 판에, 메시지질이라? 단체장에 뽑아주기는 커녕 눈깔을 뽑아줘도 시원찮을 패악질을 저질렀다.
자그마치 일곱 차례의 메시지 전송질과 두 차례의 전화질로 내 아드레날린을 극한 분출시켰다. 논리도 가상했다. '경희대학교 동문들의 이름으로 뽑아줍시다' 라니? 동대문구에 있는 경희대학교를 중구청장 후보인 이학봉이 어쩔 도리가 있나?
거기 졸업생이고 동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 선에서 끝나야 한다는 것이 내 견해다. 정치 일선으로 뛰어든 동문을 무조건 뽑아줘야 한다고 떠벌이고 다니는 것 자체가, 그 동문의 기반이 얼마나 불명료하고 불안한지를 인증하는 꼴로 보일 지 선거인단 혹은 동문회 측에서는 예상하지 않았을까?
가뜩이나 몇 년 전에는 총여학생회 측에서 모 원로 교수를 모함 끝에 퇴출시켜놓고 제대로 된 사과 하나 없이 얼렁뚱땅 넘어간 대규모 병크를 저질렀고, 올해는 종합강의동인 청운관 화장실에서 한 재학생이 미화원 아주머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가 걸리며 '대학교 이미지 실추시킨 4대 천왕' 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두 번째 대박 병크를 저질러 학교 이미지도 가뜩이나 안좋아진 상황이다. 외국에서 대학교 혹은 대학원에 입학하고 졸업한다면 한국에서 받은 학위를 통째로 내팽개치고 싶은 판국에, 아주 잘하는 짓들이다.
하여튼 저 후보는 앞으로 내가 이 나라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일이 있다면, 이렇게 학교와 동문들 이름 마구 팔아가며 유세질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확실하게 공개 사과하지 않는 한, 절대 한 표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묵인 혹은 방관한 학교와 동문회 측에도 결코 좋은 말을 해주지 않을 것이고. 빨리 벗어나야 겠다, 이 미쳐 돌아가는 나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