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개인적으로 '국수' 하면 따뜻하게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잔치국수나 우동 같이 국물이 있건, 짜장면이나 스파게티 같이 걸죽한 소스에 비벼먹던, 라볶이나 야키소바 같이 볶아먹던 간에 말이다. 하지만 지난 번 냉면 포스팅 때 썼던 것처럼, 밤낮 가리지 않고 더위로 허덕이는 때면 가끔 차가운 국수도 땡기기는 한다.
그래서 지난 번 7월 초순에는 정줄놓 상태에서 을지면옥에 가서 물냉면을 들이키듯 해치웠고, 중순과 하순에는 막국수를 사먹으러 가보기로 했다. 첫 번째 방문은 어느 지인과, 두 번째 방문은 혼자서 했는데, 그 때 짤방들을 섞어서 뻘포스팅을 갈겨봤다.
사실 막국수는 춘천이나 고성, 평창 같은 강원도 지방에서 먹는 게 제맛이라고는 하지만, 무조건 원산지 찾아가서 먹을 만큼의 재력과 시간도 없어서 그냥 서울 쪽에서 잘하는 곳이라는 데를 가보기로 했다. 네이뷁 지도를 검색해 보니, 2/3호선 교대역 1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고 했다.
출구를 나와 큰길을 따라 한 100m 쯤 걷다 보면 훼미리마트가 보이면서 오른쪽으로 꺾는 골목이 하나 나온다. 사실 훼미리마트는 1번 출구 나오자마자 한 군데가 더 있는데, 거기로 들어가도 잘만 찾아가면 나오지만 골목 헤매고 다닐 염려가 많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서 쭉 걸어가다 보면 세로 입간판 두 개를 볼 수 있다. 바로 목표로 한 '샘밭막국수'. 다만 본점은 춘천 소양댐 근처에 있고, 여기는 분점이다.
가게 앞. 단층 건물에 비교적 수수한 간판이 매우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맛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고들 하던데, 반신반의하며 들어가 봤다. 서양식 테이블이 10개 정도, 그리고 한국식으로 신발 벗고 들어가 앉아서 먹는 테이블도 비슷한 숫자로 배열되어 있었다. 첫 번째 갔을 때는 후자를, 두 번째 갔을 때는 전자를 택했다.
메뉴판. 막국수 보통이 7000원이라는, 그리 '착해 보이지는 않는' 가격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을지면옥에서처럼 가격 따지고 자시고 하며 들어온 곳은 아니라서, 주눅들어 나갈 일도 없었다. 첫 번째 방문 때 지인은 막국수 보통을, 나는 두 차례 모두 2000원 추가하면 먹을 수 있는 곱배기를 주문해 먹었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주는 겨자 종지와 열무김치 한 보시기. 취향에 따라 추가 양념장 혹은 반찬 개념으로 먹을 수 있는데, 나는 그냥 국수만 훌훌 끌어넣어서 먹어 보지는 못했다.
면을 삶은 물인 '면수' 도 노란 주전자에 제공된다. 참고로 삶은 물인 만큼 뜨겁거나 미지근하므로, 찬물이 필요하면 생수를 달라고 청하면 된다. 생수는 500ml 페트병에 있는 것을 냉장고에서 꺼내준다.
그 외에도 기호에 따라 막국수에 추가로 넣어먹을 수 있도록 식초나 설탕, 간장 등이 담긴 종지도 상마다 놓아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 역시 패스.
막국수 곱배기. 겉보기에도 양이 꽤 많아 보인다. 메밀국수 위에 얹힌 빨간 양념장은 겉보기에는 무척 매워 보이는데, 물론 고춧가루가 섞여 있어 매콤하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맵지는 않았다. 오히려 양념장에 갈아 넣은 양파 덕분에 약간 달콤한 맛도 느껴졌고. 그리고 그 위에 뿌려 마무리한 김과 깨도 적절하게 고소함을 더해 주는 모양새였다.
일단 내오면서 '잘라드릴까요?' 라고 묻기도 하는데, 냉면 먹을 때도 자르지 않고 먹는 스타일이라 그냥 먹었다. 사실 메밀국수 종류는 감자녹말 위주로 반죽해 뽑아내는 냉면보다 찰기가 훨씬 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잘라먹을 필요도 없어 보이고. 국수 그릇 왼쪽에 보이는 은색 주전자에는 동치미 육수가 담겨 있다.
비벼 보다가 한 장. 양념장 외의 꾸미는 무척 단순하다. 얇게 썬 심심한 무김치 두어 쪽과 삶은 달걀 반쪽. 다른 집에서는 잘게 썬 김치나 오이채, 당근채, 양배추채 등을 꽤 푸짐하게 얹어준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거 없다. 비주얼 화려한 막국수에 익숙하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러한 단순함이 내게는 훨씬 편하게 보인다. (오이채 얹어줬다면 애초에 갈 생각도 안했겠지만...-,.-)
일단 다 비벼졌다 싶으면 먹어도 되는데, 나는 동치미 육수를 자박하게 부어서 먹어보기로 했다.
육수부어 셋팅 완료. 매운맛과 단맛, 짠맛, 신맛, 고소한맛 등이 매우 적절하게 배합된 맛이었는데, 매운거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 이상으로 뭔가 더 넣을 필요가 전혀 없었을 정도로 딱 맞았다. 내 의지로 처음 가서 사먹어본 막국수 치고는 매우 인상이 좋았는데, 다만 가격이 센 것이 여전히 다음 방문에 걸림돌이 되고 있고.
사실 막국수 애호가들은 샘밭 서울 분점과 춘천 본점을 비교했을 때 춘천 쪽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서울은 아무래도 춘천과는 요리에 사용하는 식수의 질이 다르고, 시골 마을에서 먹는 것 같은 운치를 느끼기가 어렵대나. 그렇다고 경춘선 타고 가서 먹을 만큼의 뱃심은 아직 없어서, 춘천 본점의 맛은 언제 느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값은 확실히 춘천 쪽이 더 싸다는데...
아무튼 두 번 다 깨끗하게 그릇을 비워버렸다. 꾸미를 최소화하고 양념장과 면으로만 승부를 보는 곳이었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이 최대 강점으로 여겨지는 집이었다. 다만 그렇게 맵지는 않았다고 해도, 체질상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찬 음식만 먹었다 하면 늘 겪는 설사 때문에 약간 고생한 후일담이 있기는 했지만.
막국수 말고도 댓글 등을 통해 추천받은 볶음밥 잘하는 집도 몇 군데 있는데, 대부분 한강 건너서 있는 탓에 좀처럼 가보지 못하고 있다. 일단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그래도 낫지만, 나와서 걷게 되면 몇 분 지나지 않아 느껴지는 따가운 햇살과 기분나쁜 끈적임, 후끈함 때문에 맥을 못추고 있어서 외출 자체가 귀찮아지는게 지금 상황이다. lllorz 하지만 이 땅에서 내게 남은 시간도 얼마 되지 않으니, 귀찮은 몸 이끌고 한 번쯤은 찾아가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