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원래 즉흥연주 본위의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통념이고, 아무리 기교가 좋고 독보력이 있다고 해도 즉흥으로 스윙하는 능력이 없다면 재즈 음악가로 대접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같은 스윙이라고 해도 자신만의 확고한 논리 등이 뒷받침되지 않는 연주라면 그것도 또 '까이는' 원인이 될 테고.
다만 킹 올리버나 플레처 헨더슨,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같은 밴드 리더들은 즉흥연주 본위라는 틀 속에서 합주의 가능성을 실험했던 인물들이었고, 1930~40년대에 대유행한 스윙 빅밴드도 이들의 탐구 정신과 함께 창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빅밴드 편성에 국한하지 않고 재즈를 정규 편성의 관현악에 가까운, 혹은 그 관현악을 위한 대편성으로 시도하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 나 '파리의 미국인' 등의 작품을 그 범주에 넣는 학자들도 있고.
거슈인 외에도 재즈의 가능성을 실험한 작곡가나 재즈 음악가들은 꽤 많은데, 스트라빈스키도 우디 허먼 밴드를 위해 '에보니 협주곡' 을 썼고 번스타인도 '전주곡, 푸가와 리프' 를 쓴 바 있다. 재즈 쪽에서는 데이브 브루벡이 관현악과 밴드 혹은 컴보를 합주시키는 작품을 시도했었고, 좀 더 통속적이긴 했지만 찰리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 클리포드 브라운 같은 비밥계 연주자들도 스트링 앙상블과 리듬 섹션을 대동하고 솔로 앨범을 낸 바 있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쪽에서도 재즈나 블루스 등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들은 의외로 많았는데, 특히 쿠르트 바일의 경우에는 그러한 재즈의 어법을 작품에 적극 활용해 대성한 사례에 속하고. 심지어 소련 시절에도 쇼스타코비치가 '재즈 모음곡' 이라는 작품을 두 곡 남겼는데, 다만 바일이나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은 위에 쓴 대로 '스윙' 의 요소가 결핍되어 있어 '유사 재즈' 라고 격하시키는 것이 보통이고.
그래도 미국이던 유럽이건 2차대전 뒤부터 지금까지 '크로스오버' 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흥미있게 들은 작품이 스위스 작곡가인 롤프 리버만(Rolf Liebermann, 1910-1999)의 것이었다.
리버만은 취리히 태생으로, 처음에는 법학을 전공하다가 음악으로 진로를 바꾼 인물이었다. 20대 초반부터 샹송 등 대중음악 작곡가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는데, 빈에서 현대음악 전문 지휘자로 유명했던 헤르만 셰르헨과 만난 뒤로는 좀 더 진지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래서 셰르헨 외에 블라디미르 포겔 등에게 작곡을 배웠는데, 이 과정에서 바로크부터 후기 낭만에 이르는 전통적인 작법 외에도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비롯한 현대음악 영역에서도 깊은 조예를 쌓을 수 있었고.
대략 1940년대 초반부터 이러한 교육의 성과가 작품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2차대전 후에는 스위스에서 독일로 주요 활동 무대를 옮겼다. 리버만은 아방가르드 쪽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현대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거기에 스위스 민요나 재즈 등 상당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장르들을 소재로 사용하는 독특한 작풍을 보여주었다.
리버만은 1954년에 바덴-바덴의 남서독일 방송국으로부터 특이한 위촉을 받았는데, 쿠르트 에델하겐이 이끄는 빅밴드와 방송국 소속 교향악단이 협연하는 협주 작품이었다. 물론 리버만은 나름대로 재즈와 클래식 모두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지만, 둘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섞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어쨌든 그는 그 위촉을 받아들이고 작품을 써서 같은 해 10월 17일에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에서 초연했는데, 바로 '재즈 밴드와 교향악단을 위한 협주곡' 이었다.
리버만이 취한 자신만의 해결책은, 쇤베르크식 12음 기법을 빅밴드와 관현악 모두에 적용하되 서로 개성이 뚜렷하게 갈리는 대비를 표현하기 위해 악장을 여덟 개로 잘게 쪼개고, 관현악이 부각되는 부분과 밴드가 부각되는 부분을 병치시켜 놓았다. 곡 전체의 구조는 복수 독주자 혹은 독주 그룹과 관현악이 협연하는 바로크 시대의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에서 착안했고.
*악장 구성: 서주-점프-스케르초 I-블루스-스케르초 II-부기우기-간주곡-맘보
특히 옥타브 내 열두개 음을 고르게 사용하도록 하는 12음 기법의 적용은, 이 곡이 지나치게 미국화되어 키치로 빠질 위험을 최소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다만 리버만은 그 기법을 쇤베르크나 베베른처럼 엄격하게 지키지는 않았고, 특히 밴드가 부각되는 '점프' 와 '블루스', '부기우기', '맘보' 악장들에서는 엘링턴이나 허먼 등의 빅밴드 음악과 라틴계 대중음악의 어법을 적용하면서 재즈 필링을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이것도 악보화된 것을 밴드 연주자들이 연주하는데, 스윙 가능성은 엘링턴 등 '원조' 들보다는 협소한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밴드에도 적용시킨 12음 기법 때문에 1960년대 이후 시도되기 시작한 모던 혹은 프리 재즈의 느낌까지 들었음)
관현악이 부각되는 나머지 악장들에서도 12음 기법의 엄격성 보다는 음열의 기초 내에서 비교적 자유로이 움직이면서 영화음악이나 무대음악 등에서 풍기는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데, 아마 이런 점 때문에 대중들에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음악으로 받아들여졌을 것 같다. 실제로 리버만은 기악 작품 보다는 성악이나 오페라 등 스토리가 들어가는 음악에 특히 강세를 보였고,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단과 파리 국립 오페라단의 단장을 역임하면서 자작 오페라는 물론이고 펜데레츠키나 헨체, 메노티 등의 현대 오페라 상연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독일에서 세계초연된 지 불과 11년 뒤인 1965년 10월 2일에 한국에서도 초연된 바 있었는데, 김만복 지휘의 서울 시립 교향악단이 '민들레악단' 이라는 국내 빅밴드와 함께 공연했다. (장소는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시민회관)
당시 서울시향 상임 지휘자였던 김만복은 현대음악의 한국 초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미국 음악의 영향력이 지대했던 당시 한국 음악계의 상황과 기묘하게 어울린다고 여겨진 작품 성향이 초연의 기제로 작용한 것 같다. 협연했던 민들레악단도 미 8군 장교 클럽에서 활동하던 하우스 밴드가 기원이었으며, 저 악단에서 지금은 원로급 인사가 된 한국 대중음악계의 거물들이 여럿 배출되기도 했다.
들어본 음원은 낙소스(Naxos)에서 나온 것인데, 북독일 방송국(Norddeutscher Rundfunk) 소속의 재즈 그룹인 NDR 빅밴드(NDR Bigband)와 피아니스트 시몬 나바토프(Simon Nabatov)가 귄터 노이홀트(Günter Neuhold) 지휘의 브레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Philharmonisches Orchester Bremen)와 협연한 물건이다(CD 번호는 8.555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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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독일 방송국은 함부르크가 거점인 방송사로, 방송 교향악단과 방송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하노버 거점) 같은 클래식 악단 외에도 빅밴드를 자사 소속으로 거느리고 있다. 빅밴드의 경우 리버만과 나름대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 같은데, 주요 방송 출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방송국 스튜디오의 명칭부터가 '롤프 리버만 스튜디오(Rolf-Liebermann-Studio)' 다.
곡에 불가피하게 가해진 스윙의 제한성 때문에 조금 딱딱하게 들리긴 하지만 블루스 같은 부분에서는 나름대로 끈적한 분위기를 살리고 있고, 부기우기와 맘보에서는 활기찬 질주를 보여주고 있다. 협연 관현악단인 브레멘 필도 독일 밖의 지명도는 낮은 편이지만, 나름대로 전통을 자랑하는 악단이고 크나퍼츠부슈 등의 지휘자들이 객원으로 지휘한 바 있는 악단이다.
다만 CD 자체는 구하기가 의외로 쉽지가 않은데, 낙소스 CD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풍월당이나 교보 핫트랙스, 코엑스 애반레코드 등에 따로 주문을 해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 낙소스 음반들의 수입이나 유통이 좀 주춤하고 있는 것이 추세 같은데, 뒤늦게나마 낙소스 덕을 보고 있는 나로서는 섭섭한 감을 지울 수 없고. 그나마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에서 들을 수는 있지만, 전악장이 다 이어지는 곡이기 때문에 트랙 바뀔 때 계속 끊긴다는 문제점이 있어서 CD를 사야 겠다는 생각만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