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독일의 음악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인물이나 단어를 찾아보라면 뭐가 나올까? 아마 베토벤이라던가 브람스 같은 클래식 거성들이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같은 저명한 관현악단, 혹은 크라프트베르크 같은 테크노와 인더스트리얼의 시조 격인 전위적인 밴드 같은 대답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한국에서는 애석하게도 대부분 '전공자', 특히 '클래식 작곡 전공자' 에 한해 일부 열광적인 팬을 보유할 뿐이지만 독일 현대음악계의 명성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나치와 2차대전, 쇼아(홀로코스트)의 무시무시한 흑역사를 딛고 일어서면서 이들 사실을 미치도록 부정하고 싶었던 전후 세대로서는 전후 독일 음악계가 현대음악을 과연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좀 남기는 하지만.
아무튼 독일에서는 현재 이런저런 현대음악 관련 음악제들이 많이 개최되고 있어서, 기존의 네임드 작곡가들 뿐 아니라 막 대학을 졸업하거나 첫 작품을 내놓아 작곡가로서 첫 활동을 개시하려는 뉴비들의 귀중한 무대이자 비평의 경험치를 쌓는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해외에도 많이 알려진 것이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제와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인데, 이번에 다룰 음반은 그 중 후자의 행사를 기념하는 음반이다.
현존하는 독일 현대음악제들 중 가장 최선임 급 행사를 꼽으라면 1순위로 들어가는 것이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인데, 의외로 꽤 긴 역사를 갖고 있다. 1921년에 열린 독일 현대작곡가들의 실내악 음악제가 시초로 기록되고 있는데, 여기에서 신 빈 악파의 3대 거두였던 쇤베르크와 베르크, 베베른 외에도 그들의 제자였던 벨레슈, 이들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작풍을 보여주던 힌데미트 등이 자신의 작품을 초연 또는 재연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예술 취향에 있어서는 꽤 보수적이었던 독일 구제도 귀족층이 이 현대음악 전문 연주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는 점이다. 한때 도나우에싱엔의 영주였던 퓌르스텐베르크 가문의 막스 에곤 2세가 가문 직속 음악 감독이었던 하인리히 부카르트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원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취향이 독특했는지 아니면 신진 예술인들을 후원하는 대인배의 자세를 보여 가문 이미지에 긍정적인 효과를 부여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꽤 기발한 발상의 현대음악 전문 공연도, 1933년에 히틀러가 수상으로 집권을 시작하면서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당장 이 음악제에도 '새로운 독일의 이념에 부합하는 새로운 방침' 이 요구되었고, 나치에 충성하던 작곡가 후고 헤르만이 음악제 예술 감독이 되면서 이 음악제는 '고리타분한' 독일 민요라던가 그에 기반한 보수적인 신작, 심지어 나치 지도자들의 연설을 가사로 한 국수적인 합창 작품 따위가 발표되는 선전선동의 무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이러한 관제 행사화도 1939년을 마지막으로 독일이 2차대전에 돌입하면서 중단되었고, 이후 패전 때까지 도나우에싱엔에서는 어떠한 음악제도 열리지 않았다. 그나마 나치 집권 전과 비슷한 컨셉의 음악회가 도나우에싱엔에서 재개된 것은 전후 1년 째였던 1946년이었는데, 그것도 이 음악제를 나치 광신자들의 집회로 변질시켜버린 후고 헤르만이 그대로 예술 감독을 맡아서 꽤 이런저런 뒷말이 많이 나왔다.
결국 나치 잔재와 결별하기 위해서는 과거 나치에 반대했거나, 적어도 비협조적이었던 인사를 새로운 예술 감독으로 맞이해 좀 더 동시대 음악에 비중이 가는 행사를 재조직해야 했다. 그래서 영입된 이가 당시 바덴바덴의 남독일 방송국 음악 부장을 맡고 있던 하인리히 슈트로벨이었다. 슈트로벨은 방송국 요직 인사로서 자신의 입지를 적극 활용해 남독일 방송국이 음악제 실황 중계를, 방송국 산하 관현악단이었던 남독일 방송 교향악단이 전속 악단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남독일 방송향의 상임 지휘자는 한스 로스바우트였는데, 당시 독일에서 활동하던 중견 지휘자들 중에는 동시대 작품의 소개에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해서 1950년부터 현재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의 직접적인 모태가 되는 '동시대 음악예술을 위한 도나우에싱엔 음악제' 가 개최되기 시작했다.
비록 전후의 어려운 환경 속에 시작되기는 했지만, 여러 모로 유리한 조건 또한 갖추고 있었다. 우선 독일 방송국들은 2차대전 당시 쓰였던 마그네토폰(테이프 레코더)을 비롯한 우수한 방송 장비를 계속 운용할 수 있었고, 당장 첫 해였던 1950년 음악제부터 공연 실황이 중계되고 녹음되었다. 특히 녹음 쪽이 매우 중요했는데, 이 때 제작된 테이프는 지금도 역사적인 자료로 남아 있다.
1990년에 이 음악제의 40주년을 맞아 독일의 현대음악 전문 레이블인 콜 레뇨(col legno)에서 내놓은 네 장짜리 음반의 음원들도 모두 남독일 방송국-현재는 슈투트가르트가 본거지인 남서독일 방송국에 병합되어 지국이 됨-의 음향 자료실에 소장된 테이프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 1990 col legno Musikproduktion
비록 나온지 20년이 다 돼가는 상황이라, 오프라인에서 이 음반을 구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과제가 되어 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꽤 높은 확률로 엘도라도 역할을 하는 국립예술자료원의 자료실 덕분에 이 진귀한 음반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콜 레뇨의 CD 세트에는 상당히 두툼한 속지가 독일어와 영어로 인쇄되어 동봉되어 있다. 음악비평가이자 음악학자 요제프 호이슬러가 음악제의 시작부터 1990년 당시까지의 역사와 초연되었던 작품들, 당대 음악제의 경향, 비평계의 반응 등을 매우 소상하게 기록한 속지의 첫 부분은 그 자체로도 꽤 중요한 문헌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내용 다음에는 수록된 곡들에 대한 호이슬러 또는 해당 작곡가들의 설명과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연주된 기록 등에 대한 해설이 나오는데, 속지에 각 작품들의 녹음 일자가 안나와 있다고 당황해야 할 필요는 없다. 바로 도나우에싱엔에서 연주된 날짜 자체가 녹음 일자니까. 수록곡을 적어보면 이렇다;
CD 1
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 (Karl Amadeus Hartmann, 1905-1963): 아다지오 (교향곡 제 2번)
→ 1950년 9월 10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피에르 불레즈 (Pierre Boulez, 1925-): 18개의 악기를 위한 '폴리포니 X'
→ 1951년 10월 6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루이지 노노 (Luigi Nono, 1924-1990): 관현악 '두 개의 표현'
→ 1953년 10월 11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얀니스 헤나키스 (Iannis Xenakis, 1922-2001): 관현악 '메타스타시스'
→ 1955년 10월 16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Krzysztof Penderecki, 1933-): 현과 타악기 그룹을 위한 '아나클라시스'
→ 1960년 10월 16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죄르지 리게티 (György Ligeti, 1923-2006): 대관현악 '분위기'
→ 1961년 10월 22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남독일 방송 교향악단(현 바덴바덴과 프라이부르크 남서독일 방송 교향악단)/한스 로스바우트
CD 2
피에르 불레즈: 테이프와 세 개의 관현악을 위한 '힘을 위한 시'
남독일 방송 교향악단/한스 로스바우트 & 피에르 불레즈
→ 1958년 10월 19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피에르 불레즈: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스트뤽튀르 II'
피에르 불레즈 & 이본 로리오 (피아노)
→ 1961년 10월 21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관현악 '풍크테 1952/62'
남독일 방송 교향악단/피에르 불레즈
→ 1963년 10월 20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CD 3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1882-1971): 테너, 현악 4중주와 트롬본 4중주를 위한 장송 카논과 노래 '딜런 토머스를 추모함'
피터 피어스 (테너)/남독일 방송 교향악단 단원들/한스 로스바우트
→ 1954년 10월 17일 실황녹음 (유럽초연)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 (Bernd Alois Zimmermann, 1918-1970): 비올라 독주를 위한 소나타
알베르트 디트리히 (비올라)
→ 1955년 10월 15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하인츠 홀리거 (Heinz Holliger, 1939-): 관악기, 타악기, 오르간과 라디오를 위한 '호흡'
남독일 방송 교향악단 단원들/에르네스트 부르
→ 1970년 10월 18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헬무트 라헨만 (Helmut Lachenmann, 1935-): 쇠와 줄을 위한 음악 '모퉁이의 떨림'
남독일 방송 교향악단/에르네스트 부르
→ 1975년 10월 17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안드레아스 라세기 (Andreas Raseghi, 1964-): 현악 4중주 '실내 4중주'
아우린 4중주단
→ 1987년 10월 17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CD 4
올리비에 메시앙 (Olivier Messiaen, 1908-1992): 피아노와 관현악 '새의 눈뜸'
이본 로리오/남독일 방송 교향악단/한스 로스바우트
→ 1953년 10월 11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엘리엇 카터 (Elliott Carter, 1908-): 오보에 협주곡
하인츠 홀리거/남독일 방송 교향악단/미하엘 길렌
→ 1988년 10월 16일 실황녹음 (독일초연)
볼프강 림 (Wolfgang Rihm, 1952-): 소프라노 독창과 소프라노를 동반한 관현악을 위한 '여성/목소리'
이졸데 시베르트 & 카르멘 푸기스 (소프라노)/남독일 방송 교향악단/미하엘 길렌
→ 1989년 10월 22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요하네스 칼리츠케 (Johannes Kalitzke, 1959-): 6중창 '밤의 고리'
런던 신포니에타 합창단/요하네스 칼리츠케
→ 1989년 10월 21일 실황녹음 (세계초연)
스트라빈스키와 카터의 음원을 빼면, 모든 곡이 세계초연 실황으로 담겨 있는 대단히 진귀한 음반이다. 비록 1950~60년대 음원들은 시기와 기술상 모두 모노 녹음이지만, 테이프 녹음이라 소리는 꽤 깨끗한 편이다. 다만 입체감과 공간감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불레즈의 '힘을 위한 시' 에서는 모노 특유의 평면적인 소리가 아쉬울 따름.
기성 작곡가들 보다는 당시 도나우에싱엔에 처음 등단해 청중들을 충공깽으로 몰아간 '앙팡 테리블' 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한 점인데, 초연 때 야유와 환호가 뒤섞여 스캔들이 되었던 불레즈의 '폴리포니 X' 나 건축가로 주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관현악곡을 들고 갑툭튀해 이목을 집중시킨 헤나키스-과거에는 크세나키스라고 주로 읽었음-, 음렬로 가득했던 당대 현대음악 사조에서 음뭉치(톤 클러스터) 개념을 처음으로 들고 나왔던 펜데레츠키와 리게티의 작품들이 크게 눈에 띈다.
특히 불레즈의 곡이 세 곡이나 선정된 것이 눈에 띄는데, 그 중 '폴리포니 X' 와 '힘을 위한 시' 두 곡은 2010년 현재까지도 불레즈가 '버린 자식' 취급해서 악보 출판이나 재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음반의 가치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 음악제 후 추가 공연이나 녹음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사실상 유일한 음원일 테니 말이다. 게다가 '스트뤽튀르 II' 에서는 메시앙의 두 번째 아내였던 피아니스트 이본 로리오와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불레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연주자와 작곡가 1인 2역이라는 점에서는, 대중들에게 오보에 연주의 본좌로 유명한 하인츠 홀리거도 마찬가지로 두드러진다. 작곡가 홀리거는 '호흡' 으로 음이 아닌 들숨과 날숨을 활용한 섬세하면서도 도발적인 작풍으로 초연 당시 화제가 되었고, 오보이스트 홀리거는 카터의 협주곡에서 ㅎㄷㄷ한 연주력을 보여주는 솔리스트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비록 박수 소리는 모두 삭제되었지만, 실황 녹음 특유의 긴장감이나 현장감은 대부분의 녹음에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물론 당일치기 실황을 그대로 수록한 만큼, 처음 접하는 곡에 대한 연주자들의 당혹감이나 실수도 그대로 수록되어 있고. 이보다 더 완벽하고 깨끗한 음질의 음원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성이 차지 않을 지 모르겠지만, 여기 수록된 녹음들은 대부분 작품이 처음으로 음을 매개로 대중들에게 선보여지는 순간의 싱싱함이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귀하디 귀한 재보로 남을 것이다.
콜 레뇨는 이외에도 이런저런 현대음악제의 실황을 갖고 앨범을 제작하는 배포를 계속 보여준 바 있었는데, 공산주의 체제 말기였던 1988년에 소련에서 열린 레닌그라드 현대음악제의 실황을 담은 여섯 장짜리 셋트와 1991년에 20주년을 맞은 프랑스 메츠의 현대음악제 실황을 다섯 장의 CD에 간추려 담은 셋트가 대표적인 무모함(???)을 보여준다.
비록 하드코어한 음향을 추구하는 경향 때문에 마이너 장르에서 쉽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지만, 이렇게 풍부한 녹음 자료와 그것을 활용하는 음반사 덕에 레어템을 찾아 음반 가게와 자료실을 떠도는 하이에나들은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과연 이런 음악제가 자주 열리는 독일 현지에서는 또 무슨 희귀망측한(?????) 자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