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들어 클래식 공연장을 두 번 갈 기회가 주어졌다. 첫 번째는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있었던 전석 10000원(!!!)의 염가 공연이었고, 두 번째가 여기서 끄적일 9월 12일의 '2010 윤이상 콘서트'.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공연이지만,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지휘자로 동일 인물이 출연했다는 것. 바로 현재 창원시향 상임 지휘자이자 원주시향 명예 음악감독인 정치용인데, 현대음악 쪽에 나름대로 강점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곡을 다루던 군살이 별로 없는 말쑥한 모양새로 다듬는 것 같은데, 물론 개인 취향은 좀 더 질척거리고 기름진 스타일이 좋지만 늘 그런 것만 찾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튼 아담한 극장에서 아담한 사이즈의 악단이 연주한 모차르트와 차이콥스키, 하이든 같은 고전적인 곡들을 애피타이저 삼아 들은 뒤 간 공연이었다. 사실 이번 공연이 더욱 기대된 것은 2부 연주곡 때문이었는데, 윤이상의 교향곡 제 2번이 한국에서 세 번째로 공연된 무대였다.
정치용은 이미 윤이상 작품들의 한국 초연을 몇 차례 한 바 있었는데, 오페라 '류퉁의 꿈' 과 '나비의 미망인', 교향곡 제 1번, 관현악 '화염속의 천사(에필로그 제외)' 등이 대표적인 초연작들이다. 교향곡 제 2번은 비록 한국 초연은 아니었지만, 2000년 초연된 뒤 거의 10년 만에 재연되는 무대라 놓치면 안될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 현대음악이 주가 되는 연주회가 만석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한국 음악계 전반의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뜬구름 잡아 패대기치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물론 빈 좌석이 꽤 눈에 띄었는데, 오히려 표를 구하기는 여느 음악회 이상으로 힘들었다. 듣기로는 이런저런 곳에 초대권을 왕창 풀어서 그리 된 모양인데, 돈없는 십덕은 그저 2만원짜리 A석 표 사서 2층 왼쪽 구석에서 찌그러져 들을 수밖에 없었다.
공연 곡목은 1부에서 제 2회(2009) 국제 윤이상 작곡상 특별상을 수상한 김택수의 'Splash.s!!' 와 에두아르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이라고 쓰고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읽음), 2부에서 윤이상 교향곡 2번이 연주되는 것으로 짜여졌다. 랄로 협주곡은 아마도 현대음악만 공연하면 뭔가 호응이 좀 그럴 것 같아서 집어넣은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원주시향 단원들이 입장하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아마 미리 녹음된 것 같았던) 장내 해설이 나왔는데, 그럭저럭 무난한 것 같았지만 '윤이상 선생은 생전에 랄로를 존경했다' 는 듣도보도 못한 소리가 나와서 굉장히 이상했다. 나름대로 윤이상에 관한 논문이나 단행본, 신문이나 잡지 기사를 꽤 이것저것 보고 모아온 나로서는 금시초문이었는데, 이번 음악회의 씨줄날줄을 어떻게든 묶어보려고 뭔가 억지를 부리는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생길 정도였다.
*물론 윤이상이 생전에 프랑스 음악에서 꽤 많은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주로 근대 작곡가들에 속하는 포레나 드뷔시, 라벨, 현대에 속하는 메시앙 정도가 나름대로 윤이상 문헌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곡가들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랄로 작품들이 과연 윤이상 선생을 사로잡았을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될 수밖에.
다소 괴이한 해설을 뒤로 하고 연주회가 시작됐다. 첫 곡인 김택수의 작품은 올해 4월 14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들었던 아르스 노바 관현악 연주회에서 들어본 중국 작곡가 천 치강의 '오행' 과 비슷한 형태였는데, 길어야 약 3분, 짧으면 20초 정도의 단편적인 곡 일곱 곡으로 구성한 모음곡이었다. 설명을 보니 특별상 수상작인 'Splash!!' 의 초안을 모음곡으로 재구성한 일종의 초벌 작품이었는데, 그렇게 따지면 수상작이 연주된 것은 아닌 셈이었다. 물론 이 스케치 형태 모음곡과 입상작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관현악 편성은 호른을 배제한 비교적 간소한 2관 편성이었는데, 간략한 편성을 취한 대신 여러 현대 연주법과 최대한 긴축한 작곡법-그렇다고 미니멀리즘은 아니었음-, 곡 사이의 대비 효과 등을 통해 자주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방법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려고 한 것 같다. 비록 너무 찰나에 지나가는 대목이 더러 있어서 어지간한 집중력 없이는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협주곡은 이미 10년도 넘게 음반으로 들어왔던 곡이고, 실연에서도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어서 생소한 곡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덕에 기대치가 어느 연주곡보다 높은 편이었는데, 그렇게까지 만족스러운 연주는 아니었다. 협연자인 양고운은 가끔 거친 톤을 보여주며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여줬고, 관현악 파트는 편성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연주되어 독주자와 악단 사이의 음향 불균형이 연출되는 장면도 종종 눈에 띄었다.
제목대로 이 곡을 '바이올린 독주가 수반된 교향곡' 으로 보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공연 전 소나기가 억수로 퍼부어져서 공연장 안팎의 습도가 꽤 높았기 때문에, 현악기 소리가 생각보다 안빠져서 독주자나 악단의 현악 주자들이 좀 지나치게 힘을 뺐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들었던 자리가 음향상 그렇게 좋은 자리가 아니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고.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이 곡의 준비 과정이 다른 곡들에 비해 그렇게 충실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협주곡 연주 후에는 양고운의 앵콜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제 3번 중 3악장이 연주되고 1부가 마무리되었다. 무엇보다 기대했던, 그리고 한국 작곡가의 교향곡으로서는 실연에서 두 번째로 들어보는 곡이었던 윤이상 곡이라 꽤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프로그램 노트가 제작되면서 이런저런 실수가 엿보였는데, 처음에는 이 연주가 한국 초연이라고 떴지만 이 날 프로그램 노트에는 한국 초연 무대가 2000년 4월 교향악축제라고 수정되어 인쇄되었다.
애석하게도 이 정보도 마찬가지로 오류를 지니고 있는데, 교향곡 2번이 교향악축제에서 연주된 것은 맞지만 창원시향이 서울로 올라오기 전 창원에서 개최한 악단 정기연주회가 진짜 한국 초연 무대였다. 한국 관현악단들의 공연 기록 데이터베이스화가 아직도 제대로 진척이 안됐다고는 하지만, 윤이상 악보의 전담 출판사인 부시 앤 호키스 홈페이지에서도 1990년대 시점까지의 연주 기록을 쉽게 열람할 수 있는 상황이라 성의있는 기록 수정은 아니었다.
기록의 오류에 대한 아쉬움 뿐 아니라, 연주가 괜찮을 지에 대한 우려도 물론 있었다. 사실 정치용 지휘로 2000년에 초연된 1번의 실황을 KBS에서 제작한 DVD로 입수해 볼 수 있었는데, 그나마 국내 1급 악단이라는 서울시향이 연주했음에도 워낙 연주에 실수가 많고 전체적인 흐름도 부자연스러워서 그다지 호감이 가는 연주는 아니었다. 물론 녹음 상태도 별로였고.
1번 만큼의 규모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2번 또한 연주하기가 그렇게 홀가분한 곡은 절대 아니다. 과연 원주시향이 그 난이도를 소화 혹은 감당할 수 있을 지가 이날 공연의 관건이었는데, 다행히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템포는 2000년에 김도기 지휘의 창원시향이 했던 한국 초연 공연과 비교해 보면 전반적으로 빠른 편이었고, 다소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던 그 때와 달리 좀 더 직선적이고 추진력 강한 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비록 현악 주자들이 좀 더 보강 편성됐으면 좀 더 균형잡힌 소리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은 수연으로 여겨졌다. 크게 삐걱거리거나 놓치고 지나간 대목도 없었고, 지휘자가 왜 현대음악에 강점을 보이고 있는 지를 꽤 효과적으로 입증한 무대였다. 앵콜곡으로는 연주 전에 정치용이 직접 말한 대로, 윤이상이 생전에 존경했던 프랑스 작곡가들 중 한 사람인 가브리엘 포레의 파반이 연주되었다.
연주의 어려움과 희박한 대중성 때문에, 현대음악 전반의 창작곡들은 연주 기회가 아직 별로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많은 인원의 합주가 필요하고 연주 시간도 긴 편인 교향곡의 경우 용자 지휘자와 대인배 악단의 출현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는 그 둘을 모두 만나 만족스러운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추가로 11월에는 광주에서 구자범 지휘의 광주시향이 교향곡 4번 '어둠 속에서 노래하다' 를 공연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불행히도 그 달 말에 응시할 ZD(Zertifikat Deutsch) 시험 중 구두 시험 날짜가 연주회 바로 다음 날 잡혀 있어서 아마 못갈 것 같다. lllorz 하고 나서 서울 올라와서 한 번 더 공연해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예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