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양식당, 혹은 그와 관련된 음식점들에서 수프는 주요리 먹기 전의 전채 정도로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유럽 여행을 갔다온 사람들 말을 들어 보면, 수프만 먹어도 충분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양도 많고 꽤 공을 들여 내는 경우가 많다고들 하니 그 격차를 직접 확인하고 싶을 정도다.
홍대 인근에는 일본식 라면집부터 시작해서 온갖 나라의 요리를 파는 식당이며 술집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종종 찾는 집이 몇 군데 있을 정도인데, 다만 대학가라기 보다는 일종의 번화가처럼 상권이 형성되고 있어서 가격 면에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몇 달전 홍대 놀이터 옆에 좀 특이한 음식점이 하나 생겼다고 해서, 관련 정보를 검색해 봤다. 헝가리 국민들의 소울 푸드인 굴라시(Goulash)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가격이 그 쪽 동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3500원이라는 것을 보고 깜놀해서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 뻘글을 끄적이는 동안 세 차례 갔다왔고.
굴라시는 쇠고기와 양파, 감자, 당근, 토마토 등의 채소에 파프리카 가루를 넣고 푹 끓여 만든 수프 혹은 스튜라고 하는데, 유럽 요리답잖게 약간 매콤한 맛이 있어서 매운 것을 잘 먹는 아시아 사람들에게 꽤 호평받는 요리라고 한다. 헝가리로 여행갔던 사람들 말로는 '정말 맵게 해달라' 고 주문하면 거의 육개장 급으로 맵게도 조리해주는 모양.
첫 번째 갔을 때는 느즈막히 갔던 까닭에 찍었던 짤방 질이 너무 안좋아, 비교적 밝았던 오후에 갔다온 두 번째 때 주로 찍었다. 물론 그렇다고 짤퀄이 비약적으로 좋아진 것은 절대 아니고.
가게 자체의 규모는 매우 작은 편이고, 자동차도 들어가기 힘든 좁은 골목에 있어서 처음 가는 사람은 좀 찾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홍대 놀이터 옆으로 이리저리 난 골목들을 뒤지다 보면 그리 어렵잖게 찾을 수 있을 듯. 거기에 스무디킹과 지오캣이라는 가게 두 곳의 위치 정보만 있다면 좀 더 쉽게 가볼 수 있다.
가게로 들어가기 몇 발짝 전에는 이렇게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가격 외에 주목할 단어는 '리필ok'.
가게 외관은 이렇게 생겼다. 내부는 못찍었는데, 좁은 공간에 벽과 주방을 둘러싼 다찌 형태로 식사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열 명만 들어가도 굉장히 좁아보일 정도로 작았는데, 그 덕에 혼자 먹으러 가도 크게 부담이 가지 않는다는 이점도 있다. 6월에 세 번째로 갔을 때는 가게 왼쪽으로 난 골목에도 차양을 길쭉하게 설치하고 야외 테이블을 몇 개 만들어놓아 추가 식사 공간으로 쓰고 있었다.
메뉴는 세트A와 세트B 두 종류가 전부인데, 5월 초에 두 차례 갔을 때는 그냥 세트A 식의 메뉴가 전부였다. 6월에 갔을 때 추가된 세트B는 세트A에 샐러드가 추가된 메뉴인데, 그 때도 그냥 세트A를 시켜먹었다. 샐러드에는 오이가 들어갈 확률이 높아서(...).
그리고 여름이라 그런지, 팥빙수와 아이스커피 같은 사이드메뉴도 추가되어 있었다. 세트B에 추가된 형태와 같은 지는 모르지만, 샐러드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고. 따뜻한 커피의 경우 전기 커피포트가 세 개 비치되어 있어서, 원하는 만큼 직접 따라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물은 5월 까지는 따로 주방에 요청해야 했지만, 더운 6월이 되자 얼려놓은 물통들을 비치해 놓았다.
세트A 상차림. 주방에는 굴라시 냄비 외에도 작은 제빵기가 있어서 빵을 직접 구워내고 있었는데, 설탕이나 버터 등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영어권 국가의 식빵이 아니라 밀가루와 이스트 정도로만 구워낸 유럽식 하드롤 비슷한 빵이었다. 그 위에 하얗게 찍혀버린 것은 밥공기. 유리잔은 커피를 마실 때 쓸 수 있다.
일단 메인 메뉴인 굴라시를 몇 숟갈 떠먹어 봤다. 사실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국물이 뱃속에 들어가니 어느 정도 허기를 가셔주었다. 맛도 매콤함과 짭짤함, 시큼함이 섞여 일반적인 수프 종류보다 감칠맛이 느껴졌고. 물론 가격이 가격인 지라, 쇠고기는 한두 덩어리 정도만 들어가 있었고 나머지 건더기는 감자와 양파, 당근 정도였다.
하지만 굴라시고 빵이고 밥이고 커피고 다 리필이 된다는 점 때문에, 좀 허기진 사람은 몇 종류를 리필해서 먹으면 나름대로 배를 채울 수 있을 듯. 특히 굴라시와 빵이 꽤 리필이 많이 되는 것으로 봐서는 가게의 이름값을 충분히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다만 이 가게 외에 한 군데 더 들러야 하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리필은 하지 않고 그냥 차려진 음식으로만 식사를 끝냈다.
물론 진짜 헝가리풍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겠지만, 가끔 뭔가 특이한 음식을 저렴하게 먹고 싶다면 한두 번 쯤 찾아가도 괜찮을 가게로 생각된다. 다만 '수프는 전채요리' 라는 고정 관념이 강한 사람이라면 뭔가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