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광적인 콘서트 고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흥미있는 프로그램의 연주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곧잘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축에는 든다고 장담할(?) 수 있다. 물론 돈없는 십덕은 뭔가 싸면서도 내용이 충실한 공연을 찾아다니기 마련인데, 다만 이런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언제부턴가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연장인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일종의 연속 기획 연주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지휘자 정치용이 특별 편성한 실내 관현악단을 이끌고 진행하는 '미라클 콘서트' 라는 제목의 음악회인데, 지난 9월에 처음 보러 간 뒤로 10월과 12월까지 세 차례 관람할 수 있었다. 11월 공연을 ZD 시험 준비 때문에 포기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나름대로 꾸준히 보러갔다고 할 수 있을 듯.
이 공연은 올해 4월부터 '정치용의 아름다운 콘서트' 라는 이름으로 개최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하반기였던 9월 공연부터 '정치용의 미라클 콘서트' 로 개칭해 열리고 있다. (미라클 중에 미를 '美' 라고 표기해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4월부터 지금까지 총 8회의 연주회가 개최되고 있는데, 9월 이전의 프로그램도 나름대로 참신해서 늦게 알게 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기적' 이라고 달아놓은 이름이 좀 거창하다 싶기는 하지만, 대곡 위주로 가려는 경향이 많은 요즘 한국 관현악 연주회 추세에서는 소박한 홀에서 아담한 사이즈의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기회가 적어진 편이라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입장료도 성인 기준으로 1인당 10000원에 불과해서-구로아트밸리 온라인 회원에게는 1000원 할인 혜택도 주어진다-,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공연이고.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서곡과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변주곡, 하이든의 교향곡 제 44번 '슬픔' 이 연주된 9월 7일 공연에서부터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하이든 교향곡의 경우 국내에서도 듣기 그다지 쉽지 않은 곡이라, 이 곡 만으로도 건진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5일 공연에서도 모차르트의 '후궁 탈출' 서곡과 슈만의 첼로 협주곡,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 5번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끌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해당 교향곡을 공연장에서 처음 들어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좀처럼 실제 연주로 듣기 힘든 곡을 최소한 한 곡씩 선곡한다는 기획 외에 연주 자체도 궁금할 수밖에 없었는데, 소편성을 취했기 때문인지 거의 실내악에 가까운 투명하고 날렵한 음향을 즐길 수 있었고 합주력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기존에 여러 악단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에 정치용이 재직 중인 한국예술종합학교 기악 전공 학생들을 추가해 편성한 악단이라고 했는데, 선후배 사이에 관현악 경험을 주고받는 교육적인 목적도 달성하기 위한 포석이 아닌가 싶다.
12월 14일 공연도 마찬가지로 대규모에 장시간이라는 기존 클래식 콘서트의 규범을 깨고 각 작품의 연주 시간만 따져 보면 1시간이 안되는 굉장히 간략한 프로그램을 취했는데, 1부에서 모차르트의 극음악 '극장 지배인' 서곡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이, 2부에서는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 제 1번 '고전' 이 연주되었다.
이 공연에서는 슈트라우스의 협주곡에 특히 관심이 쏠렸는데, 작곡자 말년에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쓴 곡이라고는 하지만 독주자 뿐 아니라 악단 단원들 개개인의 역량까지 계산에 넣은 꽤 까다로운 곡이라 그다지 자주 연주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곡에서도 그 동안 내가 받았던 긍정적인 인상을 그대로 지닐 수 있을 만큼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입장료가 저렴하다 보니,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다소 애증(??)을 불러일으키는 저연령층 관객들이 많다는 것이 종종 문제가 되곤 한다. 일단 자신이 즐기려는 마음이 없는 아이들은 공연 중에 잡담을 하거나 여타 돌출 행동을 하기 마련이라, 다른 감상자들에게 방해가 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곤 한다. 아직 클래식 공연 보러가는 것을 마치 '고급스러워 보이기 위한' 허세나 '감상문 쓰러 가는' 반강제적인 떠밀림으로 여기는 풍토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씁쓸할 수밖에.
그런 문제 외에도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을 뜰 예정이라 이 음악회를 당분간, 아니면 오랫동안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독일에서도 이런 음악회가 열린다면야 얼마든지 갈 생각인데, 무조건 크고 거창한 것만 좇기 보다는 이렇게 소규모로 열리면서도 흥미있는 기획과 저렴함으로 어필하는 공연도 같이 활성화되는 것이 여러 모로 한국 공연계의 균형있는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다.